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룽히말] 걷자니 숨이 차고, 쉬자니 얼어 죽을 것 같았다

허범 2022. 12. 21.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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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산악연맹 김미곤, 이태옥, 허범 3인 정상 등정
손발이 얼고 얼굴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이겨내고 정상에 섰다. 왼쪽부터 허범, 이태옥 대원과 김미곤 대장.

서울시산악연맹이 파견한 힘룽히말 원정대가 지난 10월 20일 힘룽히말(7,124m) 등정에 성공했다. 힘룽히말은 안나푸르나 북동쪽 보호구역에 위치해 있으며, 티베트와 네팔의 국경에 접해 있다.

이번 원정이 특별했던 건 코로나 이후 가장 규모가 큰 원정대(총 16명)였다는 것과 더욱 폭 넓은 정통 산악인 양성을 위해 비교적 고산 등반 경험이 적은 젊은 산악인들을 선발해 1년 동안 22차례에 걸쳐 암빙벽, 하중 등 극한 훈련을 시행했다는 점이다. 정상을 밟은 허범 대원의 일기를 통해 원정 기록을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정상 공격 직전인 10월 17일의 아침. 해가 떠오르는 가운데 캠프에는 긴장감이 돈다.

모든 게 압도적인 히말라야

9월 24~28일

힘룽히말 원정대 중 선발대 3명(김미곤 대장, 이동재, 김민수)이 9월 24일 오전에 먼저 출국했다. 행정처리, 식자재 구매 및 김장 등 사전에 필요한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한 발 먼저 움직였다. 선발대의 커다란 배낭과 카고백을 보니 드디어 원정이 시작됐다는 실감이 들었다.

원정대 본대 12명도 9월 27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해 인도 델리공항 경유, 28일에 네팔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했다. 카트만두의 날씨는 더웠고 하늘은 뿌옇다. 하루 빨리 히말라야에 올라가 맑은 하늘을 보고 싶다.

9월 29일

카고백을 재정리했다. 위탁수하물 무게 기준에 맞춰 23kg로 꾸린 것을 포터에 맞게 30kg으로 만들었다. 이후 카멜시내에서 필요한 장비들을 구입했는데, 국내에서 쉽게 보기 힘든 우모미튼장갑, 헤비다운, 빙벽장비가 눈을 즐겁게 했다. 다음날부터 바로 워킹은 아니지만, 차량이동으로 캐러밴을 시작하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9월 30일

새벽 4시에 기상해 5시에 베시사르Besisahar (760m)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했다. 1차선 도로임에도 불구하고 추월이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충돌할 것 같은 아찔한 상황이 많이 있었으나 현지 운전자들에게는 일상인 듯했다. 9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베시사르에 도착 후, 바로 고토Koto(2,675m)로 향하는 지프에 탑승했다. 오프로드를 4시간 넘게 달렸고, 그런 도로에서 속도를 내며 추월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고토에서 메타로 가는 카라반 중 만난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고토에 도착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높은 고도다. 고소증세가 올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별 증상은 없었다. 하지만 숨이 차지 않는데도 심박수가 120 이상으로 올라왔다. 김미곤 대장님은 "산소가 감소되어 심장이 평소처럼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더 빠르게 뛰는 자연스러운 증상"이라고 했다.

10월 1일

캐러밴 첫 워킹이 시작되었다. 목적지는 메타Meta(3,560m)다. 로지에서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안나푸르나2봉이 보였다. 하늘은 맑고 한국의 5~6월 날씨라서 긴팔, 반바지를 입고 출발했다. 걷는 내내 '모든 게 크다'고 느꼈고 주위의 웅장한 산, 바위에 압도되었다.

8시간쯤 걸으니 메타 마을에 도착했다. 다행히 아직까지 고소증세는 없었다. 예방을 위해 자면서도 숨을 깊게 쉬려고 했다. 무의식적으로 얕은 숨을 쉬면 신체 산소공급이 줄어 고소증세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폭설 빗겨가는 행운 따라

10월 2~3일

약 6시간을 걸어 도착한 키양Kyang(3,740m)에서 처음으로 고소증세가 왔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은 울렁거리며 식욕이 확 떨어졌다. 아침식사를 하면 구토할 것 같은 느낌이었으나, 천천히 먹어봤다. 마지막 마을 푸Phu(4,050m)로 걸으면서 점점 몸은 괜찮아졌다. 이동거리가 짧기 때문에 도중에 충분히 쉬면서 사진촬영을 많이 했다. 푸는 인구 170명 이상의 생각보다 큰 마을이었다.

10월 4~8일

이례적인 폭설로 인하여 푸마을에 많은 눈이 쌓였다. 원래 베이스캠프와 ABC(전진베이스캠프)엔 눈이 쌓여 있지 않지만, 폭설로 인해 눈이 허리 높이까지 쌓였다고 한다. 또한 우리가 지나온 길도 유실돼 다른 팀들은 올라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일정보다 빨리 출발했으면 베이스캠프 또는 ABC에서 폭설을 만나 고생했을 것이고, 늦게 출발했으면 푸마을까지도 못 왔을 것이다. 하늘이 돕는 것일까?

