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 넘는 노조 재정, 내역은 아무도 모르는 ‘깜깜이 회계’… 정부·여당 “투명성 강화해야” 한목소리
일부 노조서 간부가 조합비 횡령 사고 발생
포스코지회, 민노총이 조합비 수억원만 챙겼다며 탈퇴 결정
與, 노조 회계 투명성을 강화할 법률 정비하기로
정부가 노조가 재정을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기로 했다. 노조가 매년 수천억원에 달하는 노조비를 걷고있지만 어디에 돈을 쓰는지는 사실상 누구로부터도 감시를 받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은 관련 법률을 정비해 정부를 뒷받침하기로 했다.
◇韓총리 “노조 재정 투명성 등 정부가 과단성 있게 적극 요구”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그간 노조활동에 대해 햇빛을 제대로 비춰서 국민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노조의 재정 운영 투명성 등 국민이 알아야 할 부분에 대해 정부가 과단성 있게 적극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국내 노조들의 회계가 대부분 ‘깜깜이’ 상태인 것을 지적한 발언이다. 정부가 일부 노조에서 벌어지는 비리를 막고, 회계감사가 실효성 있게 실시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노동계 안팎에서 노조 재정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지만, 정부가 직접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대부분 조합원이 내는 조합비로 재정을 마련하지만, 일부 정부 지원금을 받기도 한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양대 노총에 각종 사업 명목으로 지원금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조 간부가 10억여원 횡령 사고… 조합비, 친북 사업에 활용되기도
민주노총의 조합원은 113만명에 이른다. 조합비는 노조마다 다르지만 민노총 조합원이 월 1만원씩 조합비를 낸다고 가정하면 민노총이 걷어들이는 재원은 연간 1000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회계 내역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은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에는 결산 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노조가 회계 자료를 반드시 공개해야 하는 규정은 없다. 정부도 지금까지 ‘노조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취지에서 사실상 노조의 회계자료를 들여다보지 않고 있다.
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는 지난달 30일 금속노조를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포스코지회는 2018년 금속노조에 가입한 후 조합원들이 매월 조합비를 3만원씩 납부했다. 그렇게 수억원의 조합비를 냈지만 금속노조는 사실상 조합비만 챙기고 도와주지는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민노총에서 떠나기로 했다.
일부 노조에서는 조합원들이 낸 돈을 횡령하는 등 회계 부정이 일어나고 있다. 진병준 전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2019년부터 3년 간 노조비를 사적으로 쓰거나 법인카드를 유용하고, 상여금을 지급했다가 가족 계좌로 돌려받는 식으로 10억여원을 횡령해 지난 6월 구속됐다.
한국노총 홈페이지에는 지난해 2월 서울 강동구 둔촌동 재개발단지에서 근무하는 조합원이 “노조에 월 3만원의 조합비를 낸다. 그 외에 상납금이라고 월 15만~20만원 임금을 착취당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조합원은 “조합비와 상납금 등으로 한 달에 23만원 정도를 안 내면 노조에서 일을 못 한다고 협박을 하는데 전혀 상식에 어긋나는 행패”라며 “한 달에 150만원 벌어 노조에 23만원, (기타) 교통비 등 나가면 아이들 차비도 주기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조합원들이 낸 조합비로 마련된 재원이 친북(親北) 성향의 사업에 쓰이기도 한다. 민노총은 올해 사업계획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 폐지, 한미동맹 해체’ ‘평화협정 체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주요 투쟁과제로 내걸었다. 민노총은 문재인 정부에서 중단됐던 대규모 야외 실기동 한미연합훈련이 부활한 것을 반대하고, 지난 8월 27일 ‘전쟁 부르는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 촉구’ 집회를 열었다. 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과 같은 경기동부연합 출신으로,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동문이기도 하다.
◇與, 미국·영국 사례 들며 투명성 강화 주장… 민노총은 반발
국민의힘은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법률을 정비해 정부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2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거액의 돈이 외부 감사의 눈길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이나 영국은 대부분 독립적인 외부회계기관의 감사를 받도록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결산 내역만 공개한다”며 “우리나라도 법률 정비로 노조 회계가 정부 혹은 독립적 외부기관의 감사를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미국은 노조나 노조 간부가 회사와 거래하는 업체와 관련한 주식, 채권, 증권 거래에 대해서도 노동부 장관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다”며 “영국은 노조 회계를 행정관청에 연례 보고하도록 하고 있으며, 조합원들이 노조 회계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민노총은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전날(19일) 논평에서 “(조합비가) 모여진 기금과 사업비는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된 예산 계획 안에서만 움직인다. 단 1원도 회계상 지정된 항목을 벗어나 집행될 수 없다”며 “결산보고서는 매년 400쪽 규모로 제작해 전 조직에 배포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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