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여행] '뚜루뚜루' 두루미... 새해엔 좋은 소식 들릴까

최흥수 2022. 12. 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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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회 민통선 들어가는 철원 DMZ두루미탐조 여행
행운의 상징 두루미가 무리 지어 철원평야를 날고 있다.

43번 국도를 따라 철원으로 이동하다 보면 ‘신철원’이라는 이정표가 심심찮게 보인다. 철원군청이 소재한 갈말읍을 일컫는다. 그럼 ‘구철원’은 어디일까? 현재 민통선 안이어서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다. 한국전쟁 전까지는 주요 간선도로와 경원선 철도가 지나는 지역의 중심으로, 백화점이 2개나 있을 정도로 번성했던 도시였다. 이제 일반인이 공식적으로 이 지역에 들어가는 방법은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동송읍 양지리 DMZ두루미평화타운에서 하루 2회(오전 10시, 오후 2시) 두루미 탐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소음이 적은 소형 전기차를 이용해 아이스크림고지, 월정리역을 돌아오는데 약 2시간이 걸린다.

두루미와 재두루미 가족이 민통선 안 철원평야에서 먹이를 먹고 있다.
두루미와 재두루미 가족이 민통선 안 철원평야에서 먹이를 먹고 있다.

장수와 행운을 불러오는 길조로 인식돼 학, 단정학, 선학 등으로 불리는 두루미는 매년 11월 철원평야를 찾아 겨울을 나고 이듬해 3월쯤 아무르강 유역 시베리아로 돌아간다. 철원평야가 두루미의 겨울 서식지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먹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두루미 한 마리가 겨울을 나며 무려 37㎏가량의 낙곡을 먹는다고 한다. 또 하나는 위험 요소가 덜하기 때문이다. 민통선 안이라 차량과 사람의 이동이 엄격히 제한된다. 두루미를 비롯한 겨울 철새가 방해받지 않고 먹이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다.

검문소를 통과하면 끝없는 평야가 펼쳐진다. 도로 양편 논바닥에서 두루미와 재두루미 가족이 적게는 세 마리, 많게는 수십 마리씩 무리 지어 먹이를 먹고 있다. 혹시라도 두루미를 보지 못할까 하는 염려는 접어도 된다. 철원평야를 찾는 두루미는 매년 조금씩 늘고 있다. 올해는 약 8,000마리가 날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700~1,200마리가 두루미, 나머지는 재두루미다.

탐조버스는 두루미가 모여 있는 곳에서 서행하거나 잠시 정차한다. 소리에 민감한 동물이기 때문에 창문은 열지 않는다. 버스가 보이는 동안에는 두루미도 먹이활동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사방을 경계한다. 그래도 차가 움직이지 않으면 꽁무니를 빼며 슬금슬금 이동해 안전거리를 확보한다.

한국전쟁 때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진 아이스크림고지. 바로 아래 논바닥에서 두루미 떼가 평화롭게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아이스크림고지 지하벙커는 두루미와 철원을 홍보하는 전시관으로 꾸며졌다.
아이스크림고지에 오르면 드넓은 철원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아이스크림고지에 오르면 드넓은 철원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탐조버스는 두루미가 노니는 들판을 천천히 이동해 아이스크림고지로 향한다. 고지라 해서 높은 산봉우리가 아니라 평야에 섬처럼 봉긋하게 솟은 해발 219m의 작은 봉우리다. 드넓은 들판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은 모양이라 오래전에는 삽송봉, 현재는 삽슬봉이라 부른다.

아이스크림고지라는 달콤한 지명은 아이러니하게도 6·25전쟁의 비극에서 비롯됐다. 당시 이 작은 봉우리를 차지하기 위해 피아간 치열한 쟁탈전과 포격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산봉우리가 마치 아이스크림 녹듯 흘러내렸다고 한다. 전투기에서 그 모습을 본 비행사가 영국군인지 미국군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분명 고향에서의 달콤한 한때를 꿈꾼 젊은 병사였을 듯하다.

전쟁이 끝나고도 오랫동안 군인이 주둔했던 지하벙커는 두루미를 비롯한 철원의 관광자원을 알리는 홍보관으로 단장했다.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두루미 사진을 비롯해 두루미의 습성, 철원과 얽힌 사연 등을 전시하고 있다.

벙커를 통과해 꼭대기에 오르면 사방으로 시야가 확 트인다. 날이 좋으면 북측으로 멀리 평강고원의 지평선까지 관측된다고 한다. 지난 15일 간간이 눈발이 날리는 차가운 날씨에 두루미와 쇠기러기의 울음소리가 바람에 섞여 떠돌고 있었다. 두루미라는 명칭은 ‘꾸루루 꾸루루’ 울음소리에서 비롯됐다. 망원경으로 보면 들판 곳곳에서 무리 지어 먹이를 먹거나 낮게 날아 이동하는 두리미가 보인다.

탐조버스는 다시 들판을 가로질러 월정리역으로 이동한다. 서울에서 원산으로 달리던 경원선 열차가 잠시 쉬어가던 곳으로, 남방한계선 철책에 근접한 최북단 역이다. 관광객을 위해 복원한 옛 건물 뒤편으로 나가면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고 쓴 간판과 녹슬고 종잇장처럼 구겨진 열차가 전시돼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이 역에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 잔해와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인민군 화물 열차의 골격이다.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과 바로 붙어 있는 최북단 월정리역.
월정리역 선로에 녹슬고 구겨진 열차 잔해가 전시돼 있다.
겨울철 철원평야에서는 하늘을 뒤덮고 나는 쇠기러기 떼도 흔히 볼 수 있다.

월정리역 한쪽에 ‘태봉국 도성지’ 안내문이 있는데, 대개는 무심코 지나친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철원으로 천도한 후 국호를 ‘태봉’이라 고치고 새로 도성을 건설한 곳도 바로 여기다. 외성이 12.5㎞, 내성이 7.7㎞에 이르는 대규모 궁성이라고 전해지는데, 비무장지대 안에 위치해 이곳까지 와서도 흔적을 보기 어렵다. 태봉국의 영화와 옛 철원의 번성을 뒤로하고 탐조버스는 다시 허허벌판을 달려 출발한 곳으로 돌아온다.

‘DMZ두루미탐조' 비용은 성인 1만5,000원, 그중 1만 원을 철원상품권으로 돌려받으니 실제는 5,000원인 셈이다. 폭설이 내리거나 군 부대 훈련 등으로 불시에 운영이 중단될 수 있어 당일 현장 접수만 받는다.

철원=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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