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골퍼는 '정반합의 수레'를 끄는 고행자!
[골프한국] 골프 스윙의 모든 문제는 슬라이스에서 비롯된다.
올바른 골프 스윙의 원리를 터득하지 못한 초보자가 날리는 공은 십중팔구 슬라이스가 될 수밖에 없다. 몸통 회전을 익히지 못한 초보자가 공을 때려내려면 오른손 오른팔 위주로 가격하게 되고 그러면 필경 공은 클럽헤드에 깎여 맞아 오른쪽으로 휘어 날아가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레슨프로나 고수들은 '스윙은 왼쪽이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왼쪽 팔과 왼쪽 히프, 왼쪽 허벅지가 주도하는 스윙으로 공을 때려내라고 주문한다. 오른손잡이에겐 익히기 쉽지 않지만 몸통 회전을 익히지 못한 초보자들에겐 슬라이스를 피할 수 있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왼손 왼팔 위주의 스윙은 비거리에 취약하다는 한계가 있다. 비거리를 내려면 파워가 필요한데 왼손 왼팔은 오른손 오른팔에 비해 파워가 부족하다(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봤을 때). 왼손 왼팔 주도의 스윙 역시 오른손 오른팔이 제 역할을 못 해주면 비거리와 방향성을 보장받을 수 없음도 깨닫게 된다. 오른손 오른팔이 들러리 역할만 하면 클럽헤드가 늦게 내려와 또 다른 슬라이스의 원인이 되고 공의 추진력도 떨어진다.
그래서 레슨프로는 기량이 일정 수준(몸통 회전을 어느 정도 터득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되면 오른손과 오른팔을 적극 활용하라고 주문한다. 복싱에서 왼팔 스트레이트와 함께 강력한 오른팔 어퍼컷이 동반됐을 때 상대에게 치명타를 주듯 힘 있는 오른팔을 스윙에 사용하라고 강조한다.
양손 양팔을 균형있게 사용하는데도 슬라이스가 일어날 때 이를 방지하기 위해 클럽헤드를 닫거나 스윙궤도를 아웃-인으로 조정해 스윙하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 이 역시 리듬과 템포가 맞지 않으면 심한 훅이나 슬라이스를 유발하기 십상이라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심한 슬라이스를 방지하려는 동작이 심한 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골프의 모든 기술은 슬라이스와 훅 사이에서 생겨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프에서 슬라이스를 교정하기 위한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면 독일의 철학자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변증법(辨證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헤겔은 만물은 본질적으로 끊임없는 변화과정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변화의 원인을 내부적인 자기부정, 즉 모순에 있다고 봤다. 원래의 상태를 정(正), 모순에 의한 자기부정은 반(反)으로 보고 만물은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그 결과 새로운 합(合)의 상태에 이른다는 주장이다. 정반합(正反合: thesis, antithesis, synthesis)이란 철학 용어는 헤겔이 만든 게 아니고 하인리히 샬리바우스(Heinrich Moritz Chalybaus, 1796~1862)가 처음 사용했다. 헤겔은 정반합이라는 표현 대신 '즉자(卽自)-대자(對自)-즉자대자(卽自對自) 또는 '긍정-부정-부정의 부정'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필자는 30여년 골프를 해오면서 몸의 왼쪽과 오른쪽을 고루 사용한다고 생각했었다. 왼쪽 히프가 다운스윙의 방아쇠 구실을 한다는 믿음으로 백스윙이 완성되었을 때 왼쪽 히프를 시계바늘 반대 방향으로 회전시키면서 다운스윙을 시작한다는 느낌으로 스윙을 해왔다. 그러다 최근 탄탄한 오른쪽 허벅지가 사용되지 못하고 방치됐음을 깨닫고 왼쪽 히프가 회전할 때 오른쪽 허벅지를 왼쪽 허벅지에 갖다 붙이는 동작을 시도해 깜짝 놀랄 효과를 보고 있다. 스윙에 힘이 실림은 물론 공의 진행 방향이 일정하게 정면으로 향했다. 전에는 다운스윙이 조금 늦어도 슬라이성 구질이 나왔는데 오른쪽 허벅지를 왼쪽 허벅지에 붙이는 동작을 하니 상체와 오른팔이 늦게 내려오는 것이 사라지며 구질이 정면을 향했다. 지금으로선 슬라이스성 구질을 막는데 이보다 효과적인 동작이 없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그러고 보니 생중계되는 프로선수들의 스윙은 모두 이 같은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도 골프 입문 초기에 오른쪽 허벅지를 왼쪽 허벅지에 붙이라는 가르침을 받고 익혔겠지만 그 동안 잊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슬라이스나 훅을 방지하기 위한 스윙을 포함한 골프와 관련된 모든 동작들(생각을 포함해)이 정반합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진리에 이르는 길이 끝없는 정반합의 되풀이를 요구하듯 골프 역시 예외일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정(正)과 반(反)이라는 두 바퀴가 쌍을 이룬 수레를 끄는 것이 골프가 아닐까. 정반합의 변증법이 끝없는 반복을 요구하듯 정반합의 수레를 끄는 골퍼 역시 끝없는 여정의 고행자라는 생각이 든다. 혹한에도 연습장을 찾는 것도 이 여정의 한 부분일 것이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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