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제한, 기사 삭제, 민영화… 언론자유 존재 되물어본 2022년
① MBC 기자 전용기 탑승 배제 등 ‘MBC 압박’ 노골화
2022년은 MBC에겐 유독 잔인한 해였다. 지난 9월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을 최초 보도한 MBC는 이후 대통령실과 정치권의 온갖 탄압에 시달렸다. 대통령실은 수많은 언론사가 같은 내용을 보도했는데도 MBC만을 꼭 찍어 왜곡 보도로 몰아갔고, 보도와 관련한 설명을 요구하며 대통령 비서실 명의의 공문까지 보냈다. 여당도 가만있진 않았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서울 마포구 MBC 본사를 항의 방문하고 민영화를 운운하며 보도 책임자들을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MBC 탄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11월엔 윤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을 이틀 앞두고 MBC 취재진에 전용기 탑승을 불허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비판적 보도를 했다고 전용기 탑승을 거부한 일은 군사독재 시대에도 없던 일이었다. 출입기자단은 특별총회를 거쳐 대통령실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는 공동 입장을 발표했고,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전용기 탑승을 거부, 민항기를 이용해 순방 과정을 취재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결정을 철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순방 이후 출입기자단 간사단에 MBC 기자에 대한 징계를 요청했다. 간사단이 “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달하자 대통령실은 기자들과의 출근길 문답이 이뤄지던 1층 현관에 갑자기 대형 구조물을 설치했고, 지난 11월21일 일방적으로 출근길 문답을 중단했다.
② 서울신문, 호반건설 기사 57건 삭제… 기자 이탈 가속화
1월16일, 서울신문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에서 특정 기사가 무더기로 사라져버렸다. 2019년, 서울신문이 특별취재팀을 꾸려 몇 개월에 걸쳐 보도했던 ‘호반건설 대해부’ 기사 57건이었다. 곽태헌 사장은 “(호반) 김상열 회장이 서울신문 회장 겸임도 하시는 건데 그런 기사가 그대로 있는 게 맞냐”며 기사 삭제를 밀어붙였다. 즉각 “현대판 분서갱유”란 비판이 일었고, 서울신문 기자들은 강하게 반발하며 기사 복구와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편집국장 등은 “편집권 침해는 아니”란 입장만 반복하며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지난 6월엔 프레스센터 재건축 추진 계획과 함께 우면동 호반파크로의 사옥 이전이 결정됐다. 그리고 지난 10월 초 서울신문은 프레스센터를 떠났다. 호반건설이 서울신문의 대주주가 되고 1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또한 “사주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취재·보도 여부와 지면 구성이 결정”되는 일이 잦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렇게 경영진을 향해 견제와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 기자들 상당수는 이제 서울신문에 없다. 기사 삭제와 사옥 이전 등의 여파, 무엇보다 ‘불통’에 따른 절망감과 무력감으로 많은 기자가 서울신문을 떠났다. 새해 서울신문은 프레스센터 재건축보다 뉴스룸 내 활기와 기자들의 자부심을 끌어올리는 일이 시급하지 않을까.
③ YTN 공기업 지분 25년 만에 매각 결정
이런 걸 가리켜 ‘답정너’라고 한다. 공기업의 YTN 지분 매각 결정에 관한 얘기다. 지난 9월 YTN 1대 주주인 한전KDN이 YTN 지분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는 정보보고에서 시작된 YTN 민영화설은 불과 두 달 만에 부동의 사실이 됐다. 한전KDN의 지분 보유 의사에도 불구하고 산업부 민관합동 혁신TF는 ‘두 줄짜리’ 검토 의견으로 매각을 권고했고, 여당 의원들까지 “불필요한 자산”이라고 압박하면서 결국 11월1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자산 효율화 계획’에 YTN 지분 매각이 포함됐다. 이어 같은 달 23일 한전KDN은 이사회를 열어 YTN 지분 전량(21.43%) 매각을 의결했다. 애초에 YTN 지분 매각 계획이 없었던 4대 주주(9.52%) 한국마사회 역시 지분 정리 대상에 포함됨에 따라 21일 이사회에서 이를 안건으로 다룬다. 이로써 YTN은 25년 만에 지배구조 개편을 앞두게 됐고, 창사 이래 처음으로 민간 자본을 사주로 맞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대기업들이 주주인 한국경제신문, 한국일보를 소유한 동화기업 등이 YTN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내년 봄부턴 본격적인 인수전이 진행될 예정이어서 자본의 보도 개입을 우려하는 YTN 구성원들의 근심도 커지고 있다.
