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규제방향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 잇단 금리인상 등으로 인한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인 가상자산을 회피하자 가상자산 시장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여기에다 지난 5월 발생한 테라 사태와 11월 FTX 사태는 가상자산 시장의 폭락을 부채질했다. 테라 사태는 실물이나 담보 대신 알고리즘을 통해 1달러에 고정해 가치를 유지하는 소위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테라-루나가 폭락한 사건이다. 테라는 자매코인 루나를 통해 1달러의 가치가 유지되도록 했으나 가치가 붕괴되면서 급락한 것이다.
11월 글로벌 코인거래소 FTX의 자회사인 가상자산 투자사 알라메다리서치가 FTX 자체발행 코인 FTT를 담보로 현금을 대출받아 사업을 확장하는 등 불투명한 재무구조가 알려지면서 대규모 자금이 인출돼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테라 사태가 해당 코인투자자의 문제였다면 FTX 사태는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의 통제 없는 일탈이라는 점에서 가상자산산업 자체에 큰 충격을 줬다. 한편 지난 11월 말 국내 5개 거래소로 구성된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 DAXA는 위메이드가 발행한 위믹스를 공시된 유통량과 실제 유통량 간에 30% 이상 차이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상장폐지했다. 가상자산 시장의 정화를 위해 민간 거래소 협의체가 일종의 자율규제를 시행한 것인데 법원도 가처분 심리에서 거래소 입장을 지지했다.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가상자산산업의 신뢰에 타격을 주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가상자산산업의 겨울, 소위 크립토윈터가 찾아왔고 동시에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논의도 본격화했다. 원래 가상자산은 자본시장에서 주식거래가 기업에 대한 지분적 권리를 거래하는 것과 달리 기업의 소유 및 가치와 관련이나 연동이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시장 초기 가상자산은 금융상품도 아니고 일반화폐도 아니라고 판단돼 규제의 사각지대로 남게 됐고 이러한 무규제 상태에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가상자산은 블록체인이라는 분산원장 기술에 의한 자산가치 이전이라는 독특한 특성으로 인해 금융생태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제 점점 가상자산 시장이 또하나의 독립된 시장으로 전통적 제도권 금융시장과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에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에 각국 규제당국은 최근 큰 틀에서 디지털자산 중 증권형 토큰은 증권규제, 비증권형은 별도 규제체계 도입을 준비 중이다. 한국도 증권형 토큰은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규율하고 비증권형 디지털자산에 대해선 디지털자산법 등 별개 법률을 제정할 계획이다.
원칙적으로 디지털자산법에 소비자 보호를 위해 가상자산에 대한 촘촘한 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 규제는 합리적이고 수용성이 있어야 한다. 먼저 가상자산은 기존 금융상품보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하고 리스크도 크다는 점에서 충분한 규제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다만 가상자산 기술의 변동성을 고려하고 규제의 합리성, 수용성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의 명령적 규제와 함께 민간과의 협력적 규제도 필요하다. 정부가 정한 커다란 틀 속에서 자율규제를 시행하거나 사업자들이 자율규제의 구조와 규정을 만들어 국가의 승인을 받아 효력이 발생하는 방식 등의 공동규제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믹스 상장폐지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한 법원은 상장폐지 결정이 단기적으로는 투자자들에게 손해가 발생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상자산 생태계를 침해하는 행위를 엄격히 제한해 시장 투명성을 확보하고 잠재적 투자자의 손해와 위험을 미리 방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원의 결정과 같이 조속히 디지털자산법을 마련함으로써 단기적으로 시장에 악영향을 주더라도 중장기적으로 투자자 보호와 투명성, 안정성을 촉진하는 규제가 시행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기술법정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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