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美는 ‘노조 회계보고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어… 입법조사처 “조합원 접근성 높여야”
조합원 뿐 아니라 누구라도 회계보고서 열람 가능
英, 1980년대 불법파업 일어나자 회계조사 가능케 해
정부, 조사관 임명해 노조 재정 조사하게 할 수도
한국은 조합원이 노조 회계감사 결과 ‘요청해야’ 열람
미국은 노동조합이 연차회계보고서를 노동부 장관에게 반드시 제출해야 하고, 제출된 보고서는 누구라도 열람하고 사본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이 같은 내용을 근거로 “노조 재정 회계 관련 보고서나 자료 등에 대해 일반 조합원들의 접근성을 제고할 필요는 없는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부·여당이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견해여서 주목된다.
◇美, 노조 임직원 급여도 공개해야… 조합원, 회계장부와 계좌도 열람 가능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20일 입법조사처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노사 보고 및 공개절차법’(일명 ‘랜드럼-그리핀법’)은 노조의 보고 의무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노조에 대한 회계감사가 있고, 노조는 회계 내용을 보고하는 연차회계보고서를 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연차회계보고서에는 노조의 자산과 부채, 수령금과 그 출처, 총액 1만달러(약 1288만원) 이상을 수령한 조합 임원과 노조 직원에게 지급된 봉급과 기타 지불금 등의 정보가 담겨야 한다. 임원이나 조합 직원, 조합원에 대한 총액 250달러(약 32만원) 이상의 직·간접적인 대부금 등의 정보도 포함돼야 한다.
또 노조는 연차회계보고서를 모든 조합원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보고서 확인에 필요한 회계 장부와 기록, 계좌를 모든 조합원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조합원이 열람을 강제하는 소송을 관할 법원에 제기할 수 있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의 노조 임원과 직원은 일부 재산을 공개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다. 노사 보고 및 공개절차법에 따르면 노조 임원과 직원은 해당 노조가 속한 기업(사용자)이나 노조가 거래하는 업체와 관련해 보유하는 주식·채권을 노동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들로부터 받은 수입이나 금전적 가치를 갖는 일체의 이득 역시 보고 대상이다.
노조가 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한 연차회계보고서와 문서의 내용은 공개되며, 누구라도 열람하고 사본을 얻을 수 있다. 노조는 보고서의 진위를 검증할 수 있도록 기록과 자료를 제출 후 5년 이상 보관해야 한다.
노사 보고 및 공개절차법은 1959년 제정됐다. 입법조사처는 “(법안) 제정 시기 노사 환경은 거대 노조 활동이 왕성해지면서 부작용도 발생해 노조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규제를 도입하는 시기였다”며 “이 법은 노조의 민주적 운영에 필요한 원칙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英, 노조 간부 급여도 연차보고서에 포함…공인회계사가 감사
영국은 노사자치주의에 따라 정부가 노조 재정에 적극적인 접근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거릿 대처 총리가 집권한 1980년대를 전후해 노조가 전국적으로 불법 파업을 일으켰다. 입법조사처는 “국가가 개입해서라도 노조 내부 운영을 민주주의 원칙 보장으로 전환하기 위해 적극적인 정보 접근과 회계 관련 조사가 가능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노조법에 따르면 노조는 노조 명부를 관리하는 인증관(통상 산업부 장관)에게 연차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연차보고서에는 노조의 재무상태표(대차대조표)와 현금흐름표, 노조 간부에게 제공된 급여와 이익의 세부 내역이 포함되어야 한다. 공인회계사가 작성한 감사보고서도 포함되어야 한다. 또 인증관은 노조의 재정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조사관을 임명해 조사하게 할 수도 있다.
노조는 조합원에게 연차보고서와 관련해 설명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회계 관련 위법행위가 일어났는지 조합원이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회계 정보 관련 의무 위반으로 유죄 선고를 받으면 노조 간부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규정도 있다.
◇日, 공인회계사가 노조 회계 감사…독립성 갖도록 조합원이 선출
일본은 노동조합법에서 노조 회계감사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노조는 모든 재원과 용도, 주요 기부자의 성명과 현재의 경리 상황을 나타내는 회계보고를 적어도 매년 1회 조합원에게 공표해야 한다. 또 조합원이 위촉한 ‘직업적 자격이 있는 회계감사인’이 확인해 주는 증명서를 첨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직업적 자격이 있는 회계감사인은 구체적으로 공인회계사법의 해석 상 공인회계사, 감사법인, 신탁회사를 가리킨다. 영국처럼 회계사가 노조의 회계결산이 투명하게 작성되었는지 검증하는 절차를 둔 셈이다. 또 노조법은 노조 임원의 마음대로 회계감사를 위촉하지 못하도록 일반 조합원이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 노동법, 회계감사 규정은 있지만 주요국보다 미비
한국도 노동조합법에 노조의 회계 감사와 관련한 내용이 있다. “노동조합의 대표자는 회계감사원으로 하여금 6월에 1회 이상 당해 노동조합의 모든 재원 및 용도, 주요한 기부자의 성명, 현재의 경리 상황 등에 대한 회계감사를 실시하게 하고 그 내용과 감사결과를 전체 조합원에게 공개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회계감사가 공인회계사와 같은 자격을 갖춘 외부 인사가 맡아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또 노조법은 “노조의 대표자는 회계연도마다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공표해야 하며, 조합원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이를 열람하게 해야 한다”고 돼 있다. 미국과 영국, 일본처럼 조합원에게 공표하는 것이 노조에게 의무로 부과돼 있지 않다.
이와 관련해 입법조사처는 “대기업과 일정 규모 이상의 공기업 노조는 내부 또는 외부 회계감사를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기능을 할 수 있는 회계사 자격증이 있는 감사 체계로 의무화할 필요는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또 “현행 제도에 없는 노조 재정 회계 관련 보고서나 자료 등에 대해 일반 조합원들의 접근성을 제고할 필요는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며 “(회계 정보) 열람 청구 가능 내용을 법령으로 명확히 열거해 정보 접근권을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하태경 의원은 “노조는 자치 조직이라는 이유로 노조 회계가 성역화되어 왔고, 현행법은 노조의 깜깜이 회계를 부추겨 왔다”며 “현행 노조 회계제도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하 의원은 공인회계사가 노조 회계감사를 맡도록 하고, 대기업·공기업 등 대규모 노조는 행정관청에 회계 자료를 매년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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