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인플레 ‘유니콘’ 찾기
[한겨레 프리즘]
[한겨레 프리즘] 전슬기 | 경제팀장
얼마 전 저녁 자리에서는 기대 인플레이션과 임금-물가 소용돌이 등이 화두가 됐다. 수십년 만에 찾아온 고물가 시대에 높은 물가가 물가를 더 자극해 소용돌이처럼 계속 올라가는 ‘2차 상승효과’를 두고 여러 궁금증이 오갔다. 나는 2차 상승효과가 이론상으론 이해가 되지만, 실제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기대 인플레이션’이 ‘유니콘’처럼 느껴진다는 고민거리도 꺼내놨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물가 심리는 우리 삶을 바꾸고 있을까.
올해 20여년 만에 6.3%까지 치솟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내년 상반기에도 4.2%로 예상돼 높은 수준을 이어갈 전망이다. 물가가 높아지면 2차 상승효과가 중요해진다. 일반인들 사이에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 인플레이션 심리가 형성되면, 이 심리를 바탕으로 생산자들이 늘어난 생산비용을 더 수월하게 소비자 가격에 전가할 수 있어서다. 또 물가 상승으로 생활비가 부족해진 소비자들이 임금 인상 요구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기업들은 인건비 부담을 다시 소비자 가격에 전가하는 것도 물가 2차 상승으로 이어지는 주된 경로다.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상을 통해 기대 인플레이션을 관리하는 이유다.
그런데 최근 임금발 인플레이션이 실제 현실에서는 뚜렷하지 않거나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에서만 발생하고 있다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0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임금-물가 악순환이 제한적일 가능성을 언급했다.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올해 1~9월 근로자 1인당 월평균 명목 임금총액은 상용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체에서 전년 대비 7.4%(41만1천원) 늘었지만, 300인 미만에서는 4.4%(14만4천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물가 상승분을 제거한 월평균 실질임금 또한 임시일용직의 경우 올해 4~9월 1년 전보다 2.3~3.5% 줄어 상용직(-0.1~-2.1%)보다 감소 폭이 훨씬 컸다. 물가가 뛴 만큼 임금이 오르지 못한 현상이 저임금·불안정한 일자리일수록 뚜렷했다.
이는 임금발 인플레이션이 실제 구현될 때는 여러 변수와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물가가 높아졌으니 임금을 올려달라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관철될지 여부는 노동자들의 협상력, 노동시장 여건 등에도 좌우된다. 한국은행은 지난 5일 기업 규모가 커서 노동자들의 임금 협상력이 강할수록 기대 인플레이션이 급여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분석했다. 올해 2분기 300인 미만 기업의 상용직 정액급여 증가율에 대한 기대 인플레이션의 기여도는 1.34%포인트에 그쳤지만, 300인 이상에서는 2.58%포인트에 이르렀다. 또 임금발 인플레이션 논쟁은 한국보다 구인난이 심한 미국에서 더 거세기도 하다.
만약 고물가 시대에 상위계층 임금만 오른다면, 소득이 뒷걸음친 하위계층은 고물가의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중앙은행이 기대 인플레이션을 관리하기 위해 가파르게 올리는 금리 역시 취약층의 고통을 가중한다.
따라서 내년엔 기대 인플레이션과 임금발 인플레이션에 관한 좀 더 다양한 연구가 이뤄졌으면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초가 되는 기대 인플레이션의 국내 경로부터 분석해보자는 제안도 한다. 한국은 자영업자 비중이 높아 기대 인플레이션 경로가 선진국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기대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은 경제 주체들의 소비 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실제 구현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이들도 있다. 이렇듯 중요한 기대 인플레이션이건만 한은의 간단한 소비자 동향 설문조사에 기반을 둔 단기(1년) 기대 인플레이션이 유일한 공식 지표인 점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내년엔 물가 영향을 계층별로 쪼개볼 수 있는 통계도 기대해 본다. 현재는 계층별로 다른 지출구조를 반영한 소비자물가가 따로 공표되지 않고, 물가 상승분을 제거한 실질소득을 분석할 때도 계층별 다른 물가를 반영할 수 없다. 매사 그렇듯, 정확한 진단 속에서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 않겠나.
sg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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