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야영 거창 우두산] 혼자는 무서워 vs 혼자라서 자유로워

민미정 2022. 12. 21.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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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많은 백패커와 겁 없는 백패커가 산에서 토론을 벌였다
우두산 마장재의 밤 풍경. 그곳엔 밝은 달과 아름다운 별, 그리고 마음을 나누는 우리들만이 존재했다.

내가 첫 번째로 해외 원정에 나선 해는 2009년이다. 일본 후지산(3,776m) 등정이 목적이었다. 당시 갓 등산을 시작했지만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있어 체력에 관한 걱정은 없었다. 길 찾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 산장에서 머물렀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바깥이 비바람에 소란스러웠다. 정상에 오르려던 몇몇 등산객들이 기상악화로 발이 묶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짐을 꾸렸다. 첫 해외 원정을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산장지기가 조용히 다가와 "위험하니 일출은 포기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비바람 속에서의 산행 경험이 몇 번이나 있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극구 말리는 통에 포기하고 잠을 잤다.

아침에 산장지기는 비바람 속에서 후지산 정상에 오르면 사망이 아니라 바로 실종이라고 섬뜩한 얘기를 전했다. 그렇게 고산에 대한 경험치를 하나 얻었다. 그리고 이듬해 후지산 정상 등정에 재도전했고 끝내 성공했다. 다음부터 자신감이 생겨 매년 빠짐없이 일본 원정을 떠났다. 북알프스와 남알프스, 홋카이도까지 혼자 또는 지인들을 모아 떠났다.

고프로 맥스(360도 카메라)로 담은 국내 최초의 Y자형 출렁다리. 고소공포증이 심한 김성미는 쏜살같이 다리를 건너가는 바람에 셋이서 단체샷을 찍었다.

산에 관한 욕심이 커졌고, 버킷리스트가 늘어났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났다. 세계여행 초반엔 동행이 있었다. 팀은 급하게 결성됐다. 그래서인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여행보다 신경 쓸 게 너무 많았다. 혼자서는 언제 어디서든 계획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는 여행이 좋았다. 실수를 연발해도 말이다.

나는 요즘도 종종 홀로 백패킹을 떠난다. 세계여행 중에도, 지금도 항상 받는 질문이 있다.

"혼자서 안 무서워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찔하다.

예전에는 무서웠다. 멋모르고 비바람 속에서 후지산 정상에 오르려고 했던 것처럼 무모한 행동을 저지르고 혼자 사고를 당할까 봐. 캐나다 토론토에서 히치하이킹 하다가 닭장 같은 경찰차에 실려 조사를 받았을 때처럼 영문도 모른 채 어딘가에 잡혀 갈까봐(캐나다 여경이 여권 사진과 새까매진 내 얼굴이 다르다며 확인하는 동안 한국으로 강제 소환 당할까 봐 겁이 났었다). 지금은 혼자 하는 여행 '만렙(최고 레벨)'이 됐다. 어떤 게 더 안전한지, 해도 될 것과 하지 말아야 될 것을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운도 좋았다. 그 썰을 다 풀자면 몇 날 며칠 걸릴지 모른다. 그래서 혼자 가고 싶은데 용기가 나질 않는다는 사람들에게 굳이 홀로 떠나기를 권하지는 않는다.

5년 전, 처음 월간<山>에 세계여행기를 연재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기사에는 여러 댓글이 달렸다. 그중 '젊은 여자애들 선동해서 사지로 몰아 넣는다'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세상에 아름다운 곳이 이렇게 많다는 걸 알려 주고 싶었던 것뿐인데, 그렇게 매도하다니! 지금은 좀 나아졌다. 악플과 선플이 반반이다. 세상은 넓고 꼭 봐야 할 곳, 꼭 가야 할 곳은 수두룩하다. 여행을 좋아한다면 혼자 가야 할 일이 꼭 생길 것이다. 그러니까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본인이 모든 일을 책임 질 준비가 되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나의 여행기가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출렁다리를 건너 안전한 곳에 도착하고서야 단체샷을 찍을 수 있었다.

출렁다리보다 암릉구간!

지인들과 거창 우두산으로 백패킹을 갔을 때 일이다. 전주에 사는 동생 김효주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 우두산에 Y자형 출렁다리가 있대요. 백패킹 가보고 싶은데 같이 갈래요?"

