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브릿지> 중환자실 간호사가 지켜본 '마지막 순간'

전하연 작가 2022. 12. 2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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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뉴스]

서현아 앵커 

행복하게 잘살자는 '웰빙'에 이어서 요즘에는 품위 있는 죽음을 준비하자는 '웰다잉'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평화롭게 임종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20년 가까이 중환자실에서 다양한 삶의 끝자락을 지켜 본 간호사와 함께, 이 문제 고민해 보겠습니다.


김형숙 순천향대 간호학과 교수 자리했습니다.


김형숙 교수 / 순천향대 간호학과 

안녕하세요.


서현아 앵커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로 오랜 시간 근무하셨어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환자들을 많이 지켜보셨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김형숙 교수 / 순천향대 간호학과 

아무래도 제대로 보내드리지 못한 분분들이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죽음이 너무나 분명하게 가까이 와 있는데도 마치 인공호흡기를 하면 회복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기도 삽관을 해서 아이들에게 유언 한마디 못하고 떠난 분이 계셨고, 또 입원한 후에 임종할 때까지 한 번도 엄마 품에 제대로 안겨주지 못한 아이가 있었고요. 


가족을 설득하지 못해서 가망이 없는 줄 알면서 마지막까지 심폐소생술을 했던 기억도 있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습니다. 


어떤 논문에서 간호사가 그렇게 토로했더라고요, 좋아져서 나간 분들의 얼굴은 기억도 안 나는데 고통스럽게 보내드리는 환자분들의 죽음은 온몸에 와서 꽉 막히는 것 같다고. 


제 마음도 그런 것 같습니다.


서현아 앵커 

네, 몸에 와서 확 박혔다는 말이 참 아프게 들립니다. 


교수님께서는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이라는 책도 내셨어요, 어떤 내용입니까?


김형숙 교수 / 순천향대 간호학과 

중환자실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면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분들이 마지막까지 연명 의료를 받다 사망하는 걸 많이 보게 됩니다. 


저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하고 싶은 그런 고통스러운 처치들이었는데요. 


그런데도 현장에서는 죽음의 가능성에 대해서 말하기를 꺼려하는 분위기였고, 모든 걸 의료진과 가족이 대신 결정하는 분위기여서 당사자들은 자신의 죽음이 가까웠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준비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거죠. 


그래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고통스러웠고 저희가 너무 비겁하고 폭력적인 죽음의 공범이거나 가해자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절박한 마음으로 이게 진짜 맞는 일인지 다른 가능성이 없는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어서 그런 사연들을 적은 책입니다.


서현아 앵커 

준비 없는 죽음이라는 게 생각만 해도 참 마음이 아픈 일인데 병원에서 죽음을 맞으면 사실 스스로 마지막을 준비하거나 가족의 돌봄 아래 삶을 마치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책을 통해서 어떤 걸 전하고 싶었나요?


김형숙 교수 / 순천향대 간호학과 

네, 저는 저희가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생각할 때는 숨만 쉬어도 좋으니 옆에 머물러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이성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하는 사람 혹은 타인의 죽음이 아니라 내 죽음이라면 나라도 그렇게 고립된 상황에서 내 죽음이 다가온 지도 모르고 준비 없이 그렇게 죽어도 괜찮겠는가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우리 자신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삶의 마지막 혹은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자 그렇게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서현아 앵커 

그러면 혹시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한 구절 좀 읽어주실 수 있을까요?


김형숙 교수 / 순천향대 간호학과 

중환자실보다는 제가 서론 부분에서 다룬 이야기인데요. 


"내가 무언가를 꿈꾸기 시작한 건 할머니의 부재 할머니의 죽음을 예감하면서부터였다. 그 산마을에서는 어린 아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다음을 준비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 그리 이상스러운 일만도 아니었다. 그곳에서 죽음은 아이들에게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기억할 수도 없는 어린 날부터 우리는 죽음에 익숙했다."


이 구절이 제가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죽음 이야기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에서 마주하는 죽음은 무섭고 어두운 이야기가 아니라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거요.


서현아 앵커 

네, 죽음이 오히려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구절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어렸을 때 고향마을에서 본 죽음은 조금 달랐다죠, 설명을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김형숙 교수 / 순천향대 간호학과 

제가 사는 곳은 아주 산골이었고 옛날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삶의 마지막을 집에서 보내다가 집에서 돌아가셨고 장례도 마을에서 공동으로 치렀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죽음이 그 사람이나 가족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고 마을 전체에서 축제처럼 시끌벅적하게 장례를 치르면서 그분과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분하고 맺은 관계만큼 마음 준비를 하고 이별할 시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속에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에 대해서 배우고 성찰할 기회도 있었고요. 


그런 개방성이 입원하러 가면서 주변과 단절되고 어느 날 갑자기 부고가 들려오고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오늘의 죽음과 많이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서현아 앵커 

만약에 병원에서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중환자실에서 잘 이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김형숙 교수 / 순천향대 간호학과 

임종을 앞둔 이가 어떤 상태인가 또 가족들이 얼마나 준비돼 있는가 등에 따라서 굉장히 상황은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료진들과 긴밀하게 의사소통을 하면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결정적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 그러자면 연명으로에 대해서 의사 결정을 하고 상황이 허락한다면 일반 병동으로 옮겨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서현아 앵커 

네, 어떤 존엄한 죽음을 주연하기 위한 인프라도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서 '사전의료지시서'라는 제도도 소개를 해 주셨는데요. 


이게 어떤 제도일까요?


김형숙 교수 / 순천향대 간호학과 

네, 이것은 나 자신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가정해서 평소에 연명과 호스피스에 관한 자신의 의향을 밝혀두는 문서를 말합니다. 


책이 처음 출간됐을 2012년 당시에는 '사전의료지시서'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2016년에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습니다. 


그 법률에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 이름으로 제도화했습니다.


19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다 작성할 수 있고요. 


작성을 하려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기관으로 인정받고 등록돼 있는 기관에 직접 방문해서 작성해야 합니다.


서현아 앵커 

이런 제도가 있었군요. 그런데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한 사람은 약 142만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형숙 교수 / 순천향대 간호학과 

저는 저희가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죽음 그 자체, 즉, 숨이 얻는 순간보다는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 더 중요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죽음 마지막 순간까지 각자가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다가 가장 자기 다운 모습으로 죽는 것, 그런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그게 가능하려면 당사자와 가족들의 준비만으로는 어렵고 전문가들의 도움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고요.


또 사회적으로 말기 환자분들이 가정에서 지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도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좋은 죽음을 위해서는 사회적 차원의 준비가 필요하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현아 앵커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까요?


김형숙 교수 / 순천향대 간호학과 

저는 죽음이나 삶의 마지막 시기의 모습이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의 삶에도 굉장히 큰 흔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력도 굉장히 오래 지속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의료 문제로 치부하고 병원에 맡기는 것으로는 생의 말기와 죽음이 주는 다양한 기회를 잡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병동에서 죽음을 맞는 분들을 위해서 임종실이 마련된다거나 호스피스완화의료병상이 좀 더 마련된다거나 하는 이런 준비도 필요할 것 같고요. 


그러자면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가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어느 지역에 살고 있던 간에 모든 사람이 생애 말기에 필요한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가정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방송을 듣는 모든 분들이 그런 노력에 함께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서현아 앵커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다가 가장 자기 답게 삶을 마감하는 과정, 오늘 그 죽음의 과정을 얘기하면서 오히려 삶의 의미도 함께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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