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청산’ 의혹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40일 넘게 단식 중

장현은 2022. 12. 2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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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장관은 세차례 면담요청 모두 거절
최윤미 전국금속노조 경기지부 한국와이퍼분회 분회장이 5살 아들 사진을 보여주며 웃고 있다. 최 분회장은 “회사가 청산 발표를 한 뒤 가족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생존권을 위해 싸우고 있다”며 “5살 아들에게 왜 엄마가 밥을 굶어야 하는지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a href=\"mailto:mix@hani.co.kr\"mix@hani.co.kr/a

‘위장청산 철회. 덴소코리아 특별근로 감독 실시. 한국와이퍼 노동자 고용문제 해결하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1문과 2문 사이 두겹세겹의 비닐로 칭칭 동여맨 1평(3.3㎡) 남짓 천막 농성장에 커다란 펼침막이 걸려 있다. 최윤미 전국금속노조 경기지부 한국와이퍼분회 분회장과 이규선 전국금속노조 경기지부 지부장은 지난달 7일 이곳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20일은 두 사람이 식사 없이 아침을 맞이한 지 44일째 되는 날이다. “길바닥으로 쫓겨나 죽으나 여기서 굶어 죽으나 똑같아요. 그래서 나왔습니다.”

몇해 전까지 최 분회장은 와이퍼 부품을 만드는 평범한 노동자였다.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에 있는 ‘한국와이퍼’ 공장에서 2005년부터 18년간 일했다. 한국와이퍼는 일본 자동차 부품 기업인 덴소(DENSO)가 100% 출자해 만든 한국 자회사다. 최 분회장과 동료들이 만든 와이퍼 부품은 덴소 한국지사인 ‘덴소코리아’를 통해 현대자동차 등에 납품됐다. 큰 돈을 버는 건 아니었지만, 최씨에게는 좋은 동료들과 성실히 일하며 정년을 바라볼 수 있는 회사가 있었다.

‘고용 불안’이 스며든 건 2018년부터였다. 회사는 갑작스레 새로운 납품 계약을 중단했다. 2020년엔 회사의 청산 계획이 담긴 문건이 발견됐다. 노동자들은 반발했고 회사는 “신차 수주 활동 진행을 하고, 총고용 보장과 흑자화 노력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2021년에는 한국와이퍼의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일본 기업 ‘덴소’의 한국내 사업 총괄회사인 ‘덴소코리아’가 연대 서명을 해 △물량확보로 총고용 보장 △사측의 대체생산 금지 및 노조 검증 △청산·구조조정은 노조와 사전 합의 △협약 위반시 1인당 1억원 손배 등의 내용을 담은 ‘노사 고용안정협약’도 체결했다.

하지만 협약 체결 9개월 만인 지난 7월7일 약속은 무참히 깨졌다. 덴소코리아는 누적된 적자를 이유로 한국와이퍼 청산을 일방 발표했다.

최윤미 전국금속노조 경기지부 한국와이퍼분회 분회장과 이규선 전국금속노조 경기지부 지부장이 국회 앞에 설치된 농성 천막 앞에 서 있다. 20일로 두 사람의단식농성은 44일째로 접어들었다. 사진은 단식 40일째인 지난 16일 촬영됐다. 장현은 기자 a href=\"mailto:mix@hani.co.kr\"mix@hani.co.kr/a

‘기획청산’ 의혹이 제기되자 고용노동부는 10월26일 한국와이퍼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에 들어갔다. “반쪽짜리 근로감독이죠. 불법 대체 생산과 기획청산을 주도하고 있는 건 덴소코리아거든요.” 노동자들은 덴소코리아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구 중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한국와이퍼에 대한 덴소코리아의 사용자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특별근로감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 5일 한국와이퍼는 2차 희망퇴직 공고를 냈다. 1차 24명, 2차 8명…32명이 조기퇴직을 신청했다. 나머지 222명의 조합원은 ‘2시간 근무, 6시간 파업’ 형식의 투쟁에 나섰다. “우리가 여길 떠나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파견업체로 가서 더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이게 되겠죠. 결국 남는 건 아픈 몸과 두 손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불안정한 삶일 거예요. 우리 노동자는 피부로 그걸 알아요. 우리의 노동 현실에 대해서 정말 잘 알아요.” 최 분회장이 40일이 아닌 50일, 60일까지 단식을 이어가겠다는 이유다.

47㎏이던 최 분회장의 몸무게는 30㎏대가 됐다. 단식 40일이 되던 지난 16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개혁을 추진하며 “법과 원칙의 토대 위에 모두가 잘사는 노동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 분회장과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정부가 말하는 법과 원칙을 알 수 없다. 노동자들은 법과 원칙을 묻기 위해 그동안 세 차례 장관 면담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배고픔으로 인한 괴로움보다 법과 상식이 통하지 않은 이 상황이 더 고통스럽습니다. 왜 법과 원칙은 협약을 지키지 않는 일본 거대 자본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걸까요?” 현재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노동조합과 단체협약 내용을 이행하지 않으면 회사 청산을 막는 ‘덴소먹튀방지법’을 준비 중이다.

한편, 20일 밤 최 분회장은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병원으로 이송됐고, 응급치료를 받은 뒤 단식 중단을 결정했다. 이규선 지부장은 계속 단식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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