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부인 재클린이 재혼식 올린 아테네 최고 일몰지
튀르키예의 지중해 도시 밀레투스와 트로이를 거쳐 유럽 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스탄불을 거치지 않고 아래쪽의 '1915 차나칼레 대교'를 건넌다. 이 다리는 다르달네스 해협을 건너는 길이 4.6km의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다. 주탑의 높이만 334m로 에펠탑보다 높다. 최첨단 토목공학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은 다리인데 만든 기업이 바로 우리나라 건설사다.
자동차 보험이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1/3 정도 저렴한 불가리아를 거쳐 그리스로 들어갔다. 카발라를 거쳐 테살로니카로 향한다. 카발라는 성서에 나오는 '빌립보'이며, 테살로니카는 그리스 제2의 도시로서 바울이 복음을 전파한 첫 유럽 지역이다. 바울이 이 도시의 교회에 보낸 두 통의 편지는 기독교 신약성서인 <데살로니가 1, 2서>에 수록되어 있다. 테살로니카 고고학 박물관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파피루스가 보존되어 있다. 벼랑 위에 세워진 메테오라 수도원으로 향하는데, 날씨가 우중충하고 가스가 심하게 끼어 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꿔 수도 아테네로 향한다.
그리스의 인구는 약 1,000만 명이다. 전체 인구의 98%가 그리스 정교회 신자다. 대표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철에는 고온 건조, 겨울철엔 저온 다습하다. 40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아오다 1832년 독립했다. 우리나라처럼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반도 국가로 6,000여개가 넘는 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에게해와 이오니아해, 지중해로 둘러싸여 있다.
수도 아테네에 전체 인구의 절반인 500만 명이 거주한다. 파르테논 신전, 디오니소스 극장, 아고라 광장,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제우스 신전 등 유명한 유적이 많아 세계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 일주일 후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아테네의 밤거리 곳곳에는 크리스마스트리와 아름다운 전구들이 불을 밝힌다. 마치 2500년 전 가장 융성했던 고대 아테네를 보는 듯하다. 아테네의 중심부에는 신타그마 광장이 있는데, 1844년 그리스 왕국의 헌법이 반포된 장소다. 신타그마는 그리스 말로 '헌법'을 의미하며, 국회의사당 앞에는 무명용사비가 있다. 이곳에서 특이한 복장을 한 근위병이 매시 정각에 교대식을 거행한다. 병사들의 복장도 이상하지만 뒤뚱거리는 신발과 동작이 코미디 같다.
13m 제우스 상은 어떻게 생겼을까?
신타그마 광장에서 동쪽으로 20분 정도 걸어가면 리케이온이 나타난다. 리케이온은 아테네 숲 속에 있던 공공장소로, 그들의 수호신인 아폴론을 기리기 위해 그의 별칭인 '리케이오스'를 따서 이름을 붙였다,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를 양성하던 학교 중 하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곳에서 기원전 343년부터 12년 동안 강의를 하면서 제자들을 양성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는 제자들과 함께 거닐면서 강의를 했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아리스토텔레스와 제자들을 모두 '소요학파'라고 부른다.
르네상스 시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3대 천재 화가로 꼽힌 라파엘로가 로마의 바티칸 성당에 그린 '아테네 학당'이 바로 리케이온을 배경으로 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1511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가로가 820cm인 대작이다. 고대 그리스의 학자들이 모여 인간의 학문과 이성의 진리를 추구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 모임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다. 관념 세계를 대표하는 플라톤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자연 세계를 탐구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손을 아래로 향하고 있다. 그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계단 한가운데 누워 있는 사람은 무욕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이며, 오른쪽 가운데는 콤파스를 들고 연구하는 유클리드가 있다. 반대인 왼쪽에는 피타고라스가 있다. 화면 오른쪽 가장자리에 검은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은 라파엘로 자신의 모습이다. 이 명화를 그리고 37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를 떠올리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경구를 되뇌게 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광장에서 국립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제우스 신전이 나타난다. 신전에 있었던 제우스 상은 높이가 무려 13m나 됐으며,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한다. 104개 기둥으로 이뤄졌던 제우스 신전은 현재 15개의 기둥만 남아 있다. 기원 후 5세기에 파괴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그 모습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모두 3곳에 불과하다. 아직도 건재한 이집트 피라미드가 대표적이며, 튀르키예 에페스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과 보드룸의 할리카르나소스 같은 곳은 그나마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 항구의 등대, 이라크 바빌론의 공중 정원,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 로도스 섬의 청동상은 책 속의 기록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세월이 지나면 흙과 재로 변할 뿐이다.
