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102] 국적
월드컵 대회에서 프랑스 대표팀은 마치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어느 팀 같았다. 백인 선수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혈통을 중시하는 속인주의가 아니라 출생지를 중시하는 속지주의에 따라 국적을 부여한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는 프랑스혁명의 결과다.
국적은 바꿀 수 있다. 프랑스와 미국은 그것을 자연화(naturalization)라고 부른다. 장소 즉, 자연 환경이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속지주의가 물씬 묻어나는 표현이다. 반면 동양에서는 국적 변경을 귀화라고 부른다. “왕의 어진 정치에 감화되어 그 백성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봉건 시대의 흔적이다.
대한제국은 외국인의 귀화는 받아주면서도 우리 백성이 자발적으로 왕의 통치를 벗어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국적 이탈을 반란이나 절도에 준해서 처벌했다. 일본이 그 점을 악용했다. 대만이나 사할린 현지인들에게는 희망에 따라 국적 변경을 허용했지만, 조선인은 예외로 두었다. 대한제국 시절부터 국적 변경의 자유가 없었으니 일본의 신민이 된 뒤에도 마찬가지라고 우겼다. 조선인은 한반도건, 일본이건, 만주국이건, 미국이건 어디를 떠돌더라도 일본의 손아귀에 두겠다는 의도였다.
민주 국가에서 국적은 의무가 아닌 권리다. 세계인권선언(제15조)은 “모든 사람은 국적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명문화했다. 그 정신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국적법이 제정되었다. 1948년 12월 20일이다. 그런데 국적법을 만들면서 오래 묵혀두었던, 원초적인 의문이 돌출되었다. 몇 달 전 대한민국 헌법을 만든 사람들의 국적은 도대체 무엇이었느냐는 것이다.
초대 법무장관 이인이 답했다. “결국 8·15 이전에도 국가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정신적으로 국적을 가졌었습니다.” 일본의 강점을 견디며 단절 없이 존재해 온, 한민족의 국가가 우리 마음속에 있었다는 선언이었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불굴의 민족 정신에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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