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미칼럼] 분노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구시대적 민노총, 미래 담론 대변 못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을 비롯해 4관왕을 휩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작품이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설립한 프로덕션에서 만든 ‘아메리칸 팩토리(American Factory)’다. 미 오하이오주의 퇴락한 자동차 공장 부지에 들어선 중국 투자 기업 ‘푸야오글라스아메리카’에서 벌어지는 미 근로자와 중국 경영진의 갈등을 다뤘다. 오랜 실직 생활 끝에 일자리를 얻은 기쁨도 잠시, 강도 높은 근로 환경과 노조에 반대하는 회사에 적응하지 못한 미국인은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노조가 생기면 공장 문을 닫겠다”던 차오더왕(曹德旺) 회장의 선택은 공장 자동화. 기계화 작업을 둘러보는 차오 회장에 중국인 직원이 말한다. “이걸 올해 하나 더 넣으면 2명, 4명 자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근로자 권익을 대변해야 할 거대 노동조합은 지극히 구시대적이다. 최근 노동 전문가 논의 기구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내놓은 근로시간 유연화, 연공형 임금체계 개편 등에 대해 “한마디로 자본천국, 노동지옥을 현실화시키겠다는 것”(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입장문)이라고 일축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업무 자동화, 스마트 공장은 민노총도 어찌할 수 없는 흐름이다. 노동자 1만명당 로봇 대수인 로봇 밀도가 우리나라는 1000대(2021년 기준)로 세계 1위다. 플랫폼 노동자를 ‘4차 산업혁명 시대 프롤레타리아’로 규정하는 민노총은 자본가와의 투쟁만 외친다.
소속 노조원의 영구적 고용 보장을 고수해온 민노총은 푸야오글라스아메리카 같은 사업장에 파업을 독려하고 총파업으로 지원 사격에 나섰을 것이다. 미국 최대 노조인 전미자동차노조(UAW)도 그랬다. 회사 내 노조 설립을 위해 동조 시위를 벌였지만 실패했다. 사측의 집요한 방해도 있었지만 다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근로자들은 노조 반대 쪽에 표를 던졌다. “거대 노조를 등에 업고 돈 많이 받던 시절은 끝났다”고 자조하면서.
빈손으로 끝난 화물연대 파업과 민노총 총파업 사태는 시대를 착오한 결과다. 과거에 먹혔던 그들의 여론전, 조직력보다 정부의 원칙론에 민심이 움직였다. 청년 근로자들은 대기업, 공공 부문 위주의 강고한 기득권 조직으로 전락한 민노총에 등을 돌린다.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를 쓴 대니얼 서스킨드 영국 옥스퍼드대 선임연구원은 “기술 발전에도 노조가 회원을 모집하고, 불만을 표출하고, 힘을 행사하는 방식은 수백년 동안 사용한 해묵은 방법”이라며 “젊은이들은 현재와 같은 노조를 오늘날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할 적절한 대응책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투쟁과 분노에 기댄 방식으로 기울어진 노동 현장, 미래 세대 불안을 해결할 수 없다. 화물을 멈추고 총파업을 벌여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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