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표 정당 민주주의?···초유의 ‘민심 0%’ 당헌, 토론 없이 ARS투표 의결

문광호·조문희 기자 2022. 12. 2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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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현 국민의힘 상임전국위원회 의장 직무대행(오른쪽)과 정동만 부의장이 20일 국회에서 열린 상임전국위원회 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국민의힘이 20일 비대면으로 상임전국위원회를 열고 당대표를 여론조사 없이 선출하기로 하는 당헌 개정안을 의결했다. 18년 만에 지도부 선출에 민심을 반영하는 창구를 닫는 초유의 당헌 개정이지만 공개적인 토론이나 의견 개진 절차는 없었다. 당헌 개정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비민주적으로 강행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이날 오전 제9차 상임전국위원회를 비대면으로 개최하고 모바일 투표를 진행한 결과 ‘당헌 개정(안) 작성 및 발의의 건’을 원안 가결했다고 밝혔다. 재적 55명 중 39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35명, 반대 4명으로 의결됐다. 한나라당 시절인 2004년 당내 소장파 의원들이 주도한 쇄신의 결과가 18년 만에 번복된 것이다. 이제 당헌 개정 절차는 비대면으로 열리는 23일 전국위·상임전국위만을 남겨뒀다.

상임전국위는 이날 오전 10시30분 전국위 의장인 윤두현 의원의 선언으로 개회했다. 현장에는 상임전국위원 중 윤 의원과 부의장인 정동만 의원만 자리했다. 상임전국위원회가 대면으로 열릴 경우 참석 인원을 파악해 정족수를 충족하는지를 판단한 뒤 개회하지만 이날은 이런 절차가 생략됐다. 양금희 수석대변인은 “이번 제9차 상임전국위는 당헌 제98조 및 제 98조2에 의거해 비대면회의와 ARS(자동응답시스템) 투표로 진행되며 투표 참여가 참석으로 간주된다”고 말했다. 당헌상 비대면 투표 및 의결을 선택해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특례 조항을 적용한 것이다.

윤 의원은 모두발언에서 “당의 책임당원이 80만명에 육박하는 명실상부한 국민정당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어느 때보다 당원동지의 자긍심도 높고 대표성이 커졌고, 그만큼 당원들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며 당헌개정안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이어 당헌개정안을 설명한 비대위원 정점식 의원도 “정당 민주주의 확립과 당심 왜곡 방지를 위한 것”이라며 “상임전국위원들이 부디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주실 것을 호소드린다”고 말했다.

모든 발언이 끝나고 윤 의원, 정동만 의원 등은 개회한 지 15분 만인 오전 10시45분 상임전국위원들 간의 토론이나 공개 의견 개진 없이 생중계한 장소에서 퇴장했다. 양 대변인은 “상임전국위 생중계가 종료된 후 오전 11시부터 11시30분까지 안건에 대해 ARS 투표가 진행된다”고 말했다.

상임전국위원들은 이날 별도의 토론은 없었다고 전했다. 한 상임전국위원은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별도의 토론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당헌개정 내용을 사진으로 찍은 문자가 한 시간 전에 왔다”며 “읽을 시간이 있었고 그에 대한 상임전국위원들의 생각도 있을 테니까 충분히 소통은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오른쪽)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당내에서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인 토론 절차가 생략된 데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등 지도부는 여러차례 이번 당헌 개정이 “정당 민주주의 확립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상임전국위원으로 장기간 활동한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너무 속전속결로 진행하는 것 같다”며 “충분히 토론을 하고 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 상임전국위원도 “비대면으로 하는 것은 몰랐다. 오늘 참석이 어렵다”며 “정상적으로 대면으로 여는 게 낫겠지만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당내 의견 수렴 절차도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태경 의원은 이날 오전 BBS라디오에서 “이게 우리 당의 흑역사로 남을 것 같다”며 “이번 전당대회 룰 변경은 의총 토론이 아예 없었다”고 말했다. 김용태 전 최고위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글을 올려 “그렇기에 국민의힘은 대통령실의 거수기가 돼서도, 윤 대통령에게 듣기 좋은 말만 늘어 놓는 기회주의적 정당이 돼서도 안 된다”며 “차기 당의 주인을 선출하는 중차대한 일에 있어 대통령의 한마디에 속전속결로 국민 대다수의 의견을 듣는 과정을 생략한 채 짜인 각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지도부의 모습은 전혀 올바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상임전국위측은 당헌에 비대면 개최가 선택사항으로 명시된 데다 연말 상임전국위원들의 소집이 쉽지 않다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윤두현 의원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적응이 잘 돼 있는 젊은 사람들은 비대면, 온라인 회의와 대면 회의에 차이를 안 두지 않나”라며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비대면 회의를 한다는 발상은 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에 계시는 분들의 편의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당 관계자는 “전날 상임전국위원들에게 문자를 다 보냈고 의견을 달라고도 했다”고 설명했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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