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화 선생님 영전에] 낙동강 전사여! 편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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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야꽃'이라는 슬픈 노래가 있습니다.
이 누야가 어미로서 모성의 바탕이라고 보면, 누야는 곧 낙동강이 아닐까요.
김상화 대표님, 어딜 그리도 황망하게 떠나십니까? 낙동강에 어리는 누야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는데, 어느 강을 보시려고 서둘러 떠나셨는지요? 술 한잔 걸치시고 통기타 튕기며 꺼이꺼이 부르시던 당신의 '누야꽃'이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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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야꽃’이라는 슬픈 노래가 있습니다.
‘누야가 가꾸던 누야꽃이 어둔 밤 남몰래 피었네요./누야의 하이얀 웃음꽃이 하얗게 피었네요./황톳길 까마득히 멀어멀어 누야의 방울방울/시집살이 눈물이 하얗게 피었네요.’
1972년 홍수진 작사, 김상화 작곡·노래의 ’누야꽃’ 1절입니다. ‘누야’는 ‘누부’나 ‘누님’을 뜻하는 경상도 말이지요. 이 누야가 어미로서 모성의 바탕이라고 보면, 누야는 곧 낙동강이 아닐까요.
김상화 대표님, 어딜 그리도 황망하게 떠나십니까? 낙동강에 어리는 누야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는데, 어느 강을 보시려고 서둘러 떠나셨는지요? 술 한잔 걸치시고 통기타 튕기며 꺼이꺼이 부르시던 당신의 ‘누야꽃’이 듣고 싶습니다.
김 선생님은 온몸으로 낙동강이었고, 온 정신으로 낙동강을 사랑하셨습니다. ‘김상화=낙동강’입니다. 낙동강은 당신의 일터이자 삶터였으며 영혼이 돌아갈 안식처였습니다. 그곳이 가고 싶어 모든 것 뿌리치고 탈속하셨는지요?
당신은 낙동강 독립운동가였습니다. 1970년대 말, 민족의 대하(大河)가 개발 논리에 치여 신음한다는 것을 알고 오로지 발품으로 낙동강에 뛰어든 당신. 생업보다 더 중한 게 있다며 생업 대신 낙동강 투사의 길을 택한 당신. 낙동강 낭인이란 핀잔 속에서도 꿋꿋이 심지를 지키면서 ‘낙동강 생명찾기 백서’ ‘낙동강 발원지의 꿈’ ‘낙동강 물터속의 생명과 마음’을 펴낸 심정을 이제야 겨우 알 것도 같습니다. 이 책들은 이제 낙동강의 자식들이 되었고 내일을 찾아가는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각혈을 하면서 엮어낸 당신의 분신들이 공동체의 텃밭에서 연대의 씨앗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삶의 막바지에 병원 갈 돈이 없이 난감해하시던 당신의 가녀린 몸짓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어떻게 사셨는지요? 자본사회의 그 엄혹함을 어찌 견디셨나요?
당신은 퇴계의 경(敬) 사상과 남명의 의(義) 사상을 신봉했지요. 낙동강을 살릴 정신적 사상적 사표로서 퇴계와 남명을 떠받든 당신. 청량산과 지리산에서 흘러내리는 ‘경의로운 물줄기’를 모아 낙동강 공동체의 열린 철학으로 삼고자 한 당신. 그 고귀한 뜻을 당신이 떠난 다음에야 이해하려는 우리들은 얼마나 아둔한 존재입니까. 당신이 떠나도 강변에는 누야꽃이 필 테지요. 그때 다시 피는 누야꽃은 연대의 꽃, 감격의 꽃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눈이 되고 비가 되고 강이 되셨습니다. 아침 햇살이 물안개 사이로 피어오르면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부디 잘 가시옵소서, 낙동강 전사여! 부디 흘러 흘러 강이 되고 큰 바다에서 두둥실 춤이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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