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슬픔 [한국의 창(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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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피해 북유럽과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이어가던 중 '나, 살아남은 자'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김광규 시인이 약간의 감성을 더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시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창원의 어느 시의원은 유가족 분들을 비난하며 "나라 구하다 죽었냐", "자식 팔아 한몫 챙기자는 수작", "시체팔이"라는 막말을 쏟아 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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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생존자와 유가족의 슬픔을
우리 사회 전체가 위로하고 보듬어야
막말이 아니라 진정 어린 공감이 필요
독일을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피해 북유럽과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이어가던 중 '나, 살아남은 자'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김광규 시인이 약간의 감성을 더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시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이태원 참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고등학생 '생존자' 한 명이 지난주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접하고 오래전 대학 시절 읽었던 이 시가 떠올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학생은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의식을 잃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행히 누군가 얼굴에 물을 뿌려줘 정신을 차리고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일 이태원에 함께 놀러 갔던 친구 2명은 불행히도 끝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친구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어린 학생이 지난 45일간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
지난 16일에는 '이태원 참사' 49재를 맞아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가 주최한 추모제가 열렸다. 먼저 떠나보낸 자식의 영정 앞에서 오열하는 유가족의 모습을 보며 비슷한 연배의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가슴이 미어터진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자식보다 오래 살아남은 부모의 슬픔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지금 시점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지만 '운이 좋았던 덕택'에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분들과 유가족 분들에게 살아남은 자신을 자책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다. 아무리 힘들어도 힘내시라고, 그리고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위로의 말씀도 드리고 싶다. 아마도 우리 국민 대부분이 같은 심정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의 막말과 몰지각한 언행을 보면 과연 이들이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인지 의심스럽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창원의 어느 시의원은 유가족 분들을 비난하며 "나라 구하다 죽었냐", "자식 팔아 한몫 챙기자는 수작", "시체팔이"라는 막말을 쏟아 냈다고 한다. 여당 중진인 권성동 의원은 "이태원이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된다"며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 시민단체의 횡령에 악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진영 논리에 따라 이번 참사를 정쟁화하고자 했던 몇몇 야당 의원들의 언행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유가족 슬픔에 공감은 못할망정 왜 다시 한번 이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수사를 통해 참사 책임자를 찾아내고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이번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위로하고 보듬어주는 일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도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유가족 요구에 귀 기울이고 진정으로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해 보인다. 참고로 유가족협의회가 요구하는 사항은 △국가 책임 인정 및 공식 사과 △이태원 참사 기억과 희생자 추모 공간 마련 △피해자 권리를 중심으로 한 지원 대책 마련 △성역 없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규명 △재발 방지 및 안전한 사회를 위한 근본 대책 마련 △2차 가해 방지 방안 마련 등이다. 이제 정부와 우리 사회가 답할 차례다.
김범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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