'소방서 옆 경찰서', 장르물 보며 심장 따뜻해지는 이색 경험

아이즈 ize 이현주(칼럼니스트) 2022. 12. 2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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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이현주(칼럼니스트)

사진제공=SBS

첫 회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마음이 녹진해지는 로맨틱 코미디보다 심장을 쫀득하게 하고 분노를 유발하는 범죄 스릴러에 열광하는 내겐 SBS 금토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극본 민지은, 연출 신경수)가 딱이었다. 사건을 질질 끌지 않고 한 회 안에서 마무리 는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 한참 전부터 좋아했던 김래원과 어느 순간부터 눈여겨보게 된 손호준까지 함께 나온다니.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화재와 범죄, 각각 따로 뉴스를 접하곤 하지만 '소방서 옆 경찰서'를 보면 매우 연관이 깊음을 알 수 있다. "경찰과 화재 잡는 소방의 공동 대응 현장일지! 타인을 위해 심장이 뛰는 이들의 가장 뜨거운 팀플레이를 그리는 드라마"라는 드라마 소개글을 보고 나는 마음속으로 '타인을 위해 심장이 뛰는 이들'에 여러 번 밑줄을 그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기 때문이다.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매체의 기획과 취재를 맡은 적이 있다. 덕분에 매번 사연이 있는 소방관들을 만나 인터뷰했는데, 아무리 여러 번 그분들을 만나 대화를 해봐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대체 어떤 생각으로 위험을 무릅쓸 수 있는지. 불길 속에 뛰어들고, 상상을 능가하는 험난한 현장에 앞장서 달려갈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매번 다른 분께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것이 본인이 할 일이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거기 있어서라고. 

당시는 모든 소방관이 국가공무원으로 전환되기 전이었다. 그럼에도 그분들은 자신의 사명을 묵묵히 지키고 때로 목숨까지 걸었다. 그렇게 많은 소방관들을 만난 나는 그분들의 유전자가 분명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얕은 이성의 발로가 아닌 생래적으로 몸에 장착된 이타심이 아니고선 설명할 수 없는 일을 일상으로 행하고 있으므로. 영화에 히어로가 등장하지만 실제 우리에 있는 진정한 히어로가 바로 소방관이라고. 이후 나는 지금까지 가장 존경하고 감사해야 하는 직업이 소방관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껏 소방관을 제대로 그린 드라마는 없었기에, '소방서 옆 경찰서'가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사진제공=SBS

물론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는 데 있어 경찰분들의 노고 또한 빼놓을 수는 없다. 극중 김래원을 비롯한 동료 경찰들과 같은 훌륭한 분들이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 또한 강력하다. '소방서 옆 경찰서'에서 가장 두드러진 주인공은 진호개 경위(김래원)다.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캐릭터지만 적어도 나한테만은 김래원이기에 납득이 되고 매력적이다. 김래원의 오랜 팬이기에, 지극히 사심에서 우러나온 편견일 수도 있지만. 

나는 김래원이란 배우가 소년처럼 웃고, 철없이 해맑음과 건실함을 천연덕스럽게 오가며 소화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청년에서 아저씨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봤다. 어언 10년 전 대중문화 주간지 기자 시절, 그를 인터뷰하며 기자의 본분을 망각하고 팬심을 드러냈음은 비밀이다. 

늘 화제의 주인공이 되는 슈퍼스타는 아니었지만 그는 꾸준히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해왔고 차곡차곡 자기만의 얼굴을 만들며 길을 걸어왔다. 훌륭한 연기자란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진호개 경위는 김래원이 맡아 비로소 세상에 한 명뿐인 인물이 되었다. 껄렁대지만 진지하고 자신이 믿는 정의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그를 통해 허구가 아닌 이 땅 어딘가에서 정말 범인을 잡기 위해 발에 땀 나도록 뛰고 있는 것 같은, 꼭 있었으면 하는 형사로 그려진다.

사진제공=SBS

'나쁜 놈은 반드시 잡힌다'는 현실에선 쉽게 이뤄지기 힘든 염원을 실현시켜 주기에 범죄 스릴러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희열을 안긴다. '소방서 옆 경찰서'는 여기에 화재, 긴급 구조라는 극적인 요소를 더해 그 희열을 배가시킨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와 거리가 멀지 않다. 물론 가장 큰 빌런은 권력자지만 각 회차마다 등장하는 사연의 주인공들은 우리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크고 작은 욕망을 좇다 나쁜 선택을 하고 범죄에 휘말리는 사람들. 부와 권력이란 사회 전체를 보면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것 같지만 한 가지는 공평하다. 이미 가진 자나 못 가진 자 모두 더 갖고 싶어한다는 것.

'소방서 옆 경찰서'는 그렇게 나쁜 선택을 한 사람들이 저지른 악을 소방과 경찰이 고군분투하며 수습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원하든 원하지 않는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불가항력의 힘이 존재하는 세상. 악의 축과 그 축의 반대편에서 희생자들을 위해 피와 땀을 흘리는 이들이 있는 한, 우리는 안심할 수 있다는 위안을 드라마 보는 재미 외에 덤으로 받는다. 드라마를 보며 모처럼 감사하다.

지금도 어디선가에서 불길과 범인을 잡기 위해 애쓰시는 '타인을 위해 심장이 뛰는' 분들에겐 더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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