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만추 속으로 떠난 여행…내장산
(정읍=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한국은 산이 많은 덕에 단풍의 아름다움을 접할 기회가 적지 않다. 단풍 명소 중 으뜸이라면 내장산을 꼽는 풍류객이나 여행자들이 많을 것 같다. 내장산 단풍을 직접 보았다면 말이다. 내장산 단풍은 붉고 화려하고 풍성하다. 단풍나무들의 교향악, 자연의 향연이라 할 만하다.
단풍의 처음과 끝…내장산
내장산은 전국의 유명 관광지 중 단풍이 가장 늦게 드는 편에 속한다. 10월 초·중순에 단풍이 드는 설악산, 북한산의 단풍이 거의 지고 난 뒤인 10월 말∼11월 초순에 단풍이 절정에 이른다.
이 때문에 겨울을 예감케 하는 찬 바람이 부는데도 단풍 구경을 제대로 못 했거나 단풍을 좀 더 즐기려는 미련이 남은 애호가들은 내장산을 찾는다. 으뜸이자, 단풍철의 대미를 장식하는 내장산 단풍을 단풍의 처음과 끝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내장산 단풍은 '조선 8경' 중 하나였을 정도로 예부터 절경으로 명성이 높았다. 내장산은 남원 지리산, 영암 월출산, 장흥 천관산, 부안 능가산과 함께 호남 5대 명산으로 통한다.
신선봉(763m)이 주봉이고, 봉우리들의 높이가 700m 내외이지만 봉우리 정상이 저마다 독특한 기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풍나무 숲에 폭 안긴 듯한 내장사를 굽어보는 우람한 바위 절벽인 서래봉(580m)은 어여쁜 단풍에 기품을 더한다.
내장산(內藏山)은 산 안에 감춰진 보물이 무궁무진할 정도로 많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골짜기가 워낙 많아 인파가 몰려도 보이지 않고, 마치 양의 내장 속에 숨어 들어간 것 같다고도 한다.
내장산을 찾는 탐방객은 연간 100만 명을 넘는다. 이 중 35만여 명, 즉 전체 방문객의 35%가량이 가을에 방문한다.
가을이면 내장산은 산홍(山紅), 수홍(水紅), 인홍(人紅)을 이룬다. 산은 만산홍엽이고, 단풍을 반사하는 호수와 계곡의 수면도 붉게 물든다. 울긋불긋 화려한 옷차림의 인파도 진풍경이다.
탐방객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찬사를 쏟아내는 듯하다. '와∼' '너무 예쁘다.' '아! 행복해' …. 내가 사는 곳에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자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랍고 고맙다.
붉게 타는 듯 화려한 내장사 단풍
내장산국립공원은 크게 내장산, 백암산, 입암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장산은 내장사 일대가, 백암산은 백양사 주변의 단풍이 멋스럽다.
두 사찰로 이어지는 차도에서부터 단풍 터널이 시작된다. 차도의 가로수까지 합하면 두 곳의 단풍 터널은 각각 수 킬로미터에 달한다. 내장사 일대 단풍나무 숲의 아름다움은 가히 압도적이다. 붉게 물든 숲이 울창하고 크다.
내장산 단풍길 중에서 방문객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곳은 매표소에서 탐방안내소에 이르는 자연사랑길, 108단풍터널길, 우화정, 원적골자연관찰로, 도덕암 가는 길 등이다.
편도 2.6㎞에 이르는 자연사랑길과 주변의 넓은 들판은 붉은 단풍나무 숲과 터널이 장관을 연출한다. 내장산에서 단풍이 가장 곱게 물드는 곳이기도 하다.
108단풍터널길은 내장사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약 500m에 이르는 흙길이다. 108그루의 아름드리 단풍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불교에서 '108'은 인간이 가진 감정의 수를 뜻한다고 한다.
내장산을 찾은 길손은 근심과 번민을 이 단풍나무들에 걸어두고 떠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길이다. 일주문에 서서 천왕문 쪽을 바라보면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단풍 속으로 걸어가는 탐방객들의 뒷모습이 아련할 뿐이다.
연못 한가운데 선 우화정은 내장산에서 단풍이 제일 빨리 드는 곳이다. 빨강, 노랑 등 다채로운 색의 단풍과 파란 하늘, 단풍을 은은히 반사하는 호수 표면이 어우러진 풍광은 잘 그린 수채화처럼 맑고 화사하다.
약 3㎞에 이르는 산책로인 원적골자연관찰로 주변에서는 단풍나무 단목으로는 최초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단풍나무(수령 약 290년), 수령 약 310년의 벽련암 단풍나무, 비자나무 군락지, 굴거리나무 군락지 등을 볼 수 있다.
도덕암 단풍나무 길은 길지 않지만, 운치가 있다. 케이블카를 타면 내장산의 타오르는 듯한 단풍을 넓게 조망할 수 있다.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백양사 단풍
내장사와 백양사는 모두 창건 연대가 백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찰이다. 그런 만큼 주변에는 노거수의 멋을 뿜어내는 큰 나무가 많다.
백양사 단풍나무 숲은 피톤치드 향이 가득한 비자나무 숲, 수백 년 된 갈참나무 터널, 노란 은행나무, 붉은 감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 등과 어우러진 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백양사 경내에 있는 고불매(古佛梅)는 호남 5매 중 하나로 350년의 수령을 자랑한다.
운문암 계곡과 천진암 계곡의 물이 만나는 곳에 세워진 쌍계루는 고려 시대 세워진 누각이다. 포은 정몽주가 백양사를 방문했을 때 지은 우국충정의 시가 전해 온다.
쌍계루는 내장사 쪽의 우화정과 마찬가지로 단풍철이면 많이 사진작가들이 찾는 촬영 명소이다.
내장산 단풍이 아름다운 이유
단풍은 최저 기온이 5℃ 이하로 내려가면 시작된다. 기온이 내려가면 나무는 겨울을 나기 위해 수분과 영양분을 잎사귀가 아닌 줄기로 보낸다. 그 결과 잎의 엽록소 양이 줄면서 녹색이 사라지고 색이 변한다.
이때 나뭇잎은 카로틴 함량이 많으면 노란색, 크산토필이 많아지면 주황색, 안토시아닌이 많으면 붉은색이 된다. 이 색소들은 일교차가 클수록 합성 반응이 활발해진다. 남부 내륙에 자리 잡은 내장산은 일교차가 커 이 색소들이 많이 만들어진다.
또 내장산은 주변에 높은 산이 없는 평야 지대에 솟아 있기 때문에 일조 시간이 길다. 구름 낀 날이 적고 햇빛을 많이 받으면 나무는 광합성량이 많아지고 잎 속의 당분도 늘어나 단풍이 예쁘게 물든다.
단풍나무 종류가 다양한 것도 내장산 단풍이 화려한 이유이다. 내장산에서 자라는 단풍나무는 11종으로 설악산(6종), 지리산(4종), 오대산(4종)의 단풍나무들에 비해 색깔이 다양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아름다운 단풍을 감상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면서 일교차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장산 단풍의 아름다움을 글로 옮길 수는 없을 것 같다. 한눈에 파악하기도 어렵고 가슴에 다 담기도 벅차다. 그 아름다움이 오랫동안 지켜져 여행자들을 행복하게 하길 기원한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1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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