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삶 기록한 내방가사…"한글의 공식 문자 정착 과정 담겨"

김예나 2022. 12. 2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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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러 떠난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이혼을 요구하자 아내는 서러운 마음을 글로 남겼다.

지난해 내방가사를 주제로 한 '이내말삼 드러보소, 내방가사' 전시를 기획한 서주연 학예연구사는 "조선시대에 여성이 글로 자신을 삶을 기록하고,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일은 세상의 편견과 맞서야 했던 일"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김영수 국립한글박물관장은 "근대 이전에 평범한 여성의 삶을 기록한 역사 자료는 매우 적으며, 여성 스스로 기록한 것은 더 적다"며 "내방가사는 그 자체로 역사 기록으로 인정받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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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록유산 아태지역목록 등재…국립한글박물관 소장 126점 포함
"사실성·기록성 강해 그 자체로 역사…대표목록 등재 가능성 밝아져"
'시골여자 서러운 사정'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어두운 세상 구여성들 전생에 무슨 죄로 / 붉은 꽃처럼 날아드는 수십청춘 우리들이 / 빛없는 어지러운 세상 어두운 하늘이시여 / 거쳐내어 우리 청춘을 살피소서'

공부하러 떠난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이혼을 요구하자 아내는 서러운 마음을 글로 남겼다.

이혼 위기를 맞닥뜨린 여성의 심경을 담은 글에는 '구여성' 즉, 옛날 여성이라고 칭한 부분이 눈에 띈다. 새로운 문물이 밀려들던 시기, 여성조차 '신'(新)과 '구'(舊)로 나뉘었던 당대 상황과 고민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시골여자 서러운 사정'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여성이 지은 '내방가사'(內房歌辭)다. 내방가사는 조선 후기 여성들이 창작한 문학 작품을 한글로 적은 자료를 뜻한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여성들은 언제부터인가 한글로 자신의 일상과 느낀 바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4음보(音步·시에서 운율을 이루는 단위) 운율을 지킨 글은 노랫말 같기도 했고, 산문 같기도 했다.

18∼20세기 여성의 활동과 사회적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내방가사는 지난달 경북 안동에서 열린 '제9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태 지역위원회(MOWCAP) 총회'에서 아태지역목록에 올랐다.

'딸 경계하는 노래라'라는 제목의 계녀가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에 등재된 내방가사 가운데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한 자료는 총 126점이다.

국립한글박물관은 내방가사는 단순한 글쓰기를 넘어 여성의 주체적 활동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당하였던 여성이 주도한 창작 결과라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내방가사를 주제로 한 '이내말삼 드러보소, 내방가사' 전시를 기획한 서주연 학예연구사는 "조선시대에 여성이 글로 자신을 삶을 기록하고,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일은 세상의 편견과 맞서야 했던 일"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밈없고 진솔한 내용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번에 등재된 내방가사는 1794년에 창작된 '쌍벽가'부터 해방 이후 쓰인 '화전가'까지 다양하다.

연안이씨가 완성한 '쌍벽가'는 아들과 조카가 과거에 급제해 느낀 희열을 표현하고 자신의 공헌을 은근히 나타냈다. '화전가'는 여성들끼리 모여 봄놀이를 즐겼던 경험을 노래했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내방가사 가운데 가장 길이가 긴 '헌수가'는 14m 길이 두루마리에 여성이 부모의 행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성과 기록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내방가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도 많다.

국립한글박물관의 '이내말삼 드러보소, 내방가사' 전시 모습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영수 국립한글박물관장은 "근대 이전에 평범한 여성의 삶을 기록한 역사 자료는 매우 적으며, 여성 스스로 기록한 것은 더 적다"며 "내방가사는 그 자체로 역사 기록으로 인정받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 선생의 부인인 김우락(1854∼1933) 지사는 만주 망명을 기록한 내방가사 '해도교거사'(海島僑居辭) 등을 토대로 독립유공자 애족장으로 추서 받았다.

김 관장은 내방가사에 담긴 한글의 역할과 중요성에 특히 방점을 찍었다.

그는 "한글은 창제 원리가 밝혀진 유일한 문자"라며 "문자가 탄생한 뒤에는 그 문자로 표현하는 예술인 문학이 탄생하는데 18세기 무렵 여성들은 자신의 주요 문자인 한글로 내방가사를 탄생시켰다"고 봤다.

그러면서 "내방가사를 통해 한글이 민중에게 어떻게 전파·확산하고 온 국민이 누리는 공식 문자로 자리매김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의의를 밝혔다.

김 관장은 향후 세계기록유산 대표목록 등재 가능성과 관련, "아태지역목록 등재를 계기로 대표목록 등재 가능성이 더욱 밝아졌다"며 "이번에 (지역목록에) 올리지 않은 300여 점의 내방가사 작품이 더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철저히 준비해서 대표목록 등재를 준비할 예정"이라며 "세계기록유산뿐 아니라 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의 가치를 발굴해 보물 등재에도 꾸준히 힘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 등재 증서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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