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굶어 죽은 조선의 천문학자 김영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박물학자라 할 수 있는 이규경의 <기하원본에 대하여>라는 글에는 굶어 죽은 천재 김영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김영은 정조, 순조대의 역관(曆官)으로 조선 천문학 역사책이라 할 수 있는 <국조역상고>, 천문역법에 관한 책인 <신법중성기> <신법누주통의>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천문기구를 제작하기도 했다. 정조와 순조대에 천문역법을 담당하는 관료이자 학자로서 이름을 날리던 그가 왜 굶어 죽게 된 것일까?
김영은 인천 출신으로 사회적 지위도 없고 가난했으며 용모도 보잘것없고 말도 더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하늘이 내려준 재능이라고 할 만큼 뛰어난 수학자였던 그는 <기하원본>을 독학, 서양기하학에 대해서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실력이 있었다. 당시 관료이자 수학자였던 서호수는 김영의 명성을 듣고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눠본 뒤 감탄하였고, 또 다른 고위 관료들과 함께 정조에게 천문학자로 추천했다. 이리하여 김영은 그로 인해 관상감에 들어가 본격적인 학문활동을 하게 된다.
그렇게 뛰어난 김영이 굶어 죽게 된 것은 조선 관료제의 한계 때문이다. 조선에서 관직에 오르기 위해서는 과거시험을 보아야 했는데, 통역, 의학, 천문학, 수학과 같은 전문 관료들 역시 그러했다. 김영은 수학과 과학연구에 열중한 학자였지 관상감 관료가 되기 위한 시험 준비를 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실력으로 발탁되다 보니, 시험을 통해 들어온 관료들의 견제를 받게 된 것이다. 천문관의 관료들은 김영의 학문을 대단치 않게 여겼다. 이들 관료들에게 천문관의 업무란 정해져 있는 매뉴얼을 절차에 따라 시행하면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김영과 같은 학자들의 새로운 관찰, 학문적 발견, 오류의 수정은 행정일을 늘리고 복잡하게 만드는 골칫거리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관료들은 그의 능력이나 학문적 업적은 무시한 채 과거시험을 보지 않았다는 사실로 그를 무시하고 모욕하며 때로 구타를 하기도 한다.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을 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김영은 묵묵히 작업을 이어갔다.
정조가 승하하고 김영의 학문 활동을 지지해주는 사람들도 죽자, 김영은 관상감 내에서 고립되게 된다. 안타깝게도 그는 관상감에서 쫓겨나 자신의 재능과 아무 상관없는 생선, 고기, 소금, 연료 등을 맡아보는 관청인 사재감 등에 배치되어 일을 하게 된다. 김영은 성품이 소탈하고 강직해서 윗사람에게 아부할 줄 몰랐고, 김영의 학문에 관심이 없는 고위 관료들은 그의 능력을 파악할 감식안이 없었다. 김영을 쫓아낸 관상감은 다시 매뉴얼과 절차에 안주해 돌아갔고,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하게 된 김영은 버티다가 결국 관직을 그만둔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며 근근이 삶을 이어가다가 1815년 순조대 기근이 들었을 때 서울의 한 낡은 집에서 굶어 죽은 채로 발견된다.
관상감 천문학자들의 경력과 활동을 기록한 문헌 중 하나인 <삼력청선생안>에는 그에 대한 단출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과 함께 아버지, 조부, 증조부, 외조부의 이름과 관직이 나란히 기록되어 있으나 김영의 경우 가족에 대한 어떤 정보도 찾아볼 수 없다. 배경도 없이 오직 재능 하나로 관상감에 들어왔으나 계급을 넘어서 자신을 인정해주던 왕과 학자 관료들의 죽음 이후 더 이상 학문을 지속할 수 없었던 김영. 어려서 그에게 수학을 배웠던 홍길주는 그의 죽음에 대해 듣고 <김영전>을 쓴다. 그는 김영과 수학에 대해 논쟁을 한 적 있었는데 그 논의를 좀 더 발전시켜 김영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나는 김영을 통해 쇠락한 세상에는 아무런 업적도 이룰 수 없음을 알았다”며, 학문적 발전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해,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학자들에 대해 애도를 표했다.
소진형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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