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65살로 늦춰서…마크롱 연금개혁, 프랑스 경제 살릴까

한겨레 2022. 12. 2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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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프랑스 정년 연장 논란(2) 경제학자 토론
“연금 적자 안정화 기여” vs “노인 고용률 더 높여야”
파리1대학 미카엘 제무르(Michaël Zemmour) 교수(경제학), 공공정책연구소 앙투안 보지오(Antoine Bozio) 소장.

파리1대학 미카엘 제무르(Michaël Zemmour) 교수(경제학), 공공정책연구소 앙투안 보지오(Antoine Bozio) 소장에게 프랑스의 현행 연금제도와 정부가 발표한 연금 개혁안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다.

―연금제도 얘기가 나오면 곧장 재정건전성 문제로 논의가 집중된다. 연금기금의 적자를 우려해야 할 때인가?

=미카엘 제무르(이하 제무르): 지금 상황에서는 근거 없는 우려에 가깝다. 연금자문위원회(COR) 최근 보고서를 보면 연금 관련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거나 줄어들 전망이다. 예상 적자가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현 정부 임기가 끝날 때쯤 107억유로(약 15조원)로 GDP 대비 0.5%다. 연금기금 지출이 늘어 재정이 위험해지는 게 아니다. 수입 감소가 더 큰 문제다. 공공부문 인건비가 늘어나면 정부와 지자체가 연금 재원을 줄이려 한다. 줄어든 재원을 민간부문에서 보전하지 않고 말이다.

적자 문제는 공적 논의에서 항상 제기된다. 여론이 연금 개혁을 지지하지 않으니까 정부가 적자를 부풀려 개혁의 명분을 만들려 한다. 재정 상황이 어려운 적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 그런 상황은 아니다.

=앙투안 보지오(이하 보지오): 재정 문제가 항상 우선되는 건 아니다. 예컨대, 제도가 좋지 않아도 재정건전성은 완벽하게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제도에서는 다른 문제가 모두 무시된다. 프랑스에선 연금제도를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잘 논의하지 않는다. 제도를 더 투명하고 공평하게 바꾸는 방안, 앞으로 지급할 연금액 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 점진적 퇴직이 가능하게 하는 방안 등에 관한 논의가 부족하다.

연금 지출이 안정화한 것은 사실이다. 항상 그랬던 건 아니다. 연금기금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굳이 부풀리지 않아도 중요한 문제다. 앞으로 15~20년 뒤 연금 적자가 발생하리라고 모두가 예상한다. 지금대로라면 지출이 수입보다 약간 많을 것이다. 다만, GDP의 0.5%라는 적자액이 절대 적은 수준은 아니다. ‘연금의 지출-수입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라는 질문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정부는 연금기금을 절약해 법인세 인하, 교육, 에너지 자립, 에너지 전환 등 다른 곳에 쓰겠다고 한다. 정년을 65살로 늦춰 이들 정책을 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나?

=보지오: 연금제도는 정년을 늦추지 않고도 균형을 찾을 수 있다.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65살로 하면 연금자문위원회가 추산한 적자액(2027년 107억유로, 2032년 150억유로)보다 많은 돈을 아낄 수 있다고 한다. 정년을 3년 늦추면 그만큼 나갈 돈이 줄어든다. 게다가 퇴직하지 않고 계속 일하는 사람이 내는 연금보험료로 수입이 늘어난다. 물론 기대 수입의 4분의 1을 빼야 한다. 실업수당이나 장애수당 등으로 나가는 돈이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200억유로 증가한다. 상당히 많은 돈이다. 이를 보고 연금 재정을 아껴 정부가 다른 정책의 재원으로 쓰려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제무르: 정년을 65살로 늦추면 기금을 흑자로 만들 수 있다.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연금 지출을 줄여 재정을 절약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이 문제는 일단 차치하자. 프랑스는 여러 공공지출을 연결하는 창구가 없다. 정부는 지금 프랑스를 구조적으로 바꾸려 한다. 세금과 공공지출을 줄여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공공서비스는 예전부터 절약과 거리가 멀었다. 정부는 연금 개혁을 그런 구조적 변화의 다음 단계로 가는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 우리가 간과하는 게 있는데, 정작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사회보험 지출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위험이 커지는 상황은 퇴직자 증가를 말한다. 이는 공정하지 않다. 그런 환경에서 연금 지출을 줄이는 것은 퇴직자의 은퇴생활 기간이 짧아지고 연금이 대폭 줄어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정부는 연금 개혁으로 경제성장률을 높이겠다고 한다.

=제무르: 거시경제 모델에 따르면 정년 연장은 처음에는 실업률을 높여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린다. 정부는 이 점을 감춘다. 이후 고용률이 늘어나면서 경제성장률이 반등한다. 정년 연장이 경제활동인구를 늘릴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다. 경제활동인구가 늘면 일시적으로 경제성장 효과가 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한 번으로 끝난다. 단지 계단 하나를 오르는 것이다. GDP를 늘릴 수 있어도, 성장의 길은 바뀌지 않는다.

