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경 때마다 벨라루스 끌어들이는 푸틴…확전인가, 으름장인가
푸틴, 3년여 만에 벨라루스 방문 목적 의문
국면 전환 노린 정보 교란 작전일 가능성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혈맹’ 벨라루스를 찾아가 ‘군사 협력’ 강화 의지를 밝히면서 ‘벨라루스 참전설’이 또다시 부상하고 있다. 러시아가 내년 초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재공략을 준비 중이라는 관측이 제기된 직후라 더 예사롭지 않다.
동남부 전선에 집중된 우크라이나군 병력을 북부 벨라루스 국경으로 분산시키려는 유인술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우크라이나와 서방에 확전 공포를 조장하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푸틴·루카셴코 회담, 벨라루스 참전설 재부상
푸틴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양국 안보 보장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함께하기로 합의했다”며 “전투 준비 태세를 높이기 위해 정기적 합동 군사 훈련과 기타 작전, 전투 훈련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벨라루스 참전설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벨라루스에선 수상한 움직임이 다수 포착됐다. 13일에는 벨라루스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군대의 전투 준비 태세를 점검했고, 19일에는 벨라루스 주둔 러시아군이 전술 훈련에 돌입했다. 벨라루스 야당 인사들에 따르면 최근 몇 주간 러시아 대공 방어 무기, 미사일 시스템, 군용 트럭 등 군사 장비들이 벨라루스에 도착했다. 올해 2월 개전 당시 러시아군이 벨라루스를 통해 키이우로 진격했던 터라 우크라이나는 크게 긴장하고 있다. 벨라루스와 키이우는 불과 90㎞ 거리다.
벨라루스 국가안보위원회 정보국 출신 알렉산드르 아자로프 전 중령은 벨레루스군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군사 훈련은 도강(渡江)을 비롯해 침공에 필요한 기동 연습 등을 포함하고 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이어 “새로 동원된 예비군 병력 30만 명 중 전장에 투입되지 않은 15만 명이 벨라루스로 언제든 이동할 수 있다”며 “내년 봄 벨라루스군이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푸틴의 벨라루스 끌어들이기, 국면 전환용 교란 작전?
푸틴 대통령이 극히 이례적으로 벨라루스로 직접 날아갔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푸틴 대통령과 루카셴코 대통령은 올해 다자간 회의를 포함해 최소 9차례 대면 회담을 했지만, 주로 러시아에서 만났다. 푸틴 대통령의 벨라루스 방문은 2019년 6월 이후 3년 6개월 만이다. 개전 300일을 앞둔 이 시점에 벨라루스를 찾은 이유와 목적을 두고 의문이 커진다. 러시아가 예고한 ‘중대 발표’와 관련됐을 가능성, 벨라루스에 참전 확답을 요구했을 가능성 등이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두 정상은 전황이 불리하거나 국면 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회담했다. 개전 직전에는 전략 핵무기 훈련을 함께 참관했고, 개전 직후에는 서방의 제재 폭탄에 맞선 상호 지원을 협의했다. 러시아가 전선에서 밀리던 6월에는 벨라루스에 미사일 이전 등이 논의됐다. 9월 러시아가 예비군 동원령을 내린 이후에도 두 정상은 어김없이 회동했다. 그때마다 벨라루스 참전설이 불거졌다. 비록 현실화하지는 않았지만 우크라이나와 서방에는 상당한 위협이었다.
이번에도 벨라루스가 파병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벨라루스군 전체 병력은 5만 명 수준으로 전면전을 치르기엔 규모가 작은 데다 전투 경험도 전무하기 때문이다. 또 오랜 철권통치로 내부 불만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후폭풍에 직면할 수도 있다. 루카셴코 대통령 지지자 사이에서도 전쟁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더구나 개전 초기와 달리 우크라이나군은 서방의 첨단 무기로 무장한 터라 러시아·벨라루스 합동군이 우세하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군사 전문가들은 접경지에서의 군사적 움직임이 우크라이나와 서방을 교란하기 위한 정보 작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동남부 전선에서 교전 중인 우크라이나군 병력을 북부로 분산시키려는 ‘획책’이라는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 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러시아군이 벨라루스에서 공격력을 집결하고 있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새로운 공세를 시도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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