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소아과 진료 대란

김철중 논설위원·의학전문기자 2022. 12. 21.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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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의 한 소아병원은 저녁 시간이 되면 북새통을 이룬다. 야간 진료 시작 30분이면 접수 마감이다. 최근 5년간 소아과 700곳이 사라진 데다, 늦게까지 문 연 소아과가 찾아보기 힘들 만큼 희소해졌기 때문이다. 대학병원 응급실마다 “야간 소아 진료 없다”는 안내문만 무성하다. 부모들이 경련을 일으키는 아기를 들쳐 업고 소아과 의사 찾아 이 병원 저 병원을 헤맨다.

/일러스트=박상훈

▶요즘 아기 데리고 소아과 갈 때 동전을 챙기는 보호자들이 많다. 산모 고령화로 저체중 출생 아기는 날로 늘어나는데, 이런 경우 외래 진료비는 환자 측 부담률이 5%다. 통상 애 진료비가 1만2000원 정도이기에 보호자들은 500원 동전으로 진료비를 낸다. 차라리 무상으로 하지, 소아과 의사들은 자괴감이 든다고 말한다. 의사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소아과 간판 접고, 애들 데리고 오던 엄마나 할머니한테 보톡스 놓고 필러 넣으며 먹고산다는 소아과 전문의의 자조가 많다.

▶소아과 여의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의료계서 회자된다. 요지는 이렇다. “출산율 낮아서 소아과 안 하는 거 아닙니다. 요즘 아기들 한 번 올 거 열 번 소아과 옵니다. 트림 두 번 했다고 오고, 모기 물린 자국 사흘 간다고 옵니다. 진료량은 예전과 같아요. 부모들의 폭언과 온라인 갑질은 상상 이상입니다. 내던진 약봉지에 함 맞아보세요. 우리를 가해자 취급합니다. 요새 중환자 살려 보겠다고 애쓰는 의사 없어요. 그랬다가 구속될까 걱정하지요.”

▶소아과 의사라면 누구나 보는 교과서, 넬슨 소아과학 첫 장은 ‘아이는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다’로 시작한다. 몸무게 3㎏ 신생아는 1년 만에 10㎏가 된다. 성장기에는 생체 징후가 요동치고, 증세가 수시로 바뀐다. 아기들은 말이 없기에 더 많은 진찰을 해야 한다. 투여 약물도 체중 1㎏당 몇 ㎎ 식으로 계산한다. 아기 혈관 굵기는 ㎜ 단위여서, 수액 주사 놓기가 모래사장서 바늘 찾기다. 많은 경험과 쌓인 지식이 소아 진료에 필수다.

▶최근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이 소아과 전공의가 없다며 입원실을 닫았다. 피교육생인 전공의가 없으면, 입원 진료를 못 하는 게 한국 병원이다. 전공의를 값싼 노동력으로 필수 진료에 써온 탓이다. 올해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이 16%라고 해서 문제가 됐는데, 전문의가 진료 현장을 떠났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소아 의료수가를 대폭 올리고, 입원과 응급 진료를 위해 여러 명의 소아과 전문의들이 모여 근무하는 모자(母子)보건센터를 지역별로 세우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미 소아 진료 대란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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