④ ‘출근길 문답’ 시작했던 윤 대통령, 반년 만에 일방 중단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직후 시작한 기자들과의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을 6개월 만인 지난 11월 잠정 중단했다. 대통령실은 중단 이유로 ‘최근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태’를 언급했는데, 이는 문답 과정에서 벌어진 MBC 기자와 대통령실 비서관의 설전을 뜻한다. 출근길 문답은 윤 대통령이 강조해온 소통 의지와 탈권위의 상징이었다. 당선인 시절 “대통령이 일하는 모습을 국민이 언제든지 지켜볼 수 있다는 자체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을 앞당길 수 있다”는 발언을 실현한 셈이다. 기자들은 대통령의 소통 행보를 호평했다. 기자협회보가 지난 8월 현직 기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57.7%가 출근길 문답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여권에선 대통령의 즉흥 발언이 국정운영에 부담된다는 우려가 계속됐다. 그러다 ‘설전 사건’이 벌어지자 대통령실은 재발방지책 마련을 이유로 출근길 문답을 중단했다. 문답을 진행하던 대통령실 1층 현관에 가림막까지 설치해 대통령의 동선 노출도 차단했다. 대통령의 소통은 이번에도, 임기 초반에만 반짝하고 마는 걸까.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11월21일 발표한 성명에서 윤 대통령을 향해 “국민과 불통했던 역대 정권들의 말로가 어떠했는지 되새기길 바란다”고 했다.
⑤ TBS 폐지 조례안 의결… 서울시 출연금 대폭 삭감
내년 2월17일은 서울시 산하 사업소로 개국한 tbs가 독립적인 서울시 출연기관인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로 재출범한 지 3년이 되는 날이다. 하지만 그다음 4주년, 5주년은 기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2019년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던 서울시의회가 3년 만인 11월15일 이 조례를 폐지하는 조례를 의결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과 시의회 다수 권력이 국민의힘으로 넘어가면서 생긴 결과다.
국민의힘은 “정보통신기술 발전과 교통안내 수요에 대한 급격한 변화” 등을 폐지 조례 처리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기실 그들이 겨냥한 건 ‘김어준의 뉴스공장’으로 대표되는 TBS의 공정성 문제였다. 결국 김어준씨 등이 연말 방송을 끝으로 하차하겠다고 밝혔지만, 내년도 서울시 출연금이 크게 깎인 상황에서 정상적인 방송 운영은 이미 어려운 상황이다. 김씨가 떠났다고 폐지 조례가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1년여의 유예가 끝나면 2024년 1월1일부로 서울시 예산 지원은 전면 끊기지만, TBS 방송을 지키기 위한 고민은 각계에서 진행 중이다. 내년 초 새로 선임될 TBS 대표이사를 비롯한 TBS 구성원들은 어떤 해법을 내놓게 될까.
⑥ 산복빨래방·심부름센터… 어려운 여건 속 돋보인 지역언론
쉽지 않은 여건 속 다수 지역 언론에서 본연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시도가 잇따른 한 해였다. 부산일보는 ‘산복빨래방’ 기획을 진행했다. 역사 속에서 실향민, 노동자의 보금자리가 됐지만 지금은 빈집 투성이인 그곳에 회삿돈 2000만원을 들여 빨래방을 열고 세탁비 대신 주민들 이야기를 들었다. 경남신문은 ‘심부름센터’ 기획을 통해 오지 중의 오지 입사마을에 들어가 3개월 간 주민들 심부름꾼으로 활동하며 마을 주민들의 소소한 삶을 기록했다. 콘텐츠 차원을 넘어 지역민과 함께 하고 지역을 알리는, 나아가 지역의 가치를 복권하려는 다각적인 시도도 있었다. 옥천신문은 지역 균형발전과 정보소외를 막는 데 이바지한다는 취지로 신문쇠락 시기 마을신문 청산별곡을 창간했다. 인천일보 경기본사는 지역 이슈를 다룬 장기취재물을 책으로 엮고 ‘주민들과 함께 하는 잔치’로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강원도민일보는 ‘백종원도 모르는 진짜 강원도 맛집 지도’ 기획으로 지역 음식 등 문화자원을 알렸고, 경남도민일보는 후원제를 재가동해 독자 기반 수익모델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지역언론은 지역에 기반하고 그 역할이자 책임 역시 지역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서 듣고 전하는 것이란 본질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올해 시도들을 평가할만하다.
