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갈등과 치유
며칠 전 카카오톡에서 반가운 알림음이 들렸다. 서울고검에서 함께 일했던 사무관이다. "잘 지내세요~ 고검 갈등치유팀 K사무관입니다. 너무 감동적인 것이 있어 고검장님과 나누고 싶어 연락드려요. 어제 학폭 갈등 치유를 했어요. 학교에서도, 경찰과 지검 단계에서도 합의가 안 되어 고통받던 양 가족과 아이들이 고검에 와서 긴 시간 서로의 묵은 감정과 격한 감정을 다 드러낸 다음 합의가 되어 함께 안고 울고 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큰 감동과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얼마 전 서울고검장을 끝으로 퇴직한 후 변호사로서 업무에 제대로 적응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시기에 전해들은 멋진 소식에 나도 울컥했다.
서울고검 갈등치유팀은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자 만들어진 팀이다. 지난 6월 서울고검장으로 부임하니 이미 이렇게 좋은 팀이 결성되어 있었다. 크게 빛나지 않는 일이지만 참으로 중요한 일을 해오고 있던 직원들이 고마웠고 조금 더 활성화하고자 했다.
부모와 자식 간 고소 사건, 이웃 간 주차 분쟁, 층간 소음 사건 등이 의외로 주위에 넘쳐나고 그러한 갈등과 분쟁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당사자들은 장기간 고통에 노출된 채 사회문제화되어 가고 있기도 하다.
서울고검 갈등치유팀은 당사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관계 회복을 통해 종국적인 화해를 시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위 사건에서 K사무관은 몇 시간을 인내하며 자칫 부러지고 깨어질 듯한 분위기 사이사이에 조심스럽게 끼어들어 마침내 감동적인 합의를 끌어냈다. 화해에 이르는 남다른 스킬을 보유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K사무관은 '월드컵 16강은 저리 가라 정도며 갈등치유팀을 맡은 이후 최고의 날'이라고 들뜬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가 자기 일을 끔찍이 사랑하고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을 보며 함께 근무한 것에 대한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
학폭에 얽힌 두 학생은 이제 속이 편해져 공부도 열심히 할 것이라는 후일담을 전해왔고 멋진 합의를 끌어낸 K사무관은 출근길에 과장님에게 10분간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K사무관은 양 학부모에게도 '애정 어린 중재나 갈등치유제도가 없었더라면 계속 불확실하고 고통스러운 법정 싸움을 이어갔을 것'이라는 감사 편지도 받았다고 한다.
우리는 정치·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많은 갈등을 목도하고 있다. 정치 영역의 갈등은 더 이상 치유 가능성이 없어 보일 정도로 폭주기관차처럼 마주 보고 달리고 있다. 갈등 치유를 위한 노력보다는 갈등을 만드는 일에 오히려 힘을 쏟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바쁜 걸음으로 검찰과 법원,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대부분 사람들은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앞서 일도양단적인 해결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남는 것은 상처뿐인 영광일 것이다. 그런 현실에서 보여준 K사무관의 갈등 해결을 위한 노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학폭 치유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저 두 학생은 아마도 올해 최고의 크리스마스를 보내지 않을까. 메리 크리스마스!
[김후곤 로백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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