유네스코 로고가 바로 파르테논 신전
제우스 신전의 폐허 더미를 지나 도로를 건너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 나온다.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 발밑으로 기원전 7세기부터 비잔틴 제국 초기까지 다양한 주거지 형태를 볼 수 있다. 1, 2층의 전시실 외에도 4층의 파르테논 전시실에는 그리스 신화와 역사에 대한 조각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에서 언덕 쪽으로 300m 올라가면 아크로폴리스가 나타난다. 민주주의 탄생지라고 할 수 있는 아크로폴리스는 방어를 위한 전략적 목적보다 종교적 의미가 강한 곳이다. 입구에서 언덕을 올라가면 '프로필라이아'라고 하는 여러 신전이 모여 있는 현관문이 나온다. 속세를 떠나 신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할 수 있다. 불교 사찰의 입구인 일주문 같은 역할을 한다. 아테네의 신전들은 도리아식 기둥으로 되어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대표적인 도리아식 양식이다. 도리아식은 그리스 건축 양식의 하나로 단순하고 기둥이 굵고 주춧돌이 없으며 위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가늘어지고 기둥 가운데가 불룩한 배흘림 기법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영주 부석사에 있는 무량수전의 기둥이 배흘림 기법으로 만든 대표적인 기둥이다.
그리스 신전의 기둥은 크게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세 양식으로 나눌 수 있다. 시대 순으로 도리아식은 남성적인 모습으로, 이오니아식은 여성적인 모습으로 기둥의 끝 부분이 돌돌 말린 형태의 건축 양식이다.
코린트식은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오래 사는 초본성 여러 해살이 식물 가운데 하나인 아칸서스 잎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모티브로 만든 기둥 양식이다. 헬레니즘 시대에 주로 사용된 양식인데 대표 건물은 제우스 신전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5세기에 아테나 여신을 위해 봉헌된 건축물이다. 파르테논이란 말은 '결혼하지 않은 처녀'란 의미로 그리스 신화에서 독신으로 묘사된 아테나 여신을 뜻한다. 유네스코가 첫 번째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서양 문명의 역사적 의미와 우수성을 가장 잘 드러낸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유네스코의 로고도 파르테논 신전을 형상화하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로마 시기에는 교회로, 오스만 제국 시기에는 모스크로, 또는 전쟁을 위한 무기고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가까이서 보면 바닥이 불룩하고 기둥 간격도 불규칙한 듯 부자연스럽기조차 하다. 하지만 이는 착시 현상을 감안해 멀리서 볼 때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한 설계자의 의도라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넓이 30m, 길이 70m로 지붕 아래 장식은 빨강, 파랑, 금색으로 치장했다고 한다. 본전에는 17m 높이의 아테나 여신의 황금 조각상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행방이 묘연하다. 17세기 전쟁으로 아름다운 신전의 모습은 많이 파괴되었다. 또한 신전의 중앙부를 장식한 부조 등 주요 유물들은 약탈되어 영국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마치 일제시대 우리나라의 유물들을 약탈해간 일본과 비슷하다.
2000년 넘게 보존된 물시계와 해시계
아크로폴리스 남쪽에 유적으로만 남아 있는 디오니소스 극장은 술과 축제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위해 아테네 시민들이 종교 제전을 펼친 곳이다. 이곳에서 최초의 연극이 탄생했다고 하며, 현재도 매년 디오니소스 축제가 펼쳐진다.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입구 북서쪽에는 해발 115m의 언덕이 있다. 전쟁의 신 아레스가 자신의 딸을 납치하려 한 사촌 형제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자 신들이 모여 재판을 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이 바로 '아레오파고스' 언덕으로 인류 최초의 법정이다. 언덕 위에서 북쪽을 보면 아테네의 고대 아고라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사도 바울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최초로 설교를 한 언덕으로 다신교를 믿던 아테네 시민들이 기독교를 믿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언덕 입구에는 사도 바울의 행적을 기록한 사도행전의 글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아테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언덕을 내려와 아크로폴리스를 등지고 내려가면 상가들이 들어선 곳에 얼마 남지 않은 도리아식 기둥이 줄지어 서 있는 장소가 있다. 상상력의 한계를 실감케 하는 곳이다. 이곳이 '로마 포룸'인데 고대 로마 도시의 시민 광장으로 집회가 열리거나 장이 들어섰다고 한다.
로마 포룸 안의 '바람의 탑' 윗부분에는 바람의 신들 모습이 새겨져 있다. 탑에 해가 비치는 각도에 따라 시간을 알리는 해시계, 탑 안으로 물을 끌어들여 물시계 등의 용도로 활용했다고 한다. 2000년이 넘는 세월에도 아직도 보존이 잘 되어 있다.
