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쓰고, 비판하고, 감동 나눴다

정상혁 기자 2022. 12. 2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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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연말결산]
올해 별이 된 이름들
이어령, 강수연, 김지하, 송해, 김동길(왼쪽부터).

별이 뜨고, 별이 진다. 한 시대를 밝힌 그 광휘는 그러나 사라지는 대신 전설로 남는다.

교사·언론인·평론가 등 수많은 직함을 넘나든 이어령(88) 선생이 2월 26일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사회 변화에 힘쓴 석학이었다. 초대 문화부 장관 시절엔 국립국어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설립하는 등 문화 정책의 기본을 닦았고, 삶을 마감하기 전까지 저술 작업에 힘썼다. “내 인생은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고 가는 삶이었다.”

배우 강수연(56)은 뇌출혈 증세로 쓰러진 지 사흘 만인 5월 7일 세상을 떠났다. ‘씨받이’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해외 주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원조 월드스타. 1980~1990년대 강수연이 곧 한국영화였던 시절이 있었고, 부산국제영화제가 위기를 맞은 2015~2017년에는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여걸이기도 했다. 넷플릭스 영화 ‘정이’로 9년 만에 관객을 만날 기대에 부풀었지만 복귀작은 유작이 되고 말았다.

시인 김지하(81)가 전립선암 등으로 투병 끝에 5월 8일 눈을 감았다. 1960~1970년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다가 수차례 투옥됐고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정재계·관계의 부패와 비리를 질타한 시 ‘오적’과 민주주의 회복을 염원하는 ‘타는 목마름으로’ 같은 절창을 남겼다. 반대로 1990년대 운동권의 극단적 투쟁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일요일의 남자, 방송인 송해(95)가 6월 8일 숨을 거뒀다. 30년간 진행한 ‘전국노래자랑’은 곧 송해의 인생이었다. 황해도 실향민 출신으로, 전국팔도를 누비며 필부필부의 눈물과 웃음을 나눴다. 비가 와도 진행을 멈추지 않았다. “우비를 쓴 채 방청석에 여전히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 4월 ‘최고령 TV 음악 경연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올랐고, 이후 금관훈화훈장이 추서됐다.

“이게 뭡니까?” 한평생 권력을 향해 직언했던 김동길(94) 선생이 10월 4일 별세했다. 트레이드마크였던 나비 넥타이를 매고, 연세대 교수와 14대 국회의원, 조선일보 논설고문 등을 지내며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설파했다. “불의(不義)를 보고 말하지 않으면 용기가 없는 것이다.” 시신은 고인의 뜻에 따라 후학을 위해 연세대 의대에 기증됐다.

누가 선정했나 | 문화부장 어수웅, 신동흔·김성현·유석재·박돈규·이태훈·최보윤·곽아람·정상혁·윤수정·이영관·윤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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