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의동행] 나답게, 우리답게, 사람답게

2022. 12. 20.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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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우리 주변에서 성찰의 뜻이 담긴 단어들이 사라져버린 것이.

하긴 감사가 줄고 우울감이 늘어난 것이 꼭 그 단어들이 사라져서만은 아니다.

기실 그 단어들이 사라져서라기보다는 하루에 한 번이라도 고요히 침잠해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그 성찰의 시간이 사라진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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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우리 주변에서 성찰의 뜻이 담긴 단어들이 사라져버린 것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혼자 있을 때도 행동거지를 삼간다는 ‘신독’이나, 하루 세 번 세 가지를 반성한다는 ‘일일삼성’ 또는 발밑을 조심하며 걷는다는 ‘조고각하’를 외며 자신을 돌아보고 길을 살폈다. 이들 단어 말고도 이름과 신분에 걸맞아야 한다는 ‘∼답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특히 ‘∼답다’는 공자의 정명론에서 기인한 것으로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를 강조한 말이다. 공자는 그렇게 되도록 인도하는 것이 정치라고 했다. 이 ‘∼답다’는 한 존재의 실재를 넘어 공동체 유지에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어떤 한 개인이 자신의 정명에서 벗어나면 주변 사람들이 그만큼 힘들어지거나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한데 사라진 그 단어들의 자리에 혁신이나 창의, 도전과 같은 개인이나 조직의 능력을 요구하는 단어들이 들어찼다. 그와 때를 같이해 서로 간의 경쟁도 가속되었다.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여러 가지 병리 현상도 늘었다. 욕심껏 가지지 못한 데서 오는 열패감과 상실감, 우울감은 늘어난 반면 부끄러움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줄었다. 하긴 감사가 줄고 우울감이 늘어난 것이 꼭 그 단어들이 사라져서만은 아니다. 기실 그 단어들이 사라져서라기보다는 하루에 한 번이라도 고요히 침잠해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그 성찰의 시간이 사라진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이다.

한때 나는 그랬다. 신독이나 조고각하 같은 단어들을 외며 나를 경계했다. 그래도 때때로, 아니 자주, 길을 잃었다. 희로애락애오욕, 이 오욕칠정은 나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다. 늘 나를 부추기거나 등 떠밀며 길을 잃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 단어들을 떠올리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 사회가 따뜻하고 정이 넘쳤던 것은 개인의 자기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성찰이 자정 작용을 하면서 신뢰가 쌓였던 것이다.

지금 일일삼성이나 신독, 조고각하는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유물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 사는 일이 어찌 시대가 달라졌다고 달라질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한 법. 일일삼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신독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 고요히 가라앉아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침잠의 시간도 필요하다.

앞으로는 숫눈길을 걷는 심정으로 살아야겠다. 그 숫눈 진 길에 찍힌 발자국이 단정하며 더 밝은 내일을 향해 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나이 든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삶의 자세이자 태도일 것이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서로를 존중하며 상식이 통하는 그런 해가 되면 좋겠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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