⑦ 이태원 참사와 현장 취재기자들의 트라우마
지난 10월29일 우리 사회는 또 한 번의 대형 참사를 겪었다. 그날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로 158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참사 발생 직후 주로 사회부 소속인 저연차 기자들이 현장에 투입돼 희생자, 부상자, 생존자, 유가족, 목격자들을 취재했다.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긴 참사였던 만큼 직접 현장에 나섰던 기자들도 그 슬픔과 두려움 앞에서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업무상 트라우마 문제가 기자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계기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였다. 당시 교훈으로 이번 이태원 참사에선 각 언론사뿐 아니라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조 등이 현장취재 기자들에게 심리 상담과 치료비를 지원했다. 과거에 비해선 한 발 나아간 대응이지만, 일선에선 일회성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트라우마를 예방.관리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 기자현업3단체는 기자들의 심리적 트라우마 현황과 현실적인 예방 대책을 담은 가이드라인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가이드라인 제정 작업을 이끄는 안현의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기자는 트라우마 고위험직군이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며 “평소 언론사와 기자들이 트라우마 반응을 잘 이해해야 제때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⑧ 중앙일보 ‘프리미엄 페이월’ 콘텐츠 유료화 시도
디지털 혁신의 종착지는 유료화일 수밖에 없다. 2022년은 그 유료화의 첫 발을 뗀 언론사가 탄생했다는 점에서 뜻깊은 해였다. 지난 2015년, 업계에서 디지털 혁신을 가장 먼저 실행했던 중앙일보는 다양한 실험을 진행한 끝에 지난 10월 디지털 뉴스 유료화 모델, ‘더 중앙 플러스’를 시작했다. 전체 콘텐츠가 아닌 일부 콘텐츠에 부분적으로 적용되는 ‘프리미엄 페이월’ 방식이었지만 국내 기성 매체가 이 정도 규모의 디지털 뉴스 유료화를 시작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중앙일보는 당시 더 중앙 플러스를 선보이며 30개의 유료 콘텐츠 목록을 공개했다. ‘로그인 월’ 등을 통해 확인한 독자 데이터를 반영, 6개의 관심 분야를 만들고 그 아래 4~6개씩 콘텐츠를 배치했다. 또 콘텐츠 등급을 회원 전용, 구독 전용 등 4단계로 나누고 이용권 종류도 5개로 다양화해 최대한 다양한 독자를 끌어 모으겠다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용권 가격은 정상요금 1만5000원에 오픈 기념 할인을 적용, 월 9000원 선으로 책정했다.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한 데다 실험적 성격도 강해 업계에선 중앙일보의 향방에 관심을 쏟고 있다. 중앙일보 역시 유료화 시도를 단기간에 마무리 짓는 ‘깜짝쇼’가 아니라 길게는 3~5년을 내다보는 만큼 앞으로 다양한 실험과 분석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⑨ 법제화 첫걸음 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KBS·MBC·EBS 등 공영방송 이사회 구조와 사장 선임에서 정치권 입김을 축소하는 내용의 방송 관련법 개정안이 지난 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야당 단독으로 의결됐다. 개정안은 현재 9~11명인 공영방송 이사회를 21명의 운영위원회로 확대하고 국회(5명), 시청자위원회(4명),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6명), 방송기자연합회·한국PD연합회·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각 2명)에서 추천하도록 했다. 공영방송 사장은 100명으로 구성된 ‘사장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를 복수로 추천하면 운영위원회에서 3분의 2이상 찬성으로 선임하는 내용도 담겼다. 여야 정치권의 분할 독식을 막고 시청자와 전문가, 방송 종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자는 취지다. 국민의힘은 ‘언론노조 영구장악법’이라며 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정치권은 그동안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하지만 정권만 잡으면 태도를 180도 바꿨다. 방송법 개정안은 앞으로 법사위와 본회의 등 넘어야 할 관문이 남아 있다. 개정안이 상임위를 통과한 만큼 이제야말로 정치권은 공영방송을 공영방송답게 만드는 법제화에 나서야 한다.
⑩ 우크라이나 전쟁 취재와 외교부 취재 제한 논란
올해는 국제 이슈가 국내 사안 못지않게 큰 관심을 받았다. 2월24일 새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국내 취재진들도 속속 현지에 급파돼 전쟁 소식과 참상을 보도했다. 다만 전쟁 초기 정부가 우크라이나를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하며 취재마저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논란이 일었다.
당시 취재진은 외교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아야만 현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갈 수 있는 지역·기간·취재 인원도 극도로 제한돼 있었다. 외교부는 전쟁이 일어난 지 20여일이 지나서야 현지 진입을 허용했고, 그동안 취재진은 국내 언론은 폴란드 프셰미실 등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서 취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4월 특파원 6명은 ‘유럽 주재 한국 특파원단’ 명의로 성명을 내 “언론 자유에 대한 통제”라며 “외교부는 여행금지 국가의 취재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전쟁 100여일이 지나서야 취재진은 수도 키이우에 들어가 취재할 수 있었지만 이미 전쟁이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수도에 들어간 기자들에겐 아쉬움이 남았다.
무수한 인명 피해를 낳고 있는 전쟁은 언제 끝날까. 기자들은 최근 교전이 격화되며 대규모 정전, 민간 거주지 파손 등 민간인들의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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