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오피니언리더] 뤼터 네덜란드 총리, 과거 노예제 첫 공식사과

사진=EPA 연합뉴스

마르크 뤼터(사진) 네덜란드 총리가 지난 17∼19세기 네달란드가 자행한 노예무역에 대해 정부를 대표해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습니다. 사과는 의미 있는 행동이나 그는 정부 차원의 배상은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1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뤼터 총리는 이날 헤이그에 있는 국가기록관에서 한 연설에서 "지난 수 세기 동안 네덜란드 국가와 그 지도부들은 노예제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로부터 이득을 봤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네덜란드 정부는 당시 노예가 된 이들과 그 후손들에게 가해진 엄청난 고통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사과했습니다. 그는 "노예제가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가장 명확한 개념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날 사과는 네덜란드가 과거 250년간의 경제·문화적 '황금시대'를 누릴 당시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자 60만명을 노예로 착취한 데 대한 사과입니다. 이들의 후손에 대한 인종차별은 현재까지도 네덜란드에서 논란이 되는 현안 중 하나입니다.

이날 뤼터 총리도 "당시 남녀는 물론 어린이 60만명가량이 소처럼 아프리카 등에서 네덜란드령이던 남미의 수리남 등으로 강제 이송됐다"며 부끄러운 역사라고 시인했습니다.

이미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위트레흐트, 헤이그 시장 및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 등이 개별적인 사과를 한 적은 있지만, 정부 차원의 공식 입장 표명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또한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는 유럽권 국가에서 네덜란드가 최초입니다. 이날 사과는 지난 2020년 설치된 국가자문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것입니다.

이날 연설 현장에는 노예제 피해자 후손들도 초청됐으며, 20분간 진행된 총리 연설은 현지 방송을 통해 생중계됐습니다. 다만 뤼터 총리는 노예제 피해자들의 후손에 대한 정부 차원의 배상금 지급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대신 노예제 유산 청산 및 인식 전환을 위한 교육기금 2억유로(약 2700억원)를 편성할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에 대해 옛 식민국가들과 노예 후손 단체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남미 수리남 국가배상위원회 측은 "이날 사과는 과거사 해결을 위한 진전"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책임과 의무에 관한 내용은 연설에서 쏙 빠졌다"고 비판했습니다. 총리가 아닌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이 직접 사과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네덜란드는 남미 카리브해 지역, 인도네시아 등 해외 식민지에 만들어 놓은 대규모 상업 농장 '플랜테이션'의 노동력 확충을 위해 노예제를 운영했습니다. 납치된 노예들을 착취해 네덜란드는 엄청난 부(富)를 일궜습니다.

박영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