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수개월 걸리고 단속인력 부족···불법급여 3조 중 환수 7%뿐

임지훈 기자 2022. 12. 2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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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건보재정 대수술만이 살길]
<중> 관리 부실에 줄줄 새는 건보료
사무장병원 1곳서 6년간 86억 편취
허위청구 적발액 2021년 1768억
행정처분 들어가면 폐업하고 잠적
뒷북단속·솜방망이 처벌이 먹튀 양산
시스템·인력 해결 안되면 더 늘 것
직원에 조사권한 '특사경' 도입하고
징벌적 부당이득 환수 등 제재 강화
사진 제공=이미지 투데이
[서울경제]

A 의원은 환자가 병원에 오지도 않았는데 진료를 한 것처럼 꾸며 진찰료·주사료 등 급여 비용으로 5억 9548만 원을 36개월간 거짓 청구했다. B 병원 역시 3년간 실제로는 하지도 않은 방사선 영상 진단, 구강 내 소염술, 진찰료 등의 명목으로 6768만 원을 챙겼다. C 씨는 의사 면허는 있지만 진료를 하지는 못하는 88세 D 씨를 요양병원 대표로 내세웠다. ‘사무장 병원’인 C 씨의 요양병원은 급여비 6억 4000만 원을 착복하다가 결국 적발됐다. 의료인 자격이 없는 E 씨는 2010년 의료생협을 설립한 뒤 사무장 병원을 운영하며 6년간 86억 6200만 원의 급여비를 타갔다.

의료기관의 건강보험 급여 허위 청구와 불법 개설 의료 기관이 건보 재정을 갉아먹고 있다. 허위 청구는 단순 전산 착오 청구부터 보험사기, 거짓 청구 등 유형이 다양하다. 불법 개설 의료기관은 일명 사무장 병원, 면허 대여(면대) 약국 등이다.

20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22년 10월까지 14년간 ‘사무장 병원’ 등 진료 자격이 없는 불법 개설 의료기관에 지급된 급여비는 총 3조 1731억 원에 달한다. 이 중 환수한 금액은 2154억 7700만 원으로 징수율은 고작 6.79%에 불과하다. 의료법에 따르면 사무장 병원 등은 개설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건보공단에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다. 급여를 청구하다 적발되면 공단은 환수 절차를 밟는다.

정상적인 의료기관에서 새는 건보료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실 등에 따르면 2017년 1358억 원이었던 의료기관 건보 급여 허위 청구 적발액은 2021년 1768억 원으로 30.2% 증가했다. 2018년 1505억 원, 2019년 1637억 원, 2020년 1758억 원을 기록하는 등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처럼 수조 원의 건보 재정이 줄줄 새고 있지만 당국이 조사를 거쳐 공식적으로 확인한 적발액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는 훨씬 많은 급여가 누수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일각에서는 실제 누수액은 수조 원 수준이 아니라 10조 원 이상일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허위·불법 청구를 적발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허위 청구나 불법 청구를 적발해 낼 수 있는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올해 6월 기준 건보공단 약 600명의 인력이 9만 9645개의 의료기관을 살피고 있다. 한 명당 170개에 달하는 의료기관의 허위·불법 청구를 감시해야 하는 셈이다. 실제 건보공단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의료기관지원실 인력은 59명이다. 서울·광주 등 6개 지역 본부의 인력은 각각 20명대 후반에서 30명대 초반 수준이다. 이 밖에 178개 전국 지사마다 1~2명이 관련 업무를 본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소규모 의원만 있다면 170개도 감시할 수 있지만 대형 병원들이 포함돼 있어 현실적으로 정밀하게 걸러내기는 불가능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허위·불법 청구를 찾아내더라도 실제적인 행정력이 미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시스템도 문제로 지적된다. 건보공단 지사에서 의료기관의 문제점을 발견하면 적발 및 환수 업무는 지역 본부로 이관된다. 이후 다시 건보공단 본부의 조사를 거쳐야 하고 그후에도 보건복지부 인력과 함께 행정조사에 돌입해야 한다. 문제점 파악부터 실제 행정력 행사까지 길게는 수개월이 걸리는 형편이다. “몇 단계에 걸친 절차를 마친 후 실제 행정조사를 나가보면 이미 급여를 챙긴 후 폐업한 곳도 적지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허위 청구와 불법 수급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다. 당국은 현재 허위 청구한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부당이득 회수, 최고 1년 이내 업무 정지, 과징금 부과 등의 행정처분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 고발, 명단 공표 등의 추가 제재를 가하지만 ‘일벌백계’를 통한 시장 정화 기능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한 관계자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허위 청구, 불법 수급이 사라지고 있지 않는 것은 제재가 약하기 때문”이라며 “징벌적 부당이득 환수, 면허 취소보다 실효성 있고 강력한 제재 수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적발 인력 확충, 적발 및 환수 결정 시스템 개선, 특별사법경찰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정부는 법적 제재보다 신속하게 진행되는 불법 사례를 적발하려면 특사경 권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임인택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사무장 병원 관리가 어려운 것은 행정처분을 하려고 나가보면 폐업하고 없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관련 업무를 맡는 직원에 특사경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데 논의가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지훈 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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