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송혜교는 잊어!…‘19금’ 학폭에 치밀한 복수
흥행제조기 김은숙 작가가 독하게 ‘매운맛’을 장착하고 돌아왔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가 오는 30일 파트1에 해당하는 8회까지 공개하는 <더 글로리>는 김 작가의 첫 오티티, 첫 복수극, 첫 ‘청불’ 드라마다. 김 작가의 전작 <태양의 후예>(KBS2)의 송혜교가 주연을 맡았고, <비밀의 숲>(tvN)의 안길호 감독이 연출했다. 언론에 미리 공개한 6부까지 본 결과, 올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부진을 뒤집을 기대작이 되기에 충분하다.
흡인력 강한 이야기 전개에 능한 김 작가는 <더 글로리>에서 표현 수위가 자유로운 오티티의 넓은 운동장을 십분 활용했다. 김 작가가 20일 제작발표회에서 말한 것처럼 “두 주인공 뒤로 환한 달빛 아래 벚꽃이 떨어질” 것만 같은 ‘김은숙표 드라마’의 화사함이 사라진 자리에 잔인한 폭력과 거친 언어, 어둡고 역겨운 캐릭터들이 가득하다.
<더 글로리>의 소재는 학교폭력이다. 동은(송혜교)은 고등학교 시절 같은 학교 무리의 끔찍한 폭력놀이에 몸과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엄마도, 담임 교사도 도움을 주지 않고 도리어 자신이 학교에서 쫓겨나다시피 하며 자살까지 생각했던 동은은 마음을 고쳐먹고 일하면서 검정고시를 치러 교대에 들어간다. 몇년 뒤, 치밀하게 복수를 준비한 동은은 자신을 괴롭힌 무리의 대장 노릇을 했던 연진(임지연)의 아이 담임을 맡게 된다.
김 작가는 제작발표회에서 고등학생인 딸과 대화를 하다가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이가 ‘엄마는 내가 죽도록 때리면 가슴 아플 거 같아, 아니면 죽도록 맞으면 더 가슴이 아플 거 같아?’ 묻는데, 그걸 떠올리는 순간 마음이 지옥이 됐어요.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 많은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대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가해자 연진과 재준(박성훈), 사라(김히어라), 그리고 가해자 피라미드 안에서 약자에 해당하는 혜정(차주영), 명오(김건우)까지 합세해 동은을 괴롭히는 이유는 그저 약하고 만만해서다. 성장한 뒤에도 “태어나서부터 (어둠이 없는) 백야만 펼쳐졌던” 부잣집 자식들의 삶은 승승장구다.
<더 글로리>가 폭력을 다루는 방식은 가차 없다. 우선 동은이 폭력을 당하는 방식이 상상을 뛰어넘게 잔인하다. 가해자들의 면모는 복잡한 속내 없이 그저 사악하다. 캐릭터를 단순화함으로써 복수극의 쾌감을 극대화한다. 캐릭터가 평면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악한이 반성하는 일이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선 드물다는 점에서 오히려 설득력을 갖기도 한다.
김 작가는 “온갖 악의를 다 담아서 첫 장르극을 써봤다”며 “학폭 피해자들은 현실적 보상보다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한다는 글을 보면서 왜 그럴까 고민하다가 이들이 원하는 건 뭔가를 얻는 게 아니라 되찾는 것, 잃었던 인간의 존엄이나 명예라는 생각을 하면서 ‘더 글로리’라는 제목을 짓게 됐다”고 설명했다.
<더 글로리>는 여성 연대에 대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동은은 자신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세상에서 외롭게 싸우며 웃음을 잃어버렸다. 이런 동은을 피식 웃게 만드는 인물은 가정폭력 피해자인 현남(염혜란)이다. 미끼를 찾던 동은에게 우연히 말 걸면서 비밀스러운 거래를 하게 되는 현남은 어둡고 무거운 드라마에 숨통을 틔워주는 인물이다. 김 작가는 “현남이 극 중 ‘맞지만 명랑한 년’이라고 자신을 말하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캐릭터다. 처음부터 염혜란씨를 염두에 두고 각본을 썼다. 냉정한 동은에게서 어쩔 수 없는 인간미를 끌어내는 사랑스러운 인물”이라며 현남 캐릭터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김 작가는 처음부터 ‘청불’로 생각하고 썼다고 한다. 욕설이나 학폭 같은 내용이 아니라 “동은이 가진 철학이 ‘19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동은은 엄마, 교사, 경찰 등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서 사적 복수를 선택한다. 글을 쓰면서 사적 복수의 의미를 많이 생각했는데 이 의미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성인 시청자들에게 맞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은숙표 로맨스는 없을까? “동은을 돕는 여정(이도현)과 연애와 연대 중간 어디쯤의 관계를 형성한다. 그런데 둘을 세워놓으면 그림이 너무 예뻐서 (나도 모르게) 쓰다 보면 벚꽃 핀 달밤에 난리가 나는 거다.(웃음) 그렇게 멀리 갔다가 ‘장르물 아닌가요? 로코·멜로인가요?’라는 감독님 이야기를 듣고 적당한 거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고 김 작가는 말했다.
복수극 주인공 연기는 처음이라는 송혜교는 “대본을 처음 보고 정신이 멍해질 정도였다. 어린 동은은 무방비로 상처받았지만, 오랫동안 가해자에게 처절한 복수를 준비한 인물이기 때문에 불쌍하기보다는 단단한 모습, 나는 이제 이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더 글로리>는 이번에 파트1(8부작)을 공개하는 데 이어, 내년 3월 파트2(8부작)를 추가 공개한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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