ABC를 구축한 대원들이 잠시 눈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10월 9~12일

베이스캠프의 눈이 아직 많이 녹지 않았지만, 미리 설치해 둔 다이닝 텐트와 장비 카고백의 관리가 필요해 김 대장님과 나는 먼저 베이스캠프(4,850m)로 출발했다. 1시간 정도 무리 없이 갔으나, 이후 호흡이 힘들어지며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었다. 심박수도 치솟았고, 20걸음 걷고 쉬고 걷고 쉬고를 반복하며 높게 쌓인 눈을 헤쳐 갔다. 베이스캠프의 텐트가 시야에 들어왔으나,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바로 눈앞에 있어 금방 갈 것 같지만 항상 멀더라'는 히말라야 선답자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약 4시간 만에 고도를 800m 올려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우리팀 말고도 다른 8개의 팀들이 베이스캠프를 구축한 상태다. 다른 멤버들이 도착하기 전에 캠프 정리를 했다. 다이닝 텐트 내부 세팅, 키친 텐트 및 창고 정리, 텐트 주위 배수로 작업을 했다.

대원들이 하나 둘씩 도착한다. 식사 후 취침텐트도 구축하고, 다이닝 텐트 내부에 전기도 깔며 베이스캠프를 점점 완성시켜 나갔다. 또한 본격적인 등반 준비도 하며 라마제도 거행했다.

10월 13일

고소적응차 ABC(5,400m)를 찍고 내려왔다. 약 2시간 빙하지대를 건너자 계속 오르막이다. 대장님은 "본인만의 스텝, 워킹패턴을 유지하라"고 했다. 사실 5걸음을 가나, 10걸음, 20걸음을 가나 똑같이 힘들다. 정신력으로 버티면 100걸음까지도 쉬지 않고 갈 수는 있었다. 그러다 숨이 너무 가빠질 때는 1분 정도 이내로 멈췄다 다시 나아갔다. ABC에 도착 후 잠시 휴식을 하고 다시 베이스캠프로 내려왔다.

ABC에서 별빛이 내리는 히말라야의 밤이 저물어 간다.

10월 15일

하루 휴식 후 ABC 구축을 위해 올라갔다. 이틀 전 한 번 다녀왔기 때문에 좀더 수월했다. 3인 텐트 2동과 돔형 다이닝 텐트를 설치했고 다이닝 텐트에서 9명이 같이 생활했다. 대장님이 향후 전략을 브리핑했다. A안은 캠프1(6,100m) 찍고 내려오기→캠프1 구축→휴식→캠프2 구축→등정 시도였다. B안은 대원들의 컨디션을 확인하면서 시도하는 방법인데, 캠프1에서 컨디션이 좋을 경우 캠프2 구축 없이 바로 정상공격을 하는 방법이다. 캠프1에서 캠프2(6,200m)가 멀지 않기 때문이다.

10월 16일

연일 날씨는 맑고, 하늘색은 점점 짙어져 간다. 고소적응을 위해 캠프1으로 출발했다. 초반부는 급경사인 위험구간으로, 로프 설치 후 주마링으로 올라갔다. 이후 계속 오르막을 걸어 오르는데, 베이스캠프에서 ABC로 갈 때 했던 것처럼 100걸음과 1분 휴식 반복을 통해 4시간에 걸쳐 도착했다. 힘룽 정상과, 반대편에 안나푸르나 1~3봉, 다울라기리가 뚜렷하게 보였다. 다시 천천히 ABC로 복귀했다.

10월 17일

ABC에서 하루 휴식을 취했다. 다른 팀들 소식이 들려왔는데, 네팔과 영국 팀은 등정에 실패했으나 독일과 프랑스팀이 등정에 성공했단다. 우리 팀의 계획은 이랬다.

'A조 5명은 18일 캠프1 지나 캠프2 구축. B조 10명은 캠프1 구축 후 취침, 19일에 캠프2로 이동. 19일 밤에 전 대원 등정 시도'

하얀 능선을 따라 ABC로 오르고 있는 대원들
원정대원들이 고소적응을 위해 베이스캠프와 ABC를 오르내리고 있다.

손발은 얼고, 얼굴은 타고

10월 18일

계획대로 A조는 캠프2로, B조는 캠프1으로 출발했다. 나는 A조다. 캠프1을 지나 캠프2로 간다. 캠프1은 쉽게 올라갔다. 캠프2도 여기서 2시간 내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다.

