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15년만에 사실상 금리 인상… ‘초저금리’에 마침표

도쿄=이상훈 특파원 2022. 12. 2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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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금리 변동폭 ±0.25% → ±0.50%
“10년 이어온 아베노믹스 수정” 해석
엔-달러 환율 급락… 亞증시는 출렁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20일 시장의 예상을 깨고 장기금리 변동 허용 폭을 확대하는 깜짝 조치를 발표했다. 일본 언론들은 “사실상의 금리 인상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미국 등 주요국 국채금리가 급등하고 아시아 증시가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블룸버그는 “시장에 구로다(일본은행 총재) 쇼크가 닥쳤다”고 했다.

일본은 고물가를 잡기 위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잇따른 금리 인상에도 경기 부양을 이유로 선진국 중 유일하게 초(超)저금리 등 확장적 금융 정책을 ‘아베노믹스’라는 이름으로 10년간 유지해왔다. 하지만 엔화 가치 급락과 물가 상승으로 가계와 기업이 타격을 받자 금융 완화 정책을 수정하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은행은 이날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장기 국채금리의 변동 폭을 기존 ±0.25%에서 ±0.50%로 확대하기로 했다. 정책금리는 2016년 1월 ―0.1%로 결정한 뒤 7년 가까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정책금리를 올리지는 않았지만 일본에서는 이번 조치로 시장 금리가 변동 폭의 최상단까지 오르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본다. 지난해 3월 장기금리 변동 폭을 0.05%포인트 높였지만 효과가 제한적이라 금리 인상이라고 해석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2007년 3월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뒤 15년 만의 금리 인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엔-달러 환율이 장중 5엔 이상 급락했다가 소폭 올라 132.61엔을 기록하는 등 엔화가 강세를 보였다. 원-달러 환율도 13.3원 떨어진 1289.6원에 거래됐다. 닛케이평균주가는 전날보다 2.46% 급락했다. 코스피는 전일 대비 0.80% 하락한 2,333.29로 마감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1.07%), 홍콩 항셍지수(―1.33%), 대만 자취안지수(―1.82%) 등 아시아 각국 증시도 일제히 하락했다.

日, 美와 금리차-엔저에 백기… 10년 만에 ‘아베노믹스의 종언’



日 사실상 금리인상




선진국중 유일 초저금리 버티던 日
자금유출 우려에 양적완화 축소
글로벌 금융시장 ‘구로다 쇼크’


일본은 전 세계적인 고물가, 이를 억제하기 위한 선진국들의 잇따른 금리 인상에도 경기 회복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선진국 중 유일하게 초저금리를 바탕으로 한 양적완화 정책을 고수해왔다. 20일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발표 전까지만 해도 시장은 장기금리 변동 폭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일본은행은 이런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사실상 금리 인상 효과가 있는 장기 국채금리 변동성 확대 조치를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마이너스 정책금리(기준금리)를 유지하는 정책으로는 정상적인 금융 시장 운용과 안정적 물가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조치로 일본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연 0.46%)이 0.21%포인트 상승해 2015년 7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시장 금리가 0.2%포인트 이상 오르는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내년 4월 임기가 만료되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교체를 계기로 정책금리 인상, 국채 매입 축소 등으로 나아가며 초저금리 양적완화 정책인 아베노믹스가 10년 만에 종언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엔화 약세·물가 상승에 초저금리 정책 전환

구로다 총재는 이날 사실상 금리를 인상한 배경에 대해 “올봄 이후 해외 금융시장 변동성이 높아져 금융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었다”며 “이번 조치로 금융완화 조치가 기업 금융 등을 통해 더욱 원활하게 파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초저금리 정책 고수 결과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커지면서 10월 한때 달러당 엔화 환율이 151엔에 달할 정도로 엔화 가치가 폭락하는 엔저 현상이 심화됐다. 이는 원자재 값 상승과 맞물려 달러화로 지불하는 수입 가격 상승 및 자본 유출을 초래해 일본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

일본 정부는 일본의 저물가를 아베노믹스의 이유로 내세우며 물가를 2%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해왔지만 일본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6% 오르며 40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조치로 주요국과의 금리 격차가 좁아져 환율 변동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고 보도했다.

구로다 총재는 이날 “이번 조치는 금리 인상이 아니다. 출구전략 등에 대해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신임 총재가 내년 4월 임기를 시작하면 정책금리 공식 인상, 국채 매입 축소 등이 단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아다치 마사미치 UBS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은행이 뭐라고 하든 이번 결정은 출구전략을 위한 조치”라며 “내년 새 총재 취임 이후 정책금리 인상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 ‘구로다 쇼크’에 세계 금융시장 출렁

세계 최대 채권 보유국인 일본의 금리 인상으로 글로벌 금융 시장은 블룸버그가 구로다 총재의 이름을 따 ‘구로다 쇼크’라고 할 만큼 크게 요동쳤다.

이날 조치 직후 미국, 영국, 유럽, 호주 등 주요국 국채 금리가 0.1%포인트 급등세를 보였다. 일본 투자자들이 보유 자산을 매각하고 금리가 오르는 자국 시장으로 자금을 되돌릴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채권 금리가 오르는 만큼 시중에 도는 자금은 줄어든다는 뜻이다.

특히 일본은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해외 국가라 충격이 컸다. 이날 미국 10년 만기 국채와 30년 만기 국채는 장중 0.19%포인트가량 상승했다.

소폭 상승하던 미국 나스닥 지수 선물 3개월물은 장중 0.9%가량 하락했다. 유럽 주요 기업 주가지수인 유로 스톡스50 선물 역시 1.5% 이상 급락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이호 기자 number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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