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파편' 이어붙여…완전한 화합을 빚다

김보라 2022. 12. 2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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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작가 '번역된 도자기'
더페이지갤러리 전시
2017 베네치아비엔날레 화제작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 전시
전세계 돌며 깨진 도자기 수집
빈 틈 금박으로 붙여 재탄생
세계적 미술관들 앞다퉈 소장
"흠 있어 내던져진 도자기
깨진 파편들이 예뻐 보였다"
현대미술가 이수경 작가가 서울 성수동 더페이지갤러리에서 대규모 개인전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 개막을 앞두고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더페이지갤러리 제공


일본 전통예술 기법 중에 ‘긴쓰기(金ぎ)’라는 게 있다. ‘금으로 수리한다’는 뜻이다. 긴쓰기는 깨진 상태의 도자기를 송진이나 금으로 보수해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하는 방식이다. 깨지고 상처받은 흔적을 메움으로써 불완전한 삶의 빈자리를 채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긴쓰기를 뛰어넘어 깨진 도자기를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세계에서 주목받는 한국 작가가 있다. 2001년부터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로 세계적인 미술관과 비엔날레에서 ‘러브콜’을 받아온 이수경 작가(59)다.

그는 도공의 가마에서 주워온 도자기 파편을 에폭시로 채우고 금박으로 덮어 조각으로 만든다. 고려 불상에 사용하는 금박이다. ‘번역된 도자기’란 이름은 이 작가가 오래전 이탈리아 도공들에게 백자에 관한 한국 시를 번역해 들려준 뒤 조선백자를 재현해달라고 요청한 데서 시작됐다.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

이 작가가 2017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내놓아 화제가 됐던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이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지난 15일 서울 성수동 더페이지갤러리에서 개막한 개인전에서다. 전시명이기도 한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은 높이가 5m에 달한다. 비엔날레 이후 작가가 개인 소장하다가 내년 미국의 한 미술관으로 옮겨지기 전 국내 미술 애호가들에게 선보인 것. 한국 땅에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이 작가는 “긴쓰기는 도자기를 단순히 수리하고 고치는 방식인 반면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는 각각의 문화와 역사가 깃든 도자기 조각들을 퍼즐 붙이듯 재창조하는 것”이라며 “깨진 걸 이어 붙이는 것은 서로 다른 것들을 충돌시킴으로써 그 안에서 일어나는 화합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에 쓰인 도자기들은 경기 여주·이천, 중국 단둥 등지의 도자기 공방에서 1년여에 걸쳐 수집한 ‘쓰레기’들이다.

생활 도자기부터 아름다운 문양이 남아 있는 청자, 백자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얼핏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깨진 틈을 메우고 있는 금박은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문명과 문명’을 섬세하게 잇는다.

그가 도자기 파편에 집중하게 된 계기는 뭘까.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이 작가는 1990년대 초반부터 설치 미술, 페인팅, 드로잉, 조각, 퍼포먼스, 영상 등 여러 분야의 작품을 내놨다. 도자기에 빠진 건 2001년 이탈리아 알비솔라 ‘세라믹 비엔날레’에 참여했을 때부터였다.

“백자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김상옥 시인의 1947년작 ‘백자부’ 시를 번역해 갖고 갔어요. 이탈리아 현지 도공들에게 번역된 시를 들려준 뒤 상상 속의 조선 백자를 재현해달라고 부탁했죠.”

그렇게 탄생한 ‘번역된 도자기 알비솔라’ 12점은 유럽 현지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시아의 기술과 스타일이 유럽 도자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연구와 토론이 이어졌다. 작가는 이 작업의 연장선으로 한국에 돌아와 도예공방을 찾았다.

“도자장들은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도자기는 여지없이 바닥에 던지고 망치로 두드리더군요. 그렇게 깨진 파편들이 제 눈에는 예쁘게만 보였어요. 이걸 작품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깨진 도자기 조각을 작업실에 가져와 이리저리 이어 붙이다 ‘탁’ 붙는 순간을 맞이했다. 그 순간의 작업이 지금까지 이어졌고, 이수경을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르게 했다. 미국 시카고미술관, 보스턴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영국 대영박물관, 일본 후쿠오카아시아박물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깨진 도자기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예술세계는 훨씬 광범위하다. 최면을 통해 전생 체험을 한 뒤 그린 ‘전생 역행 그림’(2021),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지만 결코 신을 수 없는 하이힐을 다룬 ‘하이힐의 죽음’(1993), 보석이 박힌 공주 왕관 안에 풍선껌을 붙여 넣은 ‘백설공주 뒤집기’(1995), 퍼포먼스 작품 ‘미니마우스 사진’(1998) 등 매체와 주제가 그야말로 다채롭다. 이번 전시에는 ‘번역된 도자기’ 연작 27점을 포함해 신작 페인팅 ‘오 장미여!’ 13점 등 40점이 걸렸다. 전시를 위해 제작한 미디어아트 2점도 함께 공개됐다. 내년 2월 10일까지.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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