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향한 관심서 시작된 생각 똬리… 사회 문제의식 ‘노크’

현대문학상 소설집 주목받는 작품들
단편소설 수상작 안보윤 ‘어떤 진심’
사이비 종교 갇힌 개인들의 이야기
안 작가 “닫힌 문 안에 남겨진 진심
가엾고 쓸쓸해 견디기가 어려웠다”
돌봄가정 현실 담은 박지영의 ‘쿠쿠…’
사후 삶 향한 의지 그린 위수정 ‘몸…’
윤보인 ‘압구정 현대를…’ 등 9편 수록

학대받는 아동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학대받지 않는 삶’이란 무엇인지를. ‘진짜 일상’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자신들이 학대받고 있는지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대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는 필요성 역시도.

아동학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작품 활동을 해온 안보윤 소설가가 늘 마음 쓰이던 이야기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이런 생각은 파생되고 연결되면서 어떤 생각으로 똬리를 틀게 되는데.

만약 자신의 삶이 잘못됐다고 깨달았을 때, 다른 삶을 선택하는 게 쉽게 가능할까. 만약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만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특히 기형적으로 작동되는 공동체 안에 있다면…. 혹시 다른 세계의 선택이 애초에 불가능한 건 아닐까.

사이비 종교 공동체에 의해 진심을 기만당한 이들을 정면으로 다룬, 2023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어떤 진심’은 이렇게 태어났다.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안보윤의 ‘어떤 진심’과 후보작들을 담은 ‘2023년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현대문학·사진)이 최근 출간됐다. 현대문학상은 한국 단편소설의 최근 지형과 경향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학팬들의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이번 현대문학상은 월간지 기준으로 2021년 12월호~2022년 11월호, 계간지 기준으론 2021년 겨울호~2022년 가을호의 각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예심과 본심 두 차례 심사로 선정됐다. 수상 후보작에는 문진영의 ‘내 할머니의 모든 것’, 박지영의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 이서수의 ‘엉킨 소매’, 위수정의 ‘몸과 빛’, 윤보인의 ‘압구정 현대를 사지 못해서’, 이승은의 ‘우린 정말 몰랐어요‘, 이장욱의 ‘요루’ 등 7편이 선정됐다.

수상작인 ‘어떤 진심’은 이십 대의 유란이 과외를 미끼로 외로운 처지의 고교생 이서에게 접근해 친교를 쌓은 뒤 ‘믿음샘교회’로 이끄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유란이 전도하려는 교회 신도들은 교회 건물에서 합숙을 하고, 노동을 하면서, 끊임없이 주변에 믿음을 전파하는 삶을 산다. 하지만 신념에 이끌린 삶은 어느 순간 붕괴하고, 이성적 사고마저 마비되면서, 경제적 착취마저 교묘히 진행된다. 은폐된 진실을 조금씩 헤치고 앞으로 나가다 보면, 뭔가 잘못됐지만 다른 삶을 경험해본 적이 없고 달리 방법을 알지 못하기에 계속 견뎌내야 하는 이들의 어떤 아프고 슬픈 내면에 당도하게 되는데. 아홉 살 때 엄마를 따라서 교회에 들어간 뒤 전도 에이스 역할을 하는 유란과, 가족의 영혼을 흉보는 일을 계기로 유란과 가까워진 민주와, 무료 과외를 매개로 유란에 의존적 관계를 맺게 되는 이서와….

“어떤 진심은 진심이라서 한심했다. 어떤 진심은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 속 복숭아처럼 쇠 냄새를 풍기며 삭았다. 어떤 진심은 추해졌고 어떤 진심은 다만 견뎌내는 삶으로 전락했다…. 이젠 누구도 진심이 아닌 곳에 왜 열매들만이, 오직 열매들만이 진심인 채로 남아 있을까.”(23-34쪽)

서희원 평론가는 작품에 대해 “마치 따뜻한 손길로 이루만지며 예금통장의 비밀번호를 다정하게 묻는, 돈에 대한 어떤 진심을 가진 납치범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소름 끼쳤다”고 평했고, 정소현 작가 역시 “진심을 기만당한 자가 타인을 기만하기 위해 자기기만을 하는 이 이야기에 빠져들지 않을 재간이 내겐 없었다”고 토로했다.

