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떼일까 잠도 못자요”...줄줄이 법원 달려가는 세입자들

이선희 기자(story567@mk.co.kr), 연규욱 기자(Qyon@mk.co.kr) 2022. 12. 20.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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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물량 늘고 전셋값 하락
세입자 “내 보증금 돌려줘”
임차권 등기신청 역대 최대
전세계약 만기가 됐지만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내주지 못해 갈등을 빚는 집주인이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노원구 일대 아파트 전경.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전세기한이 만료됐는데도 집주인이 세입자를 못 구했다면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요. 집주인 때문에 이사도 못가고 화가 납니다.”(세입자 김모씨)

전세 가격이 급락하면서 임대차 시장의 혼란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세입자는 이사를 해야하는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집주인들은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파산 위기다. 고금리와 입주 물량 증가로 전세 수요와 공급이 꼬이면서 전세가는 계속 떨어지고 전세 물량은 쌓이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다. 보증금을 받아야하는 세입자, 보증금을 돌려줘야하는 집주인 모두 ‘출구’를 못 찾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월세 시장 혼란이 지속되면 실수요자들 피해가 커지므로 ‘연착륙’을 위한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송파구 한 아파트 전세를 살고 있는 직장인 김모씨는 최근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했다. 이달 전세 만기였는데 집주인은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았다며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했다. 김씨는 “아이 학교 때문에 무조건 이사를 가야하는데 보증금을 못받았다. 급한대로 월세로 옮기고 등기명령을 신청했다”면서 “보증금을 못 돌려받고 이사를 가서 찜찜하고 화가난다”고 했다.

김씨처럼 이사를 앞두고 전·월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법원에 달려간 서울지역 세입자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일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11월 서울지역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는 3719건에 달했다. 2017년 1279건이었으나 매년 증가해 2020년 3308건, 지난해 3226으로 늘더니 올해는 11월 누적 3719건으로 증가했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전·월세 계약 만료 시점에서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때 세입자가 신청하면 법원이 내리는 명령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으려면 전셋집 실거주와 확정일자가 필요하다. 만약 임차인이 이사를 하게 되면 확정 일자가 있더라도 실거주가 아니어서 우선 변제권이 사라진다.그러나 임차권 등기명령을 받아 등기가 이뤄지면 세입자가 보증금을 못 받은 채 이사를 한 이후에라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가 유지된다. 이사는 해야하지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경우 임차권 등기명령을 한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증가했다는 뜻이다.

임차권 등기 명령이 완료된 후 임차인이 집을 임대인에게 인도한 뒤에도 전세금 반환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전세금반환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임대인을 상대로 임차인이 제기하는 소송이다. 임차인은 전세금 반환이 이뤄질 때까지의 지연 이자도 받을 수 있다.

보증금이 없는 임대인들은 비상이다.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임차권이 등기되면 더욱더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진다. 임차권이 등기된 집에 선뜻 들어오려는 세입자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세금반환 소송까지 걸리면 매달 이자를 세입자에게 내야한다. 세입자는 못구하고 이자부담은 커져서 ‘파산’에 내몰리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전세시장 위축은 실수요자들의 거주지 이동을 막고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등 서민 경제를 파탄으로 내몰 수 있으므로 정부가 전세시장 안전화를 위해 ‘출구 전략’을 내놔야한다고 강조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전세보증금반환 대출 조건이 까다로운데, 일시적으로 조건을 완화해 세입자들이 전세보증금을 받을 수 있고 집주인도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적극적인 ‘출구’를 마련해줘야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이날 전세사기로 의심되는 거래 106건을 경찰에 수사의뢰한다고 밝혔다. 이중에는 최근 주택 1000여 채를 보유한 채 사망해 다수 임차인에게 피해를 끼친 일명 ‘빌라왕’과 관련된 사례도 16건 있다. 임대인은 사망했지만, 이와 관계없이 공모조직 등 전체 범행에 대해 경찰청이 수사를 하고 있는 만큼 수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피해 상담일지 등 관련 자료와 국토부가 별도로 조사, 분석한 내용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외 수사의뢰한 건들도 빌라왕 사례와 유사한 무자본·갭투자에 해당하는 유형이 주를 이뤘다. 이중에는 40대 임대업자 3명이 각자 자기 자본 없이 전세보증금으로 서울 소재 빌라를 다수 매입한 뒤, 보증금 반환이 어렵게 되자 모든 빌라를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법인에 매도한 후 잠적한 사례도 있었다. 다수의 모집책들에게 임대차계약을 성사시키는 대가로 전세보증금을 수수료로 지급하는 식으로 다수의 주택을 매입하는 등 조직적으로 전세보증금 편취한 임대인도 있었다.

이번 106건의 전세사기 의심거래에 연루된 법인은 10개, 혐의자는 42명으로 조사됐다. 임대인이 25명으로 가장 많았고, 공인중개사(6명), 임대인 겸 공인중개사(4명), 모집책(4명), 건축주(3명) 등도 다수 있었다. 106건의 전세사기 의심거래의 총 피해액은 171억원 이상으로 국토부는 추정했다. 피해자는 30대(50.9%)와 20대(17.9%)가 주를 이뤘다. 국토부는 이번 1차 수사의뢰 건에 포함되지 않은 나머지 피해사례들도 심층 조사·분석을 거쳐 추가 수사의뢰할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빌라왕의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신속하게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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