고대 철학자 논쟁 들리는 듯한 스토아 회랑
로마 포룸 바로 아래는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도서관'이 있다. 파피루스로 기록된 수많은 고서들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바로 맞은편에는 고대 아고라가 있다.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상업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시장이다. 아크로폴리스가 신성한 종교의 중심지라면 아고라는 세속적 삶의 중심지로서 정치적 여론이 형성되고 수렴되는 소통의 장이자 시민 법정이다.
아고라의 한쪽 끝 언덕에는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 신전이 있다. 2500년 전에 세워진 건물로, 헤파이스토스는 절름발이에다가 신들의 세계에서 가장 못생겼다고 한다. 헤파이스토스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결혼했는데, 아프로디테는 남성 편력이 많아 수많은 염문을 뿌렸다. 그중 아레스와의 사이에 사랑의 신 에로스가 태어나기도 했다.
헤파이스토스 신전의 반대쪽에는 '아탈로스의 스토아'가 있다. 기원전 2세기 전반에 페르가몬 왕국(현재 튀르키예의 베르가마)의 아탈로스 2세가 건설하여 아테네에 기증한 건물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긴 건축물이다. 현재의 건물은 20세기 중반에 재건된 것이라서 그다지 고풍스런 맛은 없다. 스토아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기둥들이 길게 늘어선 회랑이 있는 건물을 말한다. 이곳은 쇼핑 아케이드이자 시민들이 만나 소식을 전하고 토론하는 공간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파들 중 '스토아 학파'가 있는데 바로 이 스토아에 모여 강의를 하고 철학을 논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은 리카비토스 언덕(277m)이다. 아테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는 곳이다. 1km의 완만한 오르막으로 정상까지 걸어서 20분 정도 소요된다. 정상에는 '아기오스 게오르기오스 성당'이 있다.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재클린이 남편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한 장소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서 야경을 감상하다보면 유난스러운 커플들의 모습에 손발이 심하게 오글오글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스 대표 음식 다~ 먹어보기
그리스의 대표적인 음식은 그릭 샐러드, 무사카, 문어 요리, 기로스, 수블라키, 돌마데스, 그리스식 커피, 바클라바 등이 있다. 그릭 샐러드는 '호리아티키 살라타'라고 하며 토마토, 양파, 오이에 올리브유를 넣은 다음 양젖으로 만든 페타 치즈를 얹은 요리다. 무사카는 가지와 감자, 다진 고기가 층을 이루는 독특한 요리다. 문어 요리는 '흐타뽀디 프시또'라고 하며, 데친 문어를 그릴에 구워 낸 후 올리브와 레몬즙을 가미한 해산물 요리다. 기로스는 튀르키예의 케밥과 비슷한 것으로 빵 안에 감자, 토마토, 돼지고기, 닭고기 등의 다양한 토핑이 들어간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이다. 수블라키는 구운 고기를 말하며, 돌마데스는 그리스 대표적인 가정식 요리로 저민 고기, 양파, 그리고 쌀을 볶아서 올리브 오일, 토마토 소스, 허브로 양념을 한 뒤에 절인 포도잎으로 돌돌 감싸먹는 음식이다. 그리스식 커피는 분말 형태로 갈아 넣은 원두를 물을 넣고 가열해서 마시는 커피로 고유의 향을 풍기며, 밑바닥에는 커피 분말의 알갱이가 가라앉아 있다. 바클라바는 엄청난 양의 꿀에 저려서 입안이 마비될 정도로 극강의 단맛을 내는 디저트이다.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란 책에서 여행자 등급을 5단계로 나눴다. 1단계부터 차례대로 둘러보는 여행, 관찰하는 여행, 체험하는 여행, 체득하는 여행, 일상화하는 여행이 그것이다. 이번 차박 세계 일주에서 나의 여행자 등급은 어느 정도일까? 개인적으로는 4등급 여행자가 되고 싶어서 길 위로 뛰어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를 떠난 지 벌써 4개월에 접어든다.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느낌은 낮선 곳에서 홀로 깨어나 아침을 맞는 기분이다.
정갑수
연세대산악회 OB. 악우회. 핵물리학 박사. 을지대 방사선과 교수 역임. 저서 <물리법칙으로 이루어진 세상>, <브레인 사이언스>, <세상을 움직이는 수학>, <세상을 움직이는 물리>, <방사능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에게>,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암벽등반의 세계>, <암벽등반과 스포츠클라이밍>, <겨울산행과 빙벽등반>, <스포츠클라이밍의 거의 모든 것> 등. 히말라야 동계 에베레스트, 탈레이사가르, 트랑고타워 등반.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6,960m),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4m),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4,897m) 등정. 대한민국 체육훈장 대한체육회 연구상 수상.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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