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아닌 사진이라 더 ‘섬뜩’...“北 공산주의 흔적 궁금해요”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2. 12. 2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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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마리아 스바르보바 내한
한가람미술관서 ‘어제의 미래’ 展
구소련 건축·소품에 현대감각 섞어
“언젠가 북한에 가서 촬영하고파”
슬로바키아 출신의 예술사진 작가 마리아 스바르보바. 내년 2월 26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어제의 미래’에 걸린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해보이고 있다. [이충우 기자]
이 작가가 찍은 프레임 속 세상은 마치 그림을 그린 듯 완벽에 가까운 대칭 구도와 선명한 색상으로 구현돼있다. 마치 평화로운 동화 같다. 그러나 철저히 통제된 아름다움에선 때로 섬뜩함도 느껴진다.

예술 사진으로 2018년 세계적 권위의 핫셀블라드 마스터(Hasselblad Master)의 영예를 안은 사진작가 마리아 스바르보바가 처음으로 내한했다. 2019년 국내 첫 개인전 이후 3년 만에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어제의 미래’ 전시를 선보이면서다. 2010년부터 찍은 작가의 170여작이 5개의 큰 주제로 분류돼있으며, 내년 2월 26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1989년 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아직 30대 초반에 불과한 이 작가를 향한 국제적 관심은 뜨겁다. 지난 10일 서울에서 열린 기념 팬 사인회에선 긴 줄이 늘어서며 대중성을 입증했고, 바다 건너 스페인 말라가에서도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최근 서울 전시장에서 직접 만난 스바르보바는 “지난 팬데믹 3년은 힘들었지만 빈 건물 안에서 촬영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고 안부 인사를 건넸다.

‘수영장’ 연작 중 ‘창문’(2016). [사진 제공 = 컬쳐앤아이리더스]
스바르보바는 옛것에서 현대적 감각을 끌어내고, 단단한 물질에서 유약한 이면을 찾아내 소재로 삼는 등 사진에 복합적인 주제를 담는다. 전시의 주요 주제인 ‘퓨트로’ 역시 미래를 의미하는 ‘퓨처’와 과거·복고라는 뜻의 ‘레트로’를 합친 말이다. 특히 구소련 시절을 연상시키는 1990년대 슬로바키아 의상과 소품이 중요하게 쓰인다. “작품을 이루는 대칭·직선 같은 기하학적 요소와 건축물, 시대적 의상, 자연광 등이 모두 중요한 요소예요. 제가 태어났을 때 공산주의는 이미 종식됐지만 제 주변을 감싸고 있었던 그 분위기는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노스탤지어)을 느끼게 해요.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을 섞어서 변치 않는 영원한 것(타임리스)을 표현합니다.”
‘수영장’ 시리즈 중 ‘깊은’(2020). [사진 = 마리아 스바르보바]
예를 들어 ‘수영장’ 연작에선 오래된 슬로바키아 수영장을 배경으로, 노랑·빨강의 수영복과 푸르고 투명한 물이 포인트 색감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동시에 살균 처리라도 된 듯 극도로 깨끗하게 관리된 수영장과 벽에 붙은 ‘점프 금지’ 등의 통제 문구는 엄격한 규제를 뜻한다.
‘프래자일 콘크리트’ 시리즈 중 ‘수수께끼’ (2022). [사진 = 마리아 스바르보바]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촬영된 ‘프래자일 콘크리트’ 연작은 단단하면서도 깨지기 쉬운 콘크리트를 인간관계에 빗댔다. 앞선 수영장 시리즈에서 수면에 비친 피사체가 자주 등장했다면, 여기엔 바짝 서 있는 남녀가 서로에게 망원경을 들이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번 전시의 후반부 ‘커플’ 챕터에 주로 소개된 작품들이다. “수면에 비친 상에 자기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의미가 있다면, 망원경은 상대방의 영혼을 바라본다는 점을 은유했어요. 서로 더 깊이 알아가려는 거죠.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인 르코르뷔지에 건축물에서 촬영했는데, 남녀의 관계가 노출 콘크리트처럼 깨지기 쉽다는 점도 나타내고자 했어요.”
슬로바키아 출신의 예술사진 작가 마리아 스바르보바. 내년 2월 26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어제의 미래’에 걸린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해보이고 있다. [이충우 기자]
미적인 완벽성과 역사적·은유적 의미를 모두 중시하는 작가에게 한국은 어떤 인상으로 다가왔을까. 전시장과 숙소만 오갔던 짧은 내한 기간 중 한국 건축물을 따로 접할 시간은 없었다지만, 이동 중 차 안에서 찍었다며 한 장의 스마트폰 풍경 사진을 내보인다. 하늘을 향해 나란히 솟아있는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 건물 3채, 그 안에 규칙적으로 박혀 있는 사각 창문 등 흔한 서울의 풍경이지만, 스바르보바 작품의 연장선이라 말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냉전 시대의 유산으로 분단돼있는 한반도에 느낀 매력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분단과 이별은 슬픈 주제라 조심스럽지만, 북한에 남아있을 공산주의 건축과 기념물, 그 안의 균일성은 궁금해요. 그 통치 체제가 아니라 시각적 요소(비주얼리티)를 좋아할 뿐이에요. 가족과 친구들은 위험한 일이 생길까봐 걱정하지만 분명 매력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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