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빌라왕’ 있었다…확정일자 받고 전입신고까지 했는데 당해
전세사기 의심사례 106건
국토부, 경찰에 수사의뢰
피해액 171억원 이상 추정
서울·경기 등 수도권 집중
피해자 절반 이상이 ‘2030’
세입자 A씨는 최근 집주인이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빌라를 담보로 6000만원을 대출받은 사실을 알았다. 전세계약 체결 후 확정일자를 받아 전입신고까지 완료했음에도 자신도 모르게 대출이 이뤄진 것이다. 세입자가 전입신고를 한 집은 집주인이 임의로 대출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집주인은 A씨의 도장을 위조해 서류상 A씨가 이사 나간 것처럼 다른 지역에 전입신고를 한 뒤 자신이 그 집으로 전입신고를 한 후 대출을 받았다. 경찰에 신고한 A씨는 집주인과 관련해 이미 여러 건의 피해신고가 접수된 사실을 알았다.
최근 사망한 ‘빌라왕’ 김모씨 사례와 같이 빌라를 중심으로 한 전세사기 피해가 전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전세사기로 의심되는 거래 106건에 대해 경찰청에 1차 수사의뢰를 한다고 20일 밝혔다. 1차 수사의뢰 건 가운데는 최근 숨진 ‘빌라왕’과 관련된 피해사례도 16건 포함됐다.
국토부가 경찰청에 수사의뢰한 피해사례는 대부분 ‘빌라왕’사건과 유사한 ‘무자본·갭투자’ 유형이다.
자기자본에 임차인의 보증금을 얹는 전형적인 ‘갭투자’와 달리 ‘빌라왕’과 같은 사기는 변형된 갭투자 방식이다. 즉 임대인이 자기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오히려 돈을 받고 빌라 명의자가 되는 것이다.
건축주가 빌라 건물 1채 가격에 분양대행사, 부동산중개업자, 임대사업자에게 줄 리베이트(일명 R)를 붙여 분양가격을 정하고, 신축 빌라에 거주하려는 세입자가 나타나면 웃돈이 붙은 가격과 동일하게 전세금 액수를 맞춰 임대차계약을 맺는데 이때 ‘빌라왕’과 같은 바지사장이 명의만 대여해 집주인이 된다.
임차인이 사기피해 당사자가 됐다는 사실은 임대차계약이 만료된 시점에야 알 수 있다. 임차인이 계약 체결 시 낸 전세보증금은 바지사장과 중개업자들이 나눠 가진 상태이기 때문에 이사시점에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빌라를 경매에 넘겨도 보증금이 이미 집값보다 많은 상황이라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을 수 없는 경우도 대부분이다. 여기에 체납세금까지 있으면 1순위 채권자에서도 밀려난다.
서울에 빌라를 신축한 건축주 B씨는 브로커 C씨와 높은 보증금으로 전세계약을 맺으면 일정 수수료를 지급하기로 공모한 뒤 무자력자(자금력 없는 사람) D씨가 신축 빌라 건물을 통째로 매수하도록 했다.
이후 브로커 C씨는 집을 보러오는 사람들에게 “이자 지원금을 지급한다”고 유인해 전세계약을 체결하게 하는 수법으로 임차인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국토부 조사 결과 106건의 전세사기 의심거래에 연루된 법인은 10개이고, 혐의자는 42명이다. 이 중 임대인이 25명으로 가장 많았고, 공인중개사(6명), 임대인 겸 공인중개사(4명), 모집책(4명), 건축주(3명) 등을 적발했다.
피해가 발생한 거래지역은 강서구·양천구 등 빌라가 다수 들어선 서울 지역이 52.8%로 가장 많았고, 인천(34.9%), 경기(11.3%) 순이었다. 피해액은 1차 수사의뢰 건만 171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며, 피해자들은 신혼부부 등이 많은 30대가 절반(50.9%)에 달했다. 20대(17.9%), 40대(11.3%), 50대(6.6%)순이었다.
국토부는 내년 1월24일까지 진행하는 범정부 전세사기 특별단속 결과를 2월 중 경찰청과 공동발표하고, 2개월 단위로 전세피해지원센터에 접수되는 피해사례를 조사·분석해 경찰청에 수사의뢰한다는 방침이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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