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평가보다 소통·공감… 기린쌤의 ‘큰 배려’ 배우는 작은기린들
■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 포항 구정초 이상우 교사의 ‘비폭력 대화법’
학생들간 “안돼” “넌 틀렸어” 등
공격적 대화 접하고 문제점 인식
아이들의 말과 행동서 드러나는
소중한 감정 알아주기 위해 집중
교사 바뀌자 학생들도 서로 존중
따뜻한 교실 만들기 위해 ‘앞장’
“아이들은 저를 ‘기린 선생님’이라 부릅니다. 기린은 육상동물 중에서 심장이 가장 큰 동물입니다. 초식동물로 평화롭게 살아가지만, 필요하면 힘센 발굽으로 자신들을 지키고, 아카시아 가시를 침으로 녹여 가며 먹기도 합니다. 기린이 된다는 건 큰 가슴으로, 가시 돋친 말까지도 공감의 마음으로 듣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아이들이 절 기린 선생님으로 부르면, 전 정말 기린이 되어 아이들을 만납니다.”
경북 포항시 구정초등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는 이상우 교사는 수업 시간에 ‘기린의 대화(비폭력 대화)’를 아이들과 끊임없이 나누는 것으로 교내에서 유명하다. 비폭력 대화란 각각의 공격적인 언어습관을 버리고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본성의 상태로 돌아가 상대방과 대화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대화 방법이다.
교실은 다양한 생각과 성향이 있는 학생들이 모이는 공간이기 때문에 매일 크고 작은 잡음이 생긴다. 학생들끼리는 “안 돼!”, “넌 틀렸어”, “그건 아니야”와 같은 날카롭고, 부정적인 말들을 자주 주고받는다. 교사 역시 학생들에게 지적과 평가가 잦다. 옳고 그름을 먼저 판단하고, 학생들에게 사과와 용서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 교사는 “교직 경력이 짧을 땐 저도 질서있는 학급, 안정된 교실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한데 그렇게 되면 교사가 한 명 한 명의 소중한 아이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9년 전 우연히 비폭력 대화를 접하고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소중한 감정을 알아주려고 노력했고, 충족되거나 충족되지 못한 학생 개개인의 욕구를 알아주려고 노력했다.
이 교사가 학생 때문에 화가 날 땐 ‘화가 나고 아쉬운 나의 느낌은 나의 소중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 아이들 때문이 아니다’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새겼다. 화의 원인을 학생들에게 돌리고, 평가하기 시작하면 교사와 학생은 깊이 연결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학생을 비난하는 대신 교사가 무엇을 느끼고 있고,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학생들에게 직접 말하고 부탁했다. 학생들도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 그가 하는 방법을 똑같이 따라 하도록 함께 노력했다.
교사가 바뀌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변했다. 학생들은 자신과 다르게 행동하는 타인의 행동을 인정하고, 다르지만 소중한 바람과 욕구에 대해 생각하고, 서로 존중해주고 존중받는 경험을 쌓으면서 점차 변화해 나갔다. 작은 교실이지만, 학생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체험하고 배워나갔다.
이 교사는 최근 제자들로부터 선물 하나를 받았다. 그에게 도덕 수업을 들은 3학년 학생 몇몇이 본인들이 직접 ‘기린 인형’을 만들어 가지고 온 것이다. 이 교사는 “기린 인형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환한 웃음이 나왔다”며 “우리 아이들의 마음속에 ‘기린의 대화’가 어떤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기린의 대화를 통해 책임을 묻고, 벌을 주기보다 그 느낌을 알아주고, 그 욕구를 알아주는 따뜻한 교실 속의 작은 기린이 되고자 우리 아이들이 매일 연습하는 모습이 기특하다”고 덧붙였다.
이 교사는 학생들에게 “모두가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임을 알아차리고 당당하게 살라”고 강조했다. 매일 어린 기린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기린 선생님은 “아직은 어린 초등학생이지만,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입시경쟁이라는 큰 담장 아래에서 남보다 부족함을 인정하며 좌절하거나, 상대방을 두려워하고 비난하는 안타까운 삶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생들은 모두가 그 자체로서 소중한 생명이며, 평가받거나 비교당할 수 없는 귀한 꽃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각자의 색을 가지고 각자의 벌판에서 당당하게 피어나길 소망한다”고 당부했다.
박정경 기자 verit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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