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부터 흔들리는 중국의 '제로 코로나' 신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도 높게 코로나19 방역 정책을 펼치던 중국이 이달부터 돌연 ‘위드 코로나’ 전환을 선언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감염병 확산을 막겠다며 식당 내 취식을 금지하고 전 주민 48시간 내 유전자증폭(PCR) 검사 의무화, 감염자 및 밀접 접촉자 집단격리시설 이송, 주거단지 봉쇄 등을 고수하던 것과 비교하면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다. ‘베이징의 이태원’으로 불리는 싼리툰에서 만난 한 청년은 “중국도 코로나19와 공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금이라도 깨달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이 “전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방역 정책”이라고 자랑하던 ‘둥타이칭링’(動態淸零·역동적 제로 코로나)을 사실상 폐기했다. 지난달 24일 신장의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를 계기로 중국 전역으로 번져나간 ‘백지(白紙)시위’, 장쩌민 전 국가주석 사망이 맞물린 결과다. 베이징 유명 관광지 스차하이에서 만난 중년 남성은 위드 코로나 전환을 두고 “주민들 사이에서 ‘장쩌민의 마지막 선물’이라는 말이 돈다”고 전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불만이 장 전 주석에 대한 향수로 표출되는 분위기를 중국 지도부가 감지했다는 것이다. 3년 가까운 봉쇄에 지친 민심이 이 두 사건을 계기로 폭발할 수 있다고 판단해 공산당이 서둘러 선제 조치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인들은 3년 만에 자유를 얻고 기뻐했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 사회가 ‘위드 코로나’로 나아갈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봉쇄가 풀렸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처럼 집단면역이 형성돼 있지 않은데도 공산당이 백지시위에 떠밀려 ‘제로 코로나’ 폐기를 선택했다. 이제 PCR 검사에서 양성이 나와도 더는 방역요원들이 그를 잡아 병원에 가두지 않는다. 확진자들도 도심 쇼핑몰에서 자유롭게 쇼핑을 즐기면서 바이러스 감염은 누구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베이징에서는 “지금 밖에 돌아다니는 이들은 전부 다 감염자이고, 집에 있는 이들은 비감염자”라는 우스갯소리도 나돈다.
너무 많은 확진자가 한꺼번에 쏟아지자 주요 도시들은 PCR 검사 양성 반응자들을 별도로 추적해 확진자를 가리는 재검사를 중단했다. 쉽게 말해서 ‘더이상 방역 통제는 없다. 그러니 각자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자택에서 알아서 치료한 뒤 다 나았다고 판단되면 PCR 검사를 받고 사회 생활로 복귀하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각자도생’의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전국의 약국마다 해열제와 감기약을 사려는 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집에서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진단키트는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기자를 비롯한 베이징 특파원 대부분도 위드 코로나를 전후해 바이러스에 감염돼 한참 홍역을 치렀다. 기자는 이틀에 한 번씩 PCR 검사소에 가는 것 말고는 바깥 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도 걸렸다. PCR 검사를 받다가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틀 정도 고열로 역대급 고통을 겪은 뒤에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았다.
그간 중국에서 ‘제로 코로나’는 일종의 종교나 이데올로기 같은 것이었다. 최소한 중국 내부에서는 “팬데믹 위기에서 14억 중국인을 모두 지켜냈다. 사회주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체제 선전 도구로써 큰 역할을 했다. 실제로 중국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바이러스를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차단했고 경제 충격도 다른 나라보다 덜했다. 덕분에 시 주석에 대한 중국인들의 여론도 매우 우호적이었다.
그런데 오미크론 변이는 중국 공산당의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고강도 방역에 지친 주민들도 스마트폰을 끄고 다녀 당국의 추적을 따돌렸다. 중국이 고수하는 자국산 백신 역시 변이에 큰 효과가 없었다. 선진국에 비해 의료 체계가 열악한 중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앞으로 오미크론 감염자·사망자는 폭증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번 겨울에만 100만~200만명의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 주석의 3연임을 가능하게 해 준 ‘제로 코로나’ 신화가 근본부터 흔들리는 것이다. 그는 과연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10억명이 넘는 중국인이 이동하는 내년 춘제(음력설)를 어떻게 방어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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