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전설의 땅으로 돌아온 ‘늑대왕 로보’의 후예들

정지섭 기자 2022. 12. 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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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뉴멕시코주서 복원사업 추진
”인간 영역과 충돌하지 말아야” 우려도
사회성, 가족애, 부부금슬…너무나 인간적인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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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산속에 의좋은 늑대 형제가 살고 있었대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동생 늑대가 보이지 않더래요. 다급한 형 늑대는 깊은 산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구슬프게 동생을 불렀답니다. 이렇게요.

“아우우우우우우~”

미 서부 지역에 터전을 잡고 살았지만 멸종위기에 몰린 멕시코 늑대. 최근 서식지 복원 사업이 전개되고 있다. /Teagan Dumont. 신시내티 동물원 페이스북

썰렁한 아재개그로 수요동물원의 문을 열었습니다.^^ 늑대는 우리에게 애매하고도 신비한 존재입니다. 한반도를 호령했던 맹수이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고, 전설의 고향이나 늑대인간 이야기 같은 괴담을 통해 이미지를 소비했죠. 어쩌다보니 늑대는 응큼하고 음흉하지만 꽤나 매력적인 나쁜 남자를 상징하는 동물이 되어버렸죠. 한마디로 무섭고 기분 나쁜데 은근히 멋진 동물이라고나 할까요? 이렇게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늑대 이미지가 만들어지는데 혁혁하게 이바지한 콘텐츠가 아마도 시튼동물기에 등장하는 ‘늑대왕 로보’ 이야기일 겁니다. 소년소녀세계명작전집 등의 타이틀로 1980년대 많은 어린이독자와 만났던 시튼 동물기 이야기 중에 단연 가장 유명한 이야기죠.

미 연방정부 차원에서 복원사업이 추진 중인 멕시코 늑대. '늑대왕 로보'의 후예로 유명하다. /애리조나 주지사 홈페이지

19세기 미국 서부개척시대,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는 백인 개척민들은 대자연과 곳곳에서 충돌합니다. 지금의 뉴멕시코 지역의 벌판에서 바이슨(들소)와 미국영양(프롱호온)을 잡아먹으며 대대손손 살아가던 늑대 무리는 인간에 의해 서식지를 급속하게 잃으면서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사람이 치는 가축을 노리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용맹하면서도 영악하기로 이름난 늑대 두목 로보의 신출귀몰한 행각은 인간들에게 전설처럼 회자되죠.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사람들의 두뇌를 몇발짝씩 앞서가던 로보. 그러나 그는 짐승이라기에 너무나 헌신적이고 낭만적인 수컷이었습니다. 작자 시튼은 로보의 반려자인 암컷 늑대 블랑카를 잡아 로보를 유인하는 술수를 냈고, 이 작전은 성공을 거둡니다. 블랑카는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고, 로보도 결국은 붙잡혀 식음을 전폐하다 반려자의 뒤를 따르죠.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늑대 무리가 바이슨(아메리카들소)를 에워싸고 공격 채비를 갖추고 있다. /Daniel Stahler. 미 국립공원관리청(NPS)

로보는 멕시코 늑대였습니다. 전설적인 늑대왕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미국 서부 평원에 사는 늑대를 통칭해 ‘로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회색늑대라고 불리는 북미늑대 중 가장 덩치가 작은 무리죠. 숲이 우거지고 겨울엔 폭설과 강추위가 내려앉는 북미 대륙 북부에 사는 덩치큰 동족들과 달리 터전에선 거의 씨가 말랐죠. 그 불운한 늑대왕 로보의 후손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신들을 절멸의 구렁텅이로 몰아갔던 인간들의 손에 말이죠. 미국 어류·야생보호국이 최근 멕시코늑대 보호계획 2차 수정안을 발표하면서 미국 지역에서 196마리, 멕시코 지역에서 35마리의 서식이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이 지역은 여전히 민가와 가축을 기르는 목장들이 많아서 늑대 복원 사업은 지역사회와의 신중한 교감속에 이뤄지고 있습니다. 순조롭게 늑대의 숫자가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과연 인간과 공존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실제로 이를 우려한은 목소리도 적지 않다고 해요.

늑대는 통상 살아있는 먹잇감을 사냥하지만, 부족할 경우 사체도 먹는다. /Jim Peaco. 미 국립공원관리청(NPS)

개과 맹수의 우두머리이자 원조인 늑대는 아메리카대륙부터 유라시아까지 골고루 분포하고 있습니다. 늑대가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인 콘텐츠로 소비된 데는, 단순히 짐승의 본능이라고 치부하기에 너무나 인간적인 생활습성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늑대의 삶에는 수직적인 위계서열과 수평적 협동이 절묘하게 교직돼있습니다. 무리생활의 정점에는 우두머리 커플이 있습니다. 늑대는 한번 암수가 짝을 지으면 평생 함께 하는 끔찍한 금슬로 이름납니다. 하지만, 그런 금슬로 안정적인 커플을 이루기까지 수컷들은 반려자를 두고 피터지는 싸움을 벌이죠. 사랑마저 약육강식인 셈이죠. 늑대 무리의 기율은 군대 저리가라입니다. 강자는 항상 꼬리를 바짝 세우고 자신만만한 눈빛으로 약자를 쏘아봅니다. 약자는 기가 빨린 듯 바짝 긴장해서 꼬리를 내리고 몸을 움츠립니다. 이런 강력한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협동사냥을 즐겨합니다.

개과 맹수의 대장인 늑대가 날카로운 눈으로 전방을 응시하고 있다. /미 국립공원관리청 드날리 국립공원

제 몸모다 훨씬 큰 말코손바닥사슴, 와피티사슴, 심지어 성에 차지 않을 경우 불곰까지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로 이들의 협동사냥은 가공할만한 위력을 자랑합니다. 사냥감을 쫓아 2주일 동안 200㎞를 달릴 수 있을 정도로 지구력과 집념도 뛰어나죠. 사냥꾼으로서의 품성과 자질은 새끼 때부터 교육 시스템을 통해 전파됩니다. 부모들은 새끼를 끔찍히 아끼는 한편 대대손손 번성해나가기 위한 전투력을 전수해 야생의 전사로 키워냅니다. 그 과정이 축약된 것이 바로 ‘식사’예요. 어린 새끼들에게는 처음에 자신이 삼켜서 위장에서 삭히고 있던 고기를 게워내 먹입니다. 이유식인 셈이죠. 새끼가 고기와 피맛을 알 때즈음에는 죽은 사체를 통째로 던져줍니다. 고기를 통째로 어그적어그적 씹어먹는 맹수의 모습을 보일때즈음에는 작은 동물을 직접 잡는 실습으로 교육의 강도를 높입니다.

늑대는 강력한 사회성과 강한 가족애로 유명하다. 새끼를 돌보고 있는 늑대의 표정이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 /미 국립공원관리공단 플리커

이 과정에서 작은 설치류 등이 ‘교보재’로 희생되곤 하죠.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나면서 늑대전사로 성장하는 한편 무리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게 됩니다. 전세계에 분포하는 늑대는 덩치나 몸의 색깔이 사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하지만, 강력한 결속력으로 사회를 이루는 습성은 어느 지역이든 나타나는 특성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이 짐승에게서 두려움과 매혹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고요. 과연 로보의 후예들은 다시 옛날의 전성기를 재현할까요? 인간들의 시선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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