등산은 혼자서도 잘 다니는데 백패킹은 혼자 가기 좀 무섭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먼 거창까지 부르기가 미안한지 말꼬리를 흐렸다. 마음 편한 동행이라면 혼자보다 함께가 좋다. 내친김에 김정미와 김성미도 불렀다. 정미는 네팔에 수없이 다녀온 베테랑 모험가다. 그런 그녀가 백패킹을 가면 무서워서 잠을 잘 못 잔다. 텐트는 꼭 사이트의 중앙이나 혹은 누구 옆에 붙여 설치한다. 성미도 겁이 많다. 야영지에서 가끔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하룻밤을 뜬 눈으로 지새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고소공포증까지 있어서 절벽에서 야영하는 걸 좋아하는 나와 함께 백패킹을 떠날 때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한다. 혹자는 무섭다면서 왜 기를 쓰고 가냐고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패킹은 그만큼 재미있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우두산 정상부에는 쓰나미 같은 기암 절벽이 즐비하다.

경남 거창군에 있는 우두산(1,046m)은 산 모양이 소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렇게 불린다. 하지만 지금 우두산 산 모양에 관심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 같다. 여기에 Y자형 출렁다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두산보다 이 다리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출렁다리 풍경도 좋지만 우두산은 상봉에서 의상봉,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수려한 암릉구간도 괜찮다. 여기가 진짜 풍경 포인트다.

"우리는 당신들을 재워 줄 수 없습니다!"

겁 없는 백패커와 겁 많은 백패커가 고견사 주차장에 모였다. 유명 관광지인 만큼 붐볐다. 우리는 배낭을 짊어졌다. 사람들 사이를 뚫고 출렁다리까지 이어진 계단을 올랐다. 커다란 짐을 진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엄청나게 큰 배낭도 아닌데, 쉬고 있던 사람들마다 우리를 보고 엄지를 치켜 세웠다. 누군가가 외쳤다. "히말라야 원정대 같아요!" 모르시는 말씀. 정작 히말라야에 가면 원정대는 괴나리 봇짐만 진다. 나머지는 포터의 몫. 고로 나는 포터가 된 기분이었다. 각 40m, 24m, 45m 길이의 세 갈래로 뻗은 빨간 출렁다리 앞에 섰다.

"으악! 우리 저기 건너야 해요!?"

고소공포증이 심한 성미는 비명을 질렀다.

"싫으면 장군봉으로 해서 의상봉 암릉구간 지나 마장재로 올래? 6~7시간이면 충분할거야!"

마당재 언덕으로 가는 길에 억새꽃이 예쁘게 피었다.

성미에게 제안했다. 그러자 성미는, "아. 저 말입니까? 저는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하고 씩씩하게 앞서나갔다. 우리도 성미를 뒤따라 갔다. 정중앙에 도착했을 때 사진을 찍기 위해 멈췄다.

"단체사진 찍자!!"

"응? 성미 어딨어??"

두리번거리며 성미를 찾았다. 저 멀리 출렁다리 끄트머리에 로봇처럼 앞만 보고 걷고 있는 성미가 보였다. 안 무섭다더니 꽁무니를 빼고 있었다. 언행불일치!! 하하. 결국 셋이서만 사진을 찍고 서둘러 성미를 따라갔다.

마장재 오르는 길은 어렵지 않았지만, 제법 가팔랐다. 쉬엄쉬엄 능선에 올랐다. 출렁다리와는 달리 한산했다. 정상과 마당재의 갈림길에서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야영하러 왔나 봐요? 우리 산행하다 늦어서 못 내려가면 그쪽으로 갈 테니 좀 재워 줘요!"라며 그들은 한바탕 웃었다. 나는 그들의 농담이 재미없었다. 진짜 오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았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우리는 대꾸 없이 마장재로 향했다. 찝찝했던 기분은 병아리 솜털 같은 억새가 핀 황금 들판을 보자 날아가버렸다. 야영지에 도착했다. 우두산 상봉에 다녀오면 해가 질 것 같아 설치하기 어려운 쉘터 먼저 펼쳤다. 쉘터 안에 배낭을 모아두고 상봉으로 향했다. 갈림길에서 식사를 하던 등산객들은 떠나고 없었다.

바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우두산을 오르며 짜릿한 리지등반을 즐길 수 있다.

"아까 그 사람들 진짜 우리 쪽으로 오진 않겠지?"

정미가 걱정스러운 듯 말을 꺼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안 오지. 걱정마! 와서 해코지를 한다면 내가 다 물리쳐줄게!"