캠프2에선 힘룽히말 정상이 더 가까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갈 것 같았다. 물을 끓이고 휴식을 취한 다음, 저녁 준비를 했다. 첫 텐트식으로, 알파미와 건조된장국, 젓갈을 먹었다. 대장님, 태옥이 형, 동재 형, 민수 형과 나 5명은 그릇 하나로 같이 저녁을 해결했다.

10월 19일

전날 너무 춥고 고르지 못한 눈 위라 잠이 들지 못해 많이 피곤한 상태다. 밤에 등정을 시도하기 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려고 다같이 낮잠을 잤다. 원래라면 캠프1에 있는 B조가 올라왔어야 했으나 이동 거리가 짧은 김에 캠프1에서 머물고 정상 공격 시작에 맞춰 올라오기로 했다.

밤 9시, 눈을 뜬 뒤 바로 물을 끓이고 짐정리를 시작했다. 지금부턴 1분, 1초가 중요하다.

밤 10시, 생각보다 물이 잘 끓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캠프1에서 출발한 대원들이 하나둘씩 벌써 도착해 정신없이 장비를 착용했다. 출발 전 먹으려고 한 컵수프와 간식들도 먹지 못했다.

밤 11시, 캠프1에서 출발한 대원들이 모두 도착했으나, 대부분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다. 운행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대원들은 캠프에서 대기한다. 대원들의 상태를 파악하느라 오래 서있어서 그런지 손과 발끝이 서서히 시려오기 시작했다. 이후 1열로 다같이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캠프2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김미곤 대장과 허범 대원(오른쪽).

밤 12시,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많이 차서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속도를 높이기엔 숨이 너무 차고, 천천히 가기엔 온몸이 부르르 떨리며 손발이 시려 동상에 걸릴 것 같았다. 미칠 지경이었다.

10월 20일 새벽 1시, 손발을 계속해서 꼼지락거리다 주마링을 시작하니 손발이 조금씩 괜찮아졌다. 하지만 옆 대원과 한마디도 나눌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어 이번엔 얼굴이 얼어붙는다.

새벽 3시, 볼 수 있는 것은 헤드랜턴으로 비춰지는 내 앞 일부분, 다른 대원들의 불빛, 그리고 밝게 뜬 초승달이다. 산 중턱에서 주마링을 계속하면서, '언제까지 올라가야 하나', '과연 끝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강하게 때리는 매서운 바람과 맞서며 계속해서 올라갔다.

새벽 5시, 칼바람에 귀, 코, 볼이 꽁꽁 얼어버린 것 같았다. 빨리 해가 떴으면 좋겠다. 문자 그대로 끝이 보이지 않으니 정신이 피폐해진다. 약 한 시간 후면 해가 뜬다. 정상을 보며 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아침 6시, 날이 밝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 봉우리들은 모두 나보다 낮은 위치에 있었다. 고도는 6,700m 정도로 정상 아래 400m 지점까지 왔지만 급경사에 가려져 정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침 8시, 솟은 해는 뜨겁고 바람은 여전히 차다. 모자를 바꾸고,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이런 행동 하나하나도 고역일 정도로 체력은 바닥이었다. 선크림도 바르지 못해 코와 볼이 시커멓게 타들어가 화상을 입었다.

아침 9시, 7,000m 지점을 넘어 정상 직전 중턱에 왔다. 정상까지 100m도 채 남지 않았는데 바람이 더욱 강해져서 움직이지 못했다. 7,000m의 고도는 이전까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가빠졌고, 몸이 부르르 떨리며, 잠도 쏟아지고 정신을 점점 잃는 것 같았다.

대장님이 만들어 준 설동에서 바람을 피한다. 태옥이 형과 눈빛으로 서로 '견뎌보자'는 무언의 약속을 건넸다. 그런데 10분만 더 있다가는 얼어 죽을 것 같았다. 바람이 조금 약해지자, 대장님이 "끝까지 가보자"고 한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때 태옥이 형은 '대장님이 내려가자면 못 이기는 척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진작 야간 산행 때도 네 불빛이 앞에 없었더라면 포기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제 하네스에 로프를 고정시키고 다 같이 안자일렌으로 올라간다. 성큼성큼 올라가는 대장님의 발걸음을 따라가기 버겁다. 정신이 아득하다.

아침 10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상이다. 대장님이 가장 먼저 올라가 만세를 외쳤고 이후 올라간 나와 태옥이 형을 안아주면서 환호성을 지른다. 2평 정도의 정상에 10분 동안 머물렀다는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오직 '해냈다'는 생각이 온 머리를 지배했다.

목이 망가져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데다 몸도 괴롭지만 앞뒤좌우 어딜 봐도 너무나 멋지고 행복했다. 이윽고 하산을 시작하고 나선 태어난 이래 가장 심하게 숨을 헐떡이며 걸었지만, 맑고 푸른 하늘과 수많은 하얀 봉우리들에 이내 정신을 빼앗겼다.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힘룽히말 정상부.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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