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떼이고 이사 못가고…전세 대혼란
못받은 보증금 우선 반환
임차권등기신청 역대 최대
"임대차시장 꼬일대로 꼬여
연착륙 위한 출구대책 필요"
"전세계약이 만료됐는데도 집주인이 세입자를 못 구했다면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요. 집주인 때문에 이사도 못가고 화가 납니다."(세입자 김 모씨)
전세가격이 급락하면서 임대차시장 혼란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세입자는 이사를 해야 하는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집주인은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파산 위기다. 고금리와 입주 물량 증가로 전세 수요와 공급이 꼬이면서 전세가는 계속 떨어지고 전세 물량은 쌓이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다. 보증금을 받아야 하는 세입자,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집주인 모두 '출구'를 못 찾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착륙'을 위한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송파구 한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는 직장인 김 모씨는 최근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했다. 이달에 전세가 만기였는데 집주인은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았다며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했다. 김씨는 "아이 학교 때문에 무조건 이사를 가야 하는데 보증금을 못 받았다. 급한 대로 월세로 옮기고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했다"면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이사를 가서 찜찜하고 화가 난다"고 했다.
김씨처럼 이사를 앞두고 전·월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법원에 달려간 서울지역 세입자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일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11월 서울지역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는 3719건에 달했다. 2017년 1279건이었으나 매년 증가해 2020년 3308건, 지난해 3226건으로 늘더니 올해는 11월까지 누적 3719건으로 증가했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전·월세계약 만료 시점에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때 세입자가 신청하면 법원이 내리는 명령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으려면 전셋집 실거주와 확정일자가 필요하다. 만약 임차인이 이사를 하게 되면 확정일자가 있더라도 실거주가 아니어서 우선 변제권이 사라진다.
그러나 임차권등기명령을 받아 등기가 이뤄지면 세입자가 보증금을 못 받은 채 이사를 한 이후에라도 이를 돌려받을 권리가 유지된다. 이사는 해야 하지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경우 임차권등기명령을 한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증가했다는 뜻이다.
임차권등기명령이 완료된 후 임차인이 집을 임대인에게 인도한 뒤에도 전세금 반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전세금반환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임대인을 상대로 임차인이 제기하는 소송이다. 임차인은 전세금 반환이 이뤄질 때까지의 지연 이자도 받을 수 있다.
보증금이 없는 임대인들은 비상이다.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임차권이 등기되면 더욱더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진다. 임차권이 등기된 집에 선뜻 들어오려는 세입자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세금반환소송까지 걸리면 매달 이자를 세입자에게 내야 한다. 세입자는 못 구하고 이자 부담은 커져서 '파산'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전세시장 위축은 실수요자들의 거주지 이동을 막고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등 서민 경제를 파탄으로 내몰 수 있으므로 정부가 전세시장 안정화를 위해 '출구 전략'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전세보증금반환대출 조건이 까다로운데, 일시적으로 조건을 완화해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받을 수 있고 집주인도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적극적인 '출구'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이날 전세사기로 의심되는 거래 106건을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다고 밝혔다. 이중에는 최근 주택 1000여 채를 보유한 채 사망해 다수 임차인에게 피해를 끼친 일명 '빌라왕'과 관련된 사례도 16건 있었다. 임대인은 사망했지만 이와 관계없이 공모 조직 등 전체 범행에 대해 경찰이 수사를 하고 있는 만큼 수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피해 상담 일지 등 관련 자료와 국토부가 별도로 조사·분석한 내용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번 106건의 전세사기 의심거래에 연루된 법인은 10개, 혐의자는 42명으로 조사됐다. 임대인이 25명으로 가장 많았고, 공인중개사(6명), 임대인 겸 공인중개사(4명), 모집책(4명), 건축주(3명) 등도 다수 있었다. 국토부가 추정한 106건의 전세사기 의심거래의 총 피해액은 171억원 이상이었다. 피해자는 30대(50.9%)와 20대(17.9%)가 주를 이뤘다.
[이선희 기자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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