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장관의 김의겸·더탐사 '10억' 손해배상 소장 살펴보니
"스토킹 행위를 취재 활동으로 가장, 처벌 면하려 비방 모의"
"검사 임관 이후 변호사들 술자리 참석없어"
객관적 반박 증거는 없어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더탐사는 스토킹 행위를 정당한 취재 활동인 것처럼 가장해 처벌을 면하기 위해 김의겸, 제보자와 비방을 모의했다.” 지난 2일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더탐사 기자들, 성명불상 제보자를 상대로 제기한 10억 손해배상청구소송의 핵심 주장이다.
한 장관은 더탐사 기자를 스토킹 혐의로 고소한 이후인 10월6일 “제가 이상한 술집이라도 가는 걸 바랐겠죠”라고 취재진에게 말했는데,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소장에 따르면 한 장관측은 “(이러한) 입장을 밝히자, 피고들은 실제로 원고가 고급 술집에서 대통령, 로펌 변호사들과 함께 부적절한 술자리를 벌인 것처럼 허위로 방송을 제작해 원고를 비방하는 한편, 스토킹 행위가 마치 취재 활동인 것처럼 가장하기로 공모했다”고 주장했다. 더탐사는 “스토킹 처벌을 모면하려고 스토킹보다 더 큰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거짓을 만들어낸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며 반박에 나섰다.
더욱이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0일 검찰이 더탐사 기자에게 청구한 잠정조치 중 일부만을 받아들이며 “기자와 공직자라는 지위, 언론 취재 자유와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의 중요성을 종합하면 3회에 걸쳐 한 장관 공무차량을 따라다닌 행위는 스토킹행위 또는 범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현직 대통령과 법무부장관 비방을 모의해야 할 만큼 해당 행위의 처벌 가능성이 높은 상황도 아니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 장관측은 소장에서 “성명불상 제보자는 여자친구와 통화 중, 2022년 7월19일 자정 무렵부터 20일 새벽 3시경까지 약 3시간 동안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고급 주점에서 고소인이 대통령과 로펌 변호사 30명과 함께 술자리를 가지고 향응을 제공받은 것을 목격한 것처럼 말하자 이를 녹음해 더탐사 관계자에게 전달했고, 김의겸은 강진구·성명불상자로부터 녹음파일을 전달받아 의원실 관계자들과 함께 편집하고, 녹음파일이 유튜브 채널에 재생·송출되는데 협조했으며,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는 데에 가담했다”고 주장했다. 김의겸 의원실은 “유튜브 채널 송출에 협조하거나 유튜브 영상 제작에 가담한 적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김의겸 의원이 더탐사와 협업이 있었다고 밝힌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서로 가진 정보를 나눴던 수준으로 알려졌다. 박대용 더탐사 기자는 “우리는 김 의원이 언제 질의할지도 몰랐다”고 밝힌 뒤 “기자와 의원실 간 협업은 다른 언론사와 의원실에서도 일상적으로 이뤄지는데, 한 장관은 이를 마치 '공작'으로 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만약 한 장관측이 생각하는 수준의 '협업' 관계였다면 국정감사 질의가 있던 10월24일 당일 더탐사 기자들이 김 의원의 질의보다 앞서 한 장관에게 '청담동 술자리' 의혹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김 의원 입장에선 한 장관이 자신의 질의에 대비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게 전략적으로 유리해서다.
한 장관측은 명예훼손을 일으킨 특정 대목을 언급하는 대신 “영상의 전체적 대화 내용이나 흐름이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면서 “원고는 평소 전혀 술을 마시지 않고 술자리에도 참석하지 않았으며, 검사로 임관한 이후 변호사들의 술자리에 참석한 적도 없었으므로, 방송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객관적 '현장부재증명'으로 보기엔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 2003년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이 “유시민 개혁당 의원이 2002년 대선 직전 중국 북한대사관을 방문해 이회창 후보 부친과 관련한 자료를 받았다”고 폭로하자 유 의원은 출입국관리사무소 증명서와 여권 사본을 제시해 김 의원의 사과를 받아냈다.
한 장관측은 “술자리가 있었다는 장소는 물론 시기, 참석자 등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목격했다는 여성의 진술도 들을 수 없었으므로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도저히 방송으로 내보낼 수는 없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더탐사는 “첼리스트뿐만 아니라 술자리에 참석했던 이세창과 두 차례 통화해서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이 참석했다는 걸 받아내 보도하게 된 것”이라며 “소장 어디에도 우리가 이세창과 통화한 대목은 없다. 본인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빼고 작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장관측은 또 “김의겸은 제보자인 목격자 여성의 전 남자친구로부터 그녀가 운전한 차량의 블랙박스를 건네받아 포렌식을 시도했으나, 당시 그 술집에 들른 기록을 찾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소장만 봤을 때는 '블랙박스를 온전히 복구했으나 술집을 찾지 못했다'로도 읽힐 수 있다. 김의겸 의원실은 “영상 복원을 시도한 결과 작년 기록은 있는데 올해 기록이 아예 없었다”고 설명했다.
한 장관측은 “경찰 수사 결과 이세창 휴대전화는 당일 영등포구 및 강서구인 것으로 밝혀져 이세창 역시 당일 그 근처에 있지도 않았음이 명백히 확인됐다”며 조선일보 11월11일자 기사를 증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11월24일자 기사에서 “사건 당일 (첼리스트) A씨가 청담동에서 술자리에 참석한 것은 맞다”는 A씨 변호인 입장을 전한 뒤 “이세창 전 총재와 이 전 총재가 김앤장 출신 변호사라고 소개한 지인 등 7~8명만 참석했고, 이 자리는 자정 전에 끝났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현재로선 이 전 총재가 적어도 청담동에 있었던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장관측은 “통화 당사자였던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청담동 술집에서 원고를 만난 적 없으며, 당시 남자친구였던 제보자를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했던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박대용 더탐사 기자는 “우리는 A씨가 (10월 말) 자택 압수수색 이후 심경이 바뀐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기자에게 '정권이 끝나면 얘기하겠다'고 했다가, (윤석열·한동훈과) 만난 적 없다고 말이 바뀌기도 했다”고 전한 뒤 “지금도 추가 제보가 이어지고 있으며 아직 밝히지 않은 중요한 녹취도 있다”며 후속 보도를 예고했다.
한편 한 장관측은 “수십만 명이 넘는 네티즌들로부터 모욕적인 2차 가해를 당하고 있다. 원고에 대한 가십이 연속적으로 확대, 증폭되고 있어 가늠할 수 없는 치명적 피해를 입었다 할 것이고, 이를 금전으로 환산한다면 최소한 1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을 향해선 “오로지 비방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적시해 면책특권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더탐사를 향해선 “사회고발을 위한 탐사보도를 가장해 대통령, 원고 비방 허위 방송으로 시민들을 기만해 돈벌이 대상으로 삼고 있으므로, 이들 범죄행위는 사회에 끼치는 해악의 정도가 통상의 명예훼손 범죄와 차원을 달리할 정도로 심각하다”며 “엄정한 형사처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직 법무부장관의 형사처벌 요구는 이해충돌 소지가 있으며, 검사들에게 '수사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과 같다는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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