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민은 퇴장해도 판을 흔들어..이쯤되면 '재벌집 할아버지'[Oh!쎈 초점]
[OSEN=김나연 기자] "도준이 내 손주다. 내를 제일로 많이 닮은 내 손주."
'재벌집 막내아들' 14회에서 모두를 눈물짓게 만든 진양철(이성민 분)의 대사다. 영상으로 짧게 등장할 뿐이었지만, 그의 존재감은 사망 후에도 극의 전체 흐름을 아우를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펼쳤다.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재벌 총수 일가의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는 비서가 재벌가의 막내아들로 회귀해 인생 2회차를 사는 판타지 드라마다. 순양그룹 기획조정본부 산하 미래자산관리팀장 윤현우(송중기 분)는 해외에 숨겨진 자산을 순양에 귀속시키라는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려던 찰나 죽임을 당했고, 1987년으로 돌아가 순양그룹 진양철(이성민 분) 회장의 막내 손자 진도준으로서 인생 2회차를 맞으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재벌집 막내아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송중기지만, 시청률을 24.9%(닐슨초리아, 전국가구기준)까지 끌어올린 흥행의 중심에는 다름아닌 이성민이있었다.
이성민은 50대의 나이에도 불구, 괴팍하고 꼬장꼬장한 6-70대 할아버지로 완벽히 분했다. 극중 캐릭터와 혼연일체한 그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이성민은 온데간데 없이 순양그룹의 진양철 회장만이 남아있다. 비록 연로한 노인을 연기하기 위해 매번 특수분장을 감행해야 했지만, 1회 엔딩을 장식했던 진양철의 첫 등장신만으로도 이성민이 진양철이어야 했던 이유를 납득할수 있게 만든다. 자세, 표정, 행동 하나하나가 진양철 그 자체였던 것. 경상북도 봉화 출신인 이성민에겐 진양철이 구사하는 경상도 사투리 역시 어려울게 없었다.
인생 2회차를 살던 어린 진도준(김강훈 분)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눈빛과 말 한마디 없이도 장성한 네 자녀들을 압박하는 카리스마는 초반부터 극의 흐름과 동시에 시청자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마냥 조력자 역할을 했던 원작 소설과는 달리 순양그룹을 사들이겠다는 야망을 지닌 진도준과 경쟁하고 대립하면서 극의 팽팽한 긴장감과 몰입감을 유지하는 역할을 이어갔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진도준에게 시련을 주는 악역으로 남지는 않았다. 진도준의 재능을 누구보다도 눈여겨보고, 종래에는 진도준이 가장 자신을 닮은 손자이자 순양가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생각해주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에게 순양 금융그룹 사장 자리를 물려주고자 한다.
특히 갑작스러운 사고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섬망 증세를 보이는 진양철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그토록 꼿꼿하던 진양철 회장에서 순식간에 치매 발작을 일으키는 노인으로 돌변하는 순간은 진도준뿐 아니라 시청자들까지 패닉에 빠트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성민의 소름돋는 연기력이 가장 큰 역할로 작용했다. "진양철만 나오면 재밌다"는 평이 쏟아질정도로 이성민의 한 치 양보없는 연기, 송중기와의 브로맨스를 향한 열띤 호응은 갈수록 힘을 더해갔다.
비록 진양철은 13회를 끝으로 퇴장했지만, 그의 '진짜' 존재감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진도준에게 "꼭 이루래이"라고 말했던 진양철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진도준에게 재산을 한 푼도 물려주지 않았고, 여기에 진양철을 모셨던 이항재(정희태 분)의 배신으로 진도준은 궁지에 몰리는 듯 했다. 결국 진도준은 그토록 사랑했던 할아버지를 끌어내리는 방법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 역시 모두 진양철의 '큰 그림'이었다. 가족들 앞에서 공개했던 유언장과는 별개로 진도준만을 위한 영상과 유산을 남겨둔 것. 진양철은 자신을 위해 순양자동차를 살리려 하는 진도준을 보며 앞으로 순양을 지키기 위해서는 동정심, 측은지심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일부러 진도준을 사지로 내몰았다. 공개된 영상에서 진양철은 "날 밟고 가면 인자 앞으로 못 할 게 없다. 그래야 금마 순양 지키고 산다"고 자신의 뜻을 전했다.
뿐만아니라 섬망증세로 기억이 흐려지는 상황에서도 "도준이가 누구냐"는 질문에 "도준이 내 손주다. 내를 제일로 많이 닮은 내 손주"라며 환하게 미소지어 진도준을 눈물 흘리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진양철이 진도준을 위해 남겼던 유산이 윤현우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 '순양 마이크로' 였다는 사실은 극 전체를 뒤엎는 반전이었다.
이처럼 진양철은 사망 후에도 변함없는 영향력을 행사하며 '진(眞)주인공'급 역할을 이어갔다. 짧은 영상편지 하나만으로 송중기도 울리고 시청자까지 울린 이성민의 열연은 더이상 이성민표 진양철을 볼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정도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일각에서는 "이성민 연기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며 '백상예술대상' 대상을 점치는가 하면, "회장님의 빈자리가 느껴진다"며 예상치 못한 진양철의 퇴장에 그를 그리워하는 반응도 이어졌다. 이성민의 인생연기로 '재벌집 막내아들'을 넘어 '재벌집 할아버지' 급 반향을 일으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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