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괴롭힘에 숨는 여성 홈리스, 노숙조차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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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희(가명·66)씨는 무허가 건물에서 살았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21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를 보면, 여성 홈리스는 전체 노숙인(8956명) 중 27.8%(2493명)였다.
아랫마을 홈리스야학의 여름(활동명) 교사는 "여성 홈리스는 남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그 괴롭힘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추운 겨울날 거리에서 자지 않기 위해, 편하게 밥을 먹기 위해 남자와 살거나 친해지는 것을 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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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등 표적 노출된 곳 꺼려
‘음지로 숨은 이들’ 파악도 못해
이성희(가명·66)씨는 무허가 건물에서 살았다. 그 건물이 헐리는 바람에 1999년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잠잘 곳이 없어 버스터미널이나 지하철역에서 잠을 청했다. 병원 암병동에서 보호자인 척하고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쫓겨나기 일쑤였다. 새벽에 교회에서 잠을 자다가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다. 밤에 잠을 자기 힘드니, 낮에 서울역 티브이(TV) 앞에서 쪽잠을 자거나 멍하니 앉아 있는 것으로 졸음을 이겨냈다.
김은진(가명·46)씨는 10대 때 집을 나왔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노숙생활은 고단했다. 19살 때 역에서 한 남자를 만나 함께 지냈다. 남자는 도박에 빠진 채 술만 마시면 때렸다. 22살이 되던 해에 도망쳤다. 일을 하며 쪽방에서 지냈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고 아이 둘을 낳았다. 남편은 카드빚이 있다고 했다. 쪽방 보증금을 빼 남편에게 내어줬다. 다시 거리로 나앉았다. 시가에서 아이들을 데려갔다. 김씨는 뇌전증을 앓고 있었다. 월 30만원 받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친구 집을 전전했다. “(성인이 돼서 독립해)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알았더라면, 삶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한파가 연일 이어지면서 홈리스(주거권이 박탈된 이들을 포괄하는 말) 가운데 특히 여성들이 더욱 매서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남성 홈리스를 중심으로는 지원 체계가 일부 마련돼 있지만, 성범죄 등의 표적이 되기 쉬운 여성 홈리스는 역이나 광장, 무료급식소 등 노출된 곳을 피하다 보니, 지원은커녕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21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를 보면, 여성 홈리스는 전체 노숙인(8956명) 중 27.8%(2493명)였다. 하지만 이 조사는 거리·시설·쪽방에 사는 홈리스만을 대상으로 했다. 홍수경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19일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여성 홈리스 증언대회’에서 “여성 홈리스들은 각종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피시방·찜질방 등에서 숨어 지낸다. 현재 조사 방식으로는 거리·시설·쪽방에 살지 않는 여성 홈리스의 존재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 여성 홈리스 수는 훨씬 더 많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여성 홈리스는 안전을 위해 남성과의 동행을 택하기도 한다. 아랫마을 홈리스야학의 여름(활동명) 교사는 “여성 홈리스는 남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그 괴롭힘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추운 겨울날 거리에서 자지 않기 위해, 편하게 밥을 먹기 위해 남자와 살거나 친해지는 것을 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날 증언대회 사회를 맡은 최현숙 작가는 “여성 홈리스는 남성과 달리 광장에서 쉽게 잘 수 없다. 남성 홈리스들이 많기 때문에 무료 급식을 쉽게 받기도 어렵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식’과 ‘주’에서 소외돼있다”고 했다.
시설 입소도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은진씨처럼 여성 홈리스 가운데 아이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와 함께 지낼 수 있는 쉼터는 드물기 때문이다. 여성 노숙인들이 가진 질병이나 장애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된다. 복지부 자료를 보면, 여성 홈리스의 42.1%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이는 남성(15.8%)에 견줘 매우 높은 비율이다.
홍수경 상임활동가는 “여성 홈리스를 포함한 정확한 실태조사와 젠더 특성을 반영한 홈리스 복지지원 체계 수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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