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장년’ BDI에 ‘제집’을 허할 때

차용범 언론인 2022. 12. 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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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범 언론인

‘누가 미국을 움직이는가?’ ‘세계 최강’ 미국의 정치 인맥·사상을 묻는 도발적 질문이다. 이 질문은 국제관계를 분석하는 주요 주제이기도 하다. 그 답은? 주로 정치가와 정치세력을 들지만, 누구도 외면 못할 한 갈래가 있다. ‘싱크탱크(Think Tank)’다. 미국은 싱크탱크의 발상지다. 민주당·공화당 역시 정부·의회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싱크탱크의 강력한 영향을 받고 있다. 진보 성향 브루킹스연구소와 보수성향 헤리티지재단이 대표적이다.

세계 선진국은 학문적 성과와 전문가의 탁견(卓見)을 존중하며 이를 공공정책에 반영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실제 과학적 전문성과 현실적 합리성을 도외시한 정책으로 국가·사회를 발전시킨 역사는 찾아볼 수 없다. 국가·사회의 비전·전략을 연구·개발할 두뇌집단의 존재는, 그래서 날로 중요하다. 미국의 저력은 싱크탱크의 ‘지적(知的) 파워’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다. 그 싱크탱크가 주로 개인·기업의 기부에 힘입어 독립성에서 튼튼한 것도, 미국 사회의 그런 신뢰 때문이다.

‘누가 부산을 움직이는가?’ 그 답으로, ‘부산연구원(BDI)’을 들 만하다. BDI는 부산의 현안을 분석·연구하며 시정정책 개발에 주력하는 공익 연구기관이다. 글로벌 트렌드와 라이프 스타일의 급변에 대응, 부산시민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부산의 대표 싱크탱크다. 그 BDI가 최근 개원 30주년을 맞았다. BDI는 그동안 부산의 현실과 비전을 현장의 감으로 제시하며 부산 발전에 기여했다. BDI가 주목한 이슈는 당대 부산이 감당할 과제요, BDI가 숙성시킨 연구는 부산이 지향할 목표이기도 했다.

“지방화·세계화 시대를 맞아 환태평양 거점도시 부산의 발전을 위하여”, BDI는 그 설립 취지에 충실했다. ‘세계적 사고(思考)·현장적 정책(政策)·무한한 창의(創意)’라는 원훈(院訓) 그대로, 순수한 학문적 연구보다는 이론과 현실, 이상과 실천의 가교를 놓은 일, 실현성이 높고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구체적 연구에 철저했다. 부산시정 발전의 계기에 시의적절한 방향, 비전과 전략, 실행방안을 제시한 곳이 BDI다.

BDI는 부산사람과 함께 어울리며 그 기대에 충실한 ‘부산의 싱크탱크’로 당당했다. 오늘, 부산 도약의 동력이라 할 가덕신공항의 성공적 건설, 2030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균형발전을 위한 도심 재개조 등을 뒷받침할 실용적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세계가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에 직면한 시대, BDI는 이제 4차 산업혁명 물결, 저성장·양극화·저출산·고령화·기후변화 같은 전 지구적 난제까지, ‘부산의 눈’으로 따져가야 한다. 부산에서 BDI가 맡아야 할 책무는 그만큼 무겁다.

그러나 BDI가 순탄한 환경에서 제 위상을 다져온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BDI는 장년(壯年)을 맞기까지, 공공·민간 건물을 오가며 ‘셋방살이’ 중이다.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 구내 가건물에서 출범, 아직 ‘제집’을 갖지 못하고 있다. 지금 부산시상수도사업본부 빌딩에 세 들어 있으나, 재정 형편상 사용료는 무겁고 연구 환경상 공간은 좁다. 전국 14개 시·도 연구원 중 11곳은 시·도의 지원에 따라 독립청사를 운영한다. 경기연구원은 공공건물을 무상 사용 중, 건물을 임차 사용하는 곳은 부산 포함, 2곳이다.

BDI가 더 넓은 제집을 갖는 것, 그건 30년의 숙원이다. 부산시정 정책연구기관 내지 ‘부산 지식 허브(hub)’의 확고한 위상을 다져가기 위해, 공간 부족에 따른 열악한 업무환경을 개선하며 인력 충원에 따른 연구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BDI의 오랜 꿈을 성취하는 것, 그건 부산 지역사회가 함께 추구해야 할 공통의 목표이기도 할 것이다. 바다 건너 제주연구원도 독립청사를 운영하는 예를 보면, BDI의 그 과제는 부산의 의지일 뿐 역량의 문제일 순 없다.


부산은 과연, BDI에 독립청사를 안겨줄 수 있을까. BDI의 지난 역사와 내일의 과업을 생각하면, 부산은 이제 그럴 때도 되지 않았나. 시·시의회가 협의, BDI가 공공건물을 무상 사용토록 하는 것은 어떤가. 부산사람 ‘집현전’ 씨가 건물을 기부하고 그 건물에 ‘집현전 빌딩’이라 이름 붙이는 것은 또 어떤가. 부산시장이든 그 누구든, BDI의 제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당대의 위업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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