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월패드 해킹
요즘 아파트·오피스텔의 거실이나 주방 벽면에 붙어 있는 터치스크린 기기 ‘월패드(wall pad)’는 그 옛날 인터폰이 아니다. 초인종이 울리면 방문자 얼굴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는 기능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집 차량 도착을 자동으로 알리고, 엘리베이터를 부르며, 에너지 사용량과 관리비 부과 내역까지 보여준다. 집 밖에서 집 안의 전자제품이나 냉난방 시스템 등을 제어하는 사물인터넷(IoT) 서비스도 제공한다. 인터넷망과 스마트폰 기술을 연결한 ‘지능형 홈네트워크’의 주요 기기인 것이다. 컴퓨터가 한 대 붙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능형 홈네트워크는 편리한 주거생활을 완성하는 핵심으로 여겨졌다. 2010년부터 대단지 아파트를 필두로 건설사들이 첨단 기술 경쟁을 벌이듯 이를 앞다퉈 도입했다. 그래서 월패드로 상징되는 똑똑한 집, ‘스마트 홈’이 최고로 좋은 집이 됐다. 하이테크가 구현된 스마트 홈을 가리켜, 입주민이 잠든 사이에도 살아 움직이는 집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TV를 부르는 인공지능 스피커가 꺼진 것으로 보여도 불시 호출에 대비해 항시 켜져 있는 것처럼 집도 늘 깨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언제나 깨어 있는 월패드가 한없이 편리한 기기인 것만은 아니다. 사생활을 침해하고 일상을 위협하는 도구로 쓰인 일이 지난해 말 일어났다. 해외 사이트에 월패드 카메라로 찍힌 국내 아파트 실내 영상이 나돈 것이다. 경찰청이 1년 수사 끝에 20일 월패드를 해킹한 피의자를 검거했는데, 보안 전문가로 알려진 30대 해커였다. 그는 지난해 8~11월 전국 638개 아파트 단지의 월패드 관리 서버와 40만4847가구의 월패드를 해킹했다고 한다. 개방형 공동망인 월패드 시스템에 누구든 접근 가능하고 한 집이 해킹당하면 연쇄적으로 뚫리는, 치명적인 보안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누군가 월패드로 내 사생활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기술의 이면에 도사린 위험에 소스라치게 된다. ‘설마 별일이 있겠어’라고 방심하지 말고 보안을 철저히 살피는 게 초연결 시대를 사는 길이다. 정부는 엊그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월패드 카메라를 가리고 암호를 설정하라는 것 말고, 근본적인 안전대책이 필요하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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