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ESG 실사’ 협력업체까지 강화… 한국 中企 비상
식품기업 대상은 요즘 600여 곳에 달하는 협력업체들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규범 준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ESG 규범에 대한 선진국들과 해외 수입처들의 눈높이는 갈수록 높아지는데, 배추나 젓갈·양념 같은 원재료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영세한 곳이 많아 관련 자료를 요구하거나 실사를 나가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상 관계자는 “ESG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직원 근로 시간, 안전 관리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거나 실사를 나가는 것이 자칫 경영권 침해로 비칠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경북 경산의 섬유 생산업체 삼일방은 글로벌 패션 브랜드 룰루레몬으로부터 올해 두 번이나 ESG 실사를 받았다. 룰루레몬 측은 인권 탄압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 신장위구르산 면화를 사용하는지와 안전 관리 실태 등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삼일방 관계자는 “룰루레몬과 같은 글로벌 브랜드는 아시아에서 원사를 조달할 때 공급망 관련 ESG 데이터를 요구하거나 대행업체를 통해 실사를 나오는 게 2~3년 전부터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며 “앞으로 글로벌 기업들의 ESG 실사가 점점 빡빡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전담 인력을 두고 외부 컨설팅을 받으려면 못해도 억대의 추가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유럽과 미국, 애플과 BMW 등 세계 주요 국가·기업들의 ESG 압박이 점점 더 거세지면서 기업들의 부담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이들 국가가 단순히 자국에 제품을 수출하거나 법인을 설립한 기업들의 ESG 준수 여부를 따지는 것을 넘어 이들 기업의 협력업체들에까지 ESG 규범을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내 중견·중소기업들의 ESG 리스크와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점점 거세지는 글로벌 ESG 압박
EU(유럽연합) 의회는 올해 2월 ‘지속 가능한 공급망 실사 법안’을 발표했다. EU 소재한 현지 기업이나 EU에 법인을 둔 해외 기업 중 일정 이상 규모의 기업들은 협력업체의 직원 인권 현황과 환경오염 등 ESG 관련 사항을 조사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해결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골자다. 독일은 당장 내년부터, 다른 EU 회원국들은 준비 절차를 거쳐 2024년부터 시행할 전망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도 지난 3월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과 기후변화 리스크 관련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는 새 규정 초안을 발표했다. 이 초안은 자체 온실가스 배출량뿐만 아니라, 원자재·공급·유통·물류 등 공급망 사슬의 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량까지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제는 이들 나라에 수출하는 기업들은 협력업체들의 ESG 규범 준수 여부까지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 수출 중소기업 관계자는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 협력업체들은 이런 ESG 규제 내용도 제대로 모르는 실정”이라며 “어떤 협력업체가 ESG 관련해 문제가 될 수 있는 부품을 공급할지 일일이 조사할 수도 없고, 협력업체에서 ESG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부품을 납품해도 가려내기 힘든 실정”이라고 했다.
◇중견·중소기업 준비 미흡…정부 가이드라인도 이제야
실제로 국내 중소·중견 수출업체나 협력업체들은 대부분 ESG 규제에 대한 준비가 미흡한 상황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7월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 300사를 대상으로 ESG 실사 대응 현황을 조사한 결과 대상 기업 52.2%가 ‘ESG 경영이 미흡해 향후 EU 등 외국의 원청 기업과 맺은 계약이나 수주가 파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했다. 원청의 ESG 관련 실사에 대한 준비 수준을 묻는 질문에도 ‘낮다’고 응답한 기업이 77.2%에 달했다. 원청업체가 공급망 내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ESG 실사, 진단·평가, 컨설팅 경험 유무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경험이 있다고 답한 경우는 10% 내외에 그쳤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생산성본부는 지난 7일 EU 등 주요 국가의 공급망 실사 법제화에 대응하기 위한 ‘K-ESG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중소·중견기업이 공급망 실사에 대응해 자가 진단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한 체크리스트다. 하지만 일선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해 도움이 안 된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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