=보지오: 여러 외국 사례를 보면 법적 정년이 노인 고용률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GDP에 영향을 준다. 물론 경제성장이 아니라 GDP 규모만 바뀐다. 프랑스는 1990년대 중반 노인 고용률이 가장 낮은 나라에 속했다. 노인을 해고하는 기업에 지원금을 줬다. 2010년대 초 50~59살 노동자가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이 나이대 노동자의 고용률이 늘었다. 프랑스의 60~64살 고용률은 다른 나라에 견줘 높은 편이 아니다. 이 점이 정년 연장의 구실이 됐다.

2022년 10월18일 인플레이션에 상응하는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시위가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져 니스의 시위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노동시장과 연금 개혁을 밀어붙이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모양의 인형을 공중으로 던졌다. REUTERS

―문제를 다루는 순서가 바뀐 것 같다. 노인 고용률이 먼저고 연금 개혁은 그 다음이 아닌가?

=제무르: 노인 고용률을 높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직업교육 조건과 노동 여건을 개선하고 노동자가 정년까지 직장에 남아 일할 수 있도록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그보다 과격하다. 바로 정년을 늦추는 것이다. 정년 연장은 노인 고용률을 높일 수밖에 없다. 딱히 더 일하고 싶지 않지만, 일할 여력이 있고 기업도 고용을 유지하겠다고 하면 일을 계속한다. 중간이나 최고 관리직에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정년 연장에는 높은 사회 비용이 뒤따른다. 실업자와 장애수당 또는 능동적연대소득(RSA) 생활자를 비롯한 나머지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

=보지오: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이 아닌 평균 퇴직 나이를 늦추는 방법도 있다. 정년 연장은 육체노동자 등 저임금 저숙련 노동자에게 큰 타격을 준다. 고숙련 노동자가 받는 충격은 적은 편이다. 그런 특권층을 겨냥해 연금 가입 기간을 늘릴 필요가 있다. 

“모두가 더 일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연금 개시 연령을 늦추려 한다. 정년이 가까워지면서 실직 위험이 높고 은퇴생활 기간이 짧은 사람들이 타격을 받을 텐데도 말이다. 이는 사회적 퇴보다. 가치 판단을 하려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노인 고용률을 높이는 데는 더 효과적이고 정의로운 방법이 있다.

=제무르: 정부 목표는 두 가지다. 첫째는 공공재정 흑자 전환이고, 둘째는 노동시장 개혁이다. “더 일해서 더 생산한다”는 정부의 보편적인 공급 중심 정책에 따른 것이다. 지금 프랑스는 구인난을 겪고 있다. 노동자 요구도 까다로워졌다. 이런 시기에 연금 개혁이 노동력 공급을 늘리고, 결과적으로 노동시장의 경쟁을 치열하게 할 것이다. 같은 원리로, 정부는 실업수당 수급 자격을 까다롭게 바꿨다. 노동자가 임금이 적은 노동을 거부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가처분 인력이 늘어나면 임금 하락 압박이 생긴다.

―다른 인구 집단에 견줘 은퇴자의 생활수준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제무르: 그 문제는 정년 연장 논의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10년 전 정년퇴직한 사람의 연금이 지나치게 높아 요즘 퇴직하는 사람에게 같은 조건을 보장해주면 안 된다는 의견이 있다. 소득대체율이 지나치게 높고 은퇴생활 기간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기대수명이 늘어났지만 이전 연금 개혁으로 정년이 늦춰졌다. 결과적으로 은퇴생활 기간이 짧아졌다. 은퇴생활 기간과 연금 수령액 모두 1990년대가 아닌 1980년대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다.

=보지오: 동의한다. 은퇴자의 생활수준은 떨어지는 추세다. 현재는 다른 인구 집단보다 생활수준이 좋은 편에 속하지만, 앞으론 훨씬 나빠질 것이다. 애초 연금제도가 퇴직 이후 생활수준을 보장해주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졌는데도 말이다. 우리 세대가 은퇴하는 시기에는 경제활동인구와 비교해 생활수준이 현저하게 차이날 것이다. 우려스러운 일이다. 사람들이 이를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연금보험료를 올려야 하나?

=제무르: 연금자문위원회가 추산한 2027년 적자액을 보험료만으로 메우려면 2023년부터 월 보험료를 4.5유로(고용인 2.5유로, 피고용인 2유로) 인상해야 한다. 문제가 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보지오: 보험료를 올려 적자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미카엘 제무르가 말한 수준으로는 구매력 하락 효과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다. 연금자문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당장 보험료를 27~51유로 올려야 연금 재정이 다음 25년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 역시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구매력을 떨어뜨릴 것이다.

=제무르: 연금보험료 인상은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물론 공짜는 없다. 문제는 연금기금 수입을 늘리는 것을 금기로 여긴다는 점이다. 정치는 일정한 재원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사회보장제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당연히 재원을 늘리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연금자문위원회 추산에 따르면, 현재 3000유로인 세전 월 평균임금이 5년 안에 150유로 늘 전망이다. 그 인상분에서 22.5유로를 연금 안정화에 쓰면 된다. 물론 큰돈이지만 임금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인상분이 150유로밖에 안 된다는 점이다. 거기서 보험료 비중을 얼마로 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경제성장 둔화다.

장크리스토프 카탈롱 Jean-Christophe Catalon 로랑 자노 Laurent Jeanneau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2년 11월호(제4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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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최혜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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