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적자·고물가 키운 '나쁜 엔저'…日금융정책 10년만에 수정

김규식 특파원(kks1011@mk.co.kr),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2022. 12. 2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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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日銀 총재 예상 깨고 사실상 금리인상
10월 물가 3.6% 40년來 최고
가계·기업 고통 더 커지자
아베노믹스 정책 일부 수정
"출구전략 아냐" 선긋기에도
내년4월 신임총재 부담 덜어줘
초저금리 정책 완화 속도낼듯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20일 도쿄에서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 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통화정책 수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예상을 깨고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 수정에 나섰다. 사실상 장기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는 카드를 꺼내들며 10여 년간 지속돼온 초저금리 정책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시장이 전혀 예상치 못한 시점에 깜짝 발표를 내놓은 표면적인 배경으로는 미국과 일본 금리 차이 확대 등으로 인한 '채권시장의 기능 저하'였다. 하지만 기저에는 물가의 가파른 상승과 무역 적자 확대 등을 유발해온 '나쁜 엔저 효과'에 대한 염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20일 기자회견 서두에서 "시장 기능 개선을 도모할 것"이라며 "금융완화 효과를 더욱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금리 인상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시장이 크게 요동친 것을 의식한 듯 "(금융완화 정책의) 출구전략을 향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양적·질적 완화 재검토는 당분간 생각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큰 틀에서 금융완화 정책 기조를 유지했다는 자평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각국의 금리 인상 행렬 속에서도 초저금리를 유지해온 일본 금융정책의 출구를 향한 첫걸음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일본은행의 깜짝 결정은 주요국 가운데 유일하게 금리를 올리지 않았던 일본의 완화 통화 정책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도 "새 일본은행 총재 아래 정책 정상화를 위한 길을 터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교도통신은 지난 17일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일본 정부가 신임 일본은행 총재가 취임하는 내년 4월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약 10년간 추진해온 대규모 금융완화와 초저금리 정책을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행은 20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시장의 예상대로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했다. 하지만 장기금리의 기준이 되는 10년물 국채 금리는 0%로 유지하되 변동 용인 폭을 기존 '±0.25% 정도'에서 '±0.5% 정도'로 확대해 이날부터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일본은행은 작년 3월 변동 용인 폭을 ±0.2% 정도에서 ±0.25%로 미세하게 높인 바 있다.

일본은행이 장기금리를 억제하는 방식은 지정가격 오퍼레이션이다. 일본은행이 0.5%에 국채를 사들이면, 은행·민간 부문에서는 0.5%보다 높은 금리(싼 가격)로 다른 투자자에게 판매할 이점이 없어지기 때문에 금리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데 이를 지정가격 오퍼레이션이라 부른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을 완화시키기 위해 올 들어 7차례나 기준금리를 올린 데 비해 일본은행은 경기 활성화를 목적으로 대규모 금융완화를 유지해왔다. 이 같은 금융정책의 차이는 미·일의 금리 차이를 넓혔고 이는 엔저(엔화가치 하락)와 채권시장의 기능 저하 등의 부작용을 가져왔다.

실제 일본 10년물 국채의 금리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지정가격 오퍼레이션 등을 하다 보니 시장 왜곡 현상이 벌어졌다. 일본은행의 보유분이 늘어나고 국내외 금리 차가 확대되면서 다른 매수자에게는 매력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국채발행잔액 1006조6139억엔 가운데 처음으로 절반 이상을 일본은행이 보유하게 됐다. 일본은행의 보유비중은 지난 6월 말 49.6%에서 9월 말에는 50.3%로 높아졌다.

일본은행의 금융완화는 과도한 엔저 현상도 불러왔다. 올해 초 달러당 115엔 수준이던 엔화가치는 지난 10월 32년 만에 최저치인 151엔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에 엔저가 더해지면서 '디플레이션'의 대명사로 불렸던 일본에서도 물가상승세가 나타났다.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신선식품 제외, 전년 동기 대비)은 지난 1월 0.6%였으나 4월부터 2%대로 올라섰고 지난 9월에는 3%를 기록했다.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6%로 40년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0월의 경우 도시가스비가 전년 동기 대비 26.8%, 전기료는 20.9% 올랐다.

엔저는 물가 상승뿐 아니라 무역적자 확대 등의 부작용도 낳았다. 지난달 일본의 무역적자는 2조274억엔으로 11월 기준 역대 최대 규모였다. 일본의 한 경제전문가는 "엔저를 멈추려면 일본은행의 정책 변경이 불가피하고 금리 상승을 용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10여 년간 대규모 금융완화를 유지해온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의 임기는 내년 4월 8일까지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내년 4월 이후 금융완화 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어 왔다.

[도쿄/김규식 특파원 서울 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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