안보윤 작가

안 작가는 수상 소감에서 “부서진 말과 부서진 계절, 부서진 마음 같은 것들을 떠올리다 보면 외로워진다. 그것들은 대개 가닿은 곳 없이 부서진 채로 남아 있기 때문”이라며 “닫힌 문 안에 남겨진 진심이 가엾고 쓸쓸해 견디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선 “유란 같은 이는 너무 어릴 때부터 교회 공동체에서 자라면서 세뇌돼 뭔가 잘못됐거나 혹은 다른 이들의 진심을 의심하면서도, 다른 삶을 해본 경험이 없고 달리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존의 삶을 그대로 이어가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박지영의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는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돌보게 되는 막내아들의 소동을 경쾌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린 블랙코미디다. 팬데믹으로 노인돌봄 시스템이 붕괴하면서 가족이 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되자, 막내 선동이 선의와 호구지책 차원에서 자청한다. 간병비용을 둘러싼 가족 간의 논의를 비롯해 처음 가족 내의 서사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선동이 치매 간병을 소재로 유튜브를 하게 되면서 점점 사회적으로 확장해 간다.

사진 왼쪽부터 문진영, 박지영, 이서수, 위수정 작가. 출판사 제공

비록 수상작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소설은 매력과 강점이 많다. 착하면서도 위선적이고 웃기면서도 세태를 꼬집는 매력적인 인물 선동과, 작품 곳곳에서 출몰하는 유머와, 염병이라는 말이 착 달라붙은 문장까지.

“언젠가 강만석이 했던 말, 염병, 너무 애쓰지 마라, 그것은 강만석이 착한 아이 강선동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그 말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기 위해서는 그저 계속 애쓰는 수밖에 없었다, 염병.”(123쪽)

위수정의 ‘몸과 빛’은 여성 주희가 트럭에 치여 숨진 뒤 얼마간 사람들 사이를 맴도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배회하거나 또 다른 영혼 문수와 대화하는 모습 등 사후 모습을 묘사한 장면은 인상적이다.

소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트럭 사고를 당한 주희가, 죽은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을 자각하면서 시작한다. 영혼 또는 귀신 같은 존재가 된 그녀는 트럭 운전수의 스산한 삶을 따라가면서 경찰서와 장례식장 등을 거쳐 가족과 연인으로 닿아간다. 죽음을 분명히 자각하고 육체에 이어 영혼마저 사라져 갈 때, 삶에의 의지는 더욱 절절해지는데.

“나는 사라지고 있었다. 해가 떠올라 눈이 부신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만지고 싶었다. 몸을 섞고 피부와 체온을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몸이 없었다. 나는 문수를 이해했다. 죽음을 이해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발음할 단어를 이해했다. 잊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183쪽)

사진 왼쪽부터 윤보인, 이승은, 이장욱 작가. 출판사 제공

윤보인의 ‘압구정 현대를 사지 못해서’는 기존 소설과 달리 여러 채의 부동산을 보유한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워 대한민국 부동산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이나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을 비롯해 그동안 많은 작품이 주로 무주택자나 세입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과 크게 대비된다.

고아원에서 자란 뒤 갖은 고생 끝에 갭투자로 부를 일군 주인공 ‘나’ 앞에 오래전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미국으로 떠났던 옛사랑 은주의 아들이 나타난다. 나는 이혼 뒤 다시 국내로 돌아온 옛사랑 은주의 마지막을 배웅한 뒤 은주의 아들에게 갭투자로 거제의 아파트를 사주려 한다. 이를 통해 부동산을 통해 분출하는 한국인의 욕망과 정념을 그려낸다.

“오랫동안 계층을 뛰어넘으려고 했고, 무주택자로 전전하며 극빈에 극빈을 거듭했고, 그 세월 속에서 악만 남았지만, 빈자라는 이유만으로 조롱과 멸시를 당했지만, 그때마다 씨발, 다 죽여, 라고 소리쳤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 없고, 아니 마음의 여유가 조금은 생겼지만, 누군가에게 또다시 질시를 받는다 해도, 멈추지 않고 살아가는 일만 남았다고.”(216쪽)

소설집에는 이밖에도 도시에서 미니멀한 삶을 살아가면서 고독을 즐기는 현대적 외할머니를 살려낸 문진영의 ‘내 할머니의 모든 것’, 임신 중지를 소재로 여성들 간의 연대를 그린 이서수의 ‘엉킨 소매’, 인간의 이기심이 어떻게 개인에게 돌아오는지 담은 이승은의 ‘우린 정말 몰랐어요’, 밤의 착란을 다룬 이장욱의 ‘요루’ 등도 담겨 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