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의견은 분분한데 한쪽으로 쏠린 언론의 법인세 인하 주장
예산안 놓고 여야 대치 길어지면서 '법인세' 주요 쟁점으로
12월 35개 사설 중 30개 "경제성장 위해 법인세 인하해야"
학계 의견은 분분…"법인세 효과 불확실, 보도 한쪽으로 쏠려"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예산안 협상의 주요 쟁점 중 하나로 '법인세'가 꼽히면서 대부분의 언론은 일제히 법인세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인세 인하 효과에 대한 학계 의견은 분분하지만 언론보도는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다. 법인세 인하를 주장하는 각종 사설의 근거도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2일)이 훌쩍 지났지만 여야는 아직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여권은 최고세율을 현행 25%에서 22%로 3%p 낮출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야당은 '초부자 감세'라며 반대하다가 최근 김진표 국회의장의 최고세율 1%p 내리는 안을 수용했다.
정치권 공방이 계속되자 법인세 인하를 주장하는 사설이 쏟아졌다. 미디어오늘이 주요 9개 일간지와 3개 경제신문(서울경제, 매일경제, 한국경제) 사설을 조사한 결과 12월1일부터 20일까지 20일간 관련 사설 35개가 나왔고 이중 30개의 사설이 법인세 인하를 주장하고 있었다.
“법인세 인하하면 경제 성장한다”…다시 돌아온 '낙수효과'
이들의 핵심 논리는 '경제성장'이다. 법인세 인하가 투자를 증대하고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12일 사설에서 “중소기업을 비롯한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을 덜어주면 투자 증가뿐 아니라 근로자 임금 상승, 주주배당 확대로 경제 전체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며 “지나치게 높은 법인세율은 글로벌 경쟁 전장에서 우리 기업의 핸디캡으로 작용하는 대표적인 모래주머니”라고 했다.
조선일보도 12일 사설 '경기 침체 막는 길은 투자뿐, 기업 발목 잡는 입법 횡포 멈춰야'에서 “재정·금융 완화 카드를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경기 부양 방법은 기업 투자뿐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늘려야 일자리가 생기고 소비가 촉진돼 경제 활성화 효과가 나타난다”고 했다.
'낙수효과' 주장도 이어졌다. 조선일보는 14일 사설에서 “법인은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뿐 아니라 소액 주주, 근로자 등 여러 경제 주체들의 결합체다. 법인세를 감면받은 기업이 배당을 늘리면 그 대부분은 소액 주주의 몫으로 돌아간다”며 “감면된 세금으로 투자를 하면 일거리와 일자리가 동시에 창출되고 경기를 부양해 수많은 사람이 혜택을 본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설들은 OECD 국가들의 최고세율을 근거로 들었다. 한국이 세계적 추세에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매일경제는 5일 사설 '韓 OECD 조세후진국 전락, 누가 낡은 세제개편 발목 잡나'에서 “한국이 5년 새 '조세 후진국'으로 전락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해외 선진국의 감세 정책과 달리 법인세·종합부동산세 등 징벌적 세금을 늘리는 역주행에 나섰기 때문”이라며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27.5%·지방세포함)은 OECD 국가 중 10번째로 높다”고 했다.
세계일보도 13일 사설에서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21.2%보다 3%포인트 이상 높다. OECD 38개 회원국 중 7위”라며 “규제 사슬이 여전한 마당에 지나치게 높은 법인세율은 글로벌 경쟁 전장에서 우리 기업에게 핸디캡으로 작용하는 대표적인 모래주머니”라고 했다.
“법인세 인하 경제성장 효과 불확실, 세계적 추세 아니다”
언론보도와 달리 법인세 인하 효과에 대한 확실한 결론은 없다. 경제성장에 영향을 줬다는 연구와 주지 않았다는 연구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2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효과가 확실하지 않다. 아직도 많은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며 “지난 8월에 나온 유럽경제리뷰를 보면 (법인세 인하) 효과가 있다고 얘기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진실에 가까운 내용”이라고 말했다.
'유럽경제리뷰' 8월호에 실린 논문 '법인세 인하가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가?(Do corporate tax cuts boost economic growth?)'를 보면, 기존 논문들이 법인세 인하가 성장을 촉진한다는 쪽으로 편향돼 있으며 개별 사례에서 (법인세 인하가) 일부 긍정 혹은 부정 효과를 낼 수 있지만, 평균적으로는 어느 쪽으로든 효과가 없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하준경 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 (법인세를) 내렸지만 기업의 현금 보유만 늘고 투자 증대나 고용으로 연결되었는지 또 낙수효과가 실제로 발생했는지는 불확실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도 법인세 인하에 대해 비판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지난 6월 이준구 교수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법인세율 인하가 무슨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가'라는 글에서 “법인세율 인하가 투자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궁금하기만 하다”며 “재정학 전공자인 나도 모르는 어떤 이론적 근거를 갖고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고 했다.
이준구 교수는 “법인세율 인하가 투자의 획기적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은 신자유주의자들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다”며 “법인세율의 인하가 투자의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는 연구 결과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투자세액공제제도라든가 가속상각제도 같은 적극적인 투자유인의 제공도 이렇다 할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법인세 인하가 '세계적 추세'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하준경 교수는 “법인세 인하가 세계적 추세였던 것은 트럼프 때까지의 이야기”라며 “인플레이션, 에너지문제, 기후위기 등 지출할 곳이 많아지면서 주요국들은 지출을 줄이기보다 증세로 대응하는 편이다. 횡재세를 도입하는 나라도 생겼고 미국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서 법인세를 더 걷겠다, 부자증세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고 했다.
이어 “영국 트러스 전 총리도 법인세 감세를 추진하다가 역풍을 맞고 물러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인세 인하가 세계적 추세라고 할 수는 없다. 언론이 좀 더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OECD 세율을 단순비교하는 것의 위험성은 평소 자주 지적되는 언론의 문제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6월 미디어오늘 칼럼에서 “명목세율은 법형식적으로 규정된 세율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업이 실제 내는 세금은 명목세율이 아니다. 각종 공제, 비과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합뉴스는 지난 17일 팩트체크 코너에서 실효세율을 따져봤을 때 “한국은 대체로 중간보다 조금 아래쪽에 들어가는 셈”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법인세 인하가 가져올 세수 감소 문제는 당장 닥칠 수 있는 위험이다. 단기적으로 재정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껏 경기침체 상황에서의 '재정건전성'을 강조해왔다. 국회예산정책처도 11월 보고서에서 “법인세 세수 의존도가 높은 만큼 단기적으로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하 교수는 “(법인세 인하의) 경제성장 효과는 불확실한 것에 비해 세수감소는 확실하다. (법인세 인하로) 기업배당이 늘면 대주주가 많이 가져가니까 소득격차도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법인세 관련 최근의 보도들을 보면 이례적으로 한쪽으로 쏠린 느낌을 받는다. 분석기사도 더 많아져야 하고 언론이 비용편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념보다는 실용, 객관성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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