안심시킬 겸 장난스레 대꾸했다. 순간 머릿속에는 '진짜 누군가 오면 어떡하지?' 걱정이 스쳤다. 무기로 쓸 만한 게 뭐가 있는지 떠올렸다. 적어도 스틱 정도는 있으니 됐다. 정미가 가볍게 던진 말 한마디가 우리에게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겁 많은 정미는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 듯했다. 종주하는 사람들은 이미 정상부에서 반대로 넘어가거나, 이쪽으로 넘어오고 있을 것이었다. 나도 이쪽으로 오는 사람이 아예 없길 바랐다. 정상에 가까워지자 암릉이 나타났다. 우회로가 있지만, 효주와 나는 암릉으로 기어 올라갔다. 정상 쪽으로는 쓰나미처럼 덮칠 듯 솟아 있는 바위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정미와 성미에게도 올라오라고 했다. 성미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워워~ 안 갈래요!"하며 뒷걸음질쳤다. 그녀는 마치 도망자 같았다. 출렁다리 위에서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정미는 경치를 구경하고는 암릉 위로 넘어가는 건 무섭다며 다시 내려갔다. 효주와 나는 암릉 위로 정상까지 이동했다. 정미와 성미는 정상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효주와 나는 다시 암릉에 올라섰다. 정미와 성미는 우회길로 하산했다.

암벽을 좋아하는 김효주는 정상을 향하는 내내 스파이더맨처럼 바위에 붙어 있다.

암릉 너머의 부드러운 능선은 파도처럼 넘실대며 마당재까지 이어졌다. 서쪽으로 하늘로 치솟을 듯한 기세로 의상봉이 도도하게 서 있었다. 의상봉은 다음에 가기로 했다. 마장재로 돌아왔다. 어두워지기 전에 텐트를 쳤다. 저녁 식사를 하며 혼자 떠나는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밤이 깊어 각자 텐트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나는 별 사진을 찍기 위해 한참 동안 밖에서 서성거렸다. 정미가 텐트 문을 열고 나왔다.

"나 무서워서 혼자 못 잘 것 같아."

정미에게 물었다.

"왜? 그 사람들 올까 봐?"

"아니, 그냥 밖에서 소리가 나니까 무서워서."

결국 정미는 성미 텐트에서 함께 잠을 잤다. 모든 텐트에 불이 꺼지고 나서 나도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김효주가 부드러운 능선과 암릉 구간이 맞닿은 곳에 위치한 전망대에 멈춰 서서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Q 혼자 백패킹 갔을 때 무서웠나요?

김성미

당연히 무섭죠. (뭐가요?) 사람이오. 귀신도 무서워요. 멧돼지도 무섭고. 무서워서 텐트 안에 들어가면 밖을 못 나와요.

김효주

주변에 다른 팀이 있으면 안 무서워요. (그럼 사람이 무서운 건 아니네요?) 산에 다니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혼자 있을 때 오히려 귀신이나 동물 때문에 무섭죠.

김정미

무서워요. 자다가 동물이나 모르는 사람이 훅 들어올 것 같아서. 혼자는 절대 안 갈 거예요. (근데 해외 트레킹은 어떻게 혼자 가요?) 해외 나가면 로지에서 자니까 안전해요.

민미정

평소에 귀신은 믿지 않는데, 밤에 혼자 있으면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요. 귀신이 생각나요. 그래서 야경 찍을 때는 음악도 크게 틀어놓고, 랜턴도 밝게 켜놓고 있어요. 무서움을 참는 거죠. 화장실 안 가려고 물도 안 마셔요. 사람이 무섭지는 않아요. 다만 매스컴에 사건이 많이 나오니까 방심할 수 없는 거죠. 차라리 숙영지에 사람이 아예 없는 게 맘 편해요. 그래서 계획한 장소에 누군가 있으면 다른 장소로 이동해요. 아무도 오지 않는 곳으로. 저에겐 위험한 사람보다 존재 유무를 알 수 없는 귀신이 나아요.

인스타그램 ID ssun***(여)

혼자 가봤는데,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남자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워요. 예전에는 그런 것 신경 안 쓰고 다녔는데 뉴스에 나오는 각종 사고 소식이 겁을 먹게 만드네요.

인스타그램 ID ssan***(남)

나는 남자지만 저 역시 사람이 무서워요!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산에서 사람이 튀어나왔을 때의 공포감이란!! 더군다나 그렇게 나타난 사람이 등산복 차림이 아닐 경우에 더 무서워요.

Q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백패킹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성미

혼자는 못 가지만, 함께 가면 자신감이 생겨요.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자연 속에서 밤하늘을 보면서 솔직하고 진지하게 이야기 나눌 수도 있어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힘든 일 있으면 위로도 받고 리프레시 되거든요.

김효주

혼자 가면 밤이 길고 심심해요. 앞으로는 함께 다닐래요!

김정미

밤하늘 보는 것도 좋고,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것도 좋고요. 도시와는 다르게 자연 속에서는 오롯이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요.

민미정

해가 뜨는 새벽부터 별이 지는 새벽까지 자연의 24시간을 지켜보고 이것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는 게 좋아요. 사시사철 변화 무쌍한 날씨까지도요. 제 인생의 힐링포인트입니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죠.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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