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인수하는 자본에 '편집제작·운영계획서' 제출 의무화해야"
[토론회] 신문법 개정안에 제정해야… 2010년대 들어 건설·금융 자본 언론사 인수 경향 더 강화
[미디어오늘 박서연 기자]
건설·금융 등 자본이 언론사 지분을 인수해 대주주가 된 후 편집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편집제작·운영계획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지난 19일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윤창현)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위기의 신문 저널리즘, 독립성 보장할 방안은 무엇인가? 신문법 개정 방안을 중심으로'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홍익표 위원장이 주관했다.
2010년대 이후 자본 권력이 언론사를 인수하려는 경향이 더 뚜렷해지고 있다. 2019년 5월 ㈜헤럴드 대주주가 된 중흥그룹은 헤럴드의 편집권 독립, 자율경영, 구성원 고용승계 등을 기본 원칙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헤럴드 소속 직원 중흥건설 현장 파견 지시 논란 △중흥건설 분양 기사 네이버 메인에 보도 △헤럴드 예금으로 중흥 계열사인 에스엠개발사업에 담보를 제공한 사건 등이 문제가 됐다. 지난해 9월 서울신문 대주주가 된 호반건설 역시 '서울신문이 2019년 작성한 호반그룹 검증기사 57건'을 일괄 삭제해 논란이 됐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준형 언론노조 정책전문위원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의 신문사 인수가 신문사의 편집권 침해 혹은 언론의 내적 자유의 침해로 이어지고 있다. 편집권 침해의 새로운 경향에 대응하는 최소한의 제도적인 장치를 통해 언론의 내적 자유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언론사 소유 구조에 제한을 가하는 조항들 대부분은 2000년대 신문법 개정 국면에서 헌법불합치, 위헌 판정을 받아 복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최소한의 장치를 도입함으로써 편집권 독립 실현의 교두보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 방안으로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신문법)에 '편집제작·운영계획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조항을 넣자고 제안했다. 현행법 '사업의 승계' 조항을 보면 신문사업자 또는 인터넷신문사업자의 지위를 승계한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관할 시도지사에게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발의하고자 하는 개정안에는 신문사업자 등으로 등록하거나 지위를 승계해 관할청에 신고하는 경우 편집의 자유와 독립, 독자의 권리 보호 등을 실현하기 위해 '편집제작·운영계획서'를 제출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준형 정책전문위원은 “(개정안은) 저널리즘 독립 실천 계획서를 승계 최소 1개월 이전에 관할 시도지사와 문체부, 그리고 해당 신문 및 인터넷신문사 구성원에게 제출하도록 한다”며 “사주와 경영진 등이 밀실에서 신문사 인수와 합병 등을 결정하고 사후에 지자체장에게 신고하도록만 규정하는 현행법은 인수와 합병이 언론의 자유와 편집권 독립에 매우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임에도 해당 과정에서 언론노동자들의 의사 표명과 쟁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 해당 조항은 그 자체로 신문사를 소유하고 경영하려는 사업자에게 언론자유에 대한 윤리적 책임과 부담을 지우는 일임에 동시에 언론노동자들이 사전에 사정을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손주화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토호세력이 중앙으로 진출하는 것도 문제지만, 최근 제가 우려하고 있는 건 수도권에서 활동하던 자본이 지역을 새로운 시장으로 보고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자광의 전북일보 지분 인수사건을 예로 들었다.
2017년 10월 부동산개발회사 ㈜자광이 전주 서부신시가지 중심의 '대한방직' 공장부지 21만6000㎡를 매입했다. 이후 ㈜자광은 본사를 경기도에서 전주로 이전해 해당 부지에 143층 규모의 주상복합타워를 짓겠다고 했다. 공장 부지인 대한방직 터를 상업용지로 용도 변경해야하는 일이 남아있었다. 1년 뒤인 2018년 10월 ㈜자광이 전북일보 주식 45%를 45억 원에 매입하는 일이 발생하자, 전주시민회는 “지역 여론을 돈으로 매수하는 자광의 행태는 비도덕적일 뿐 아니라 법 위반 의혹이 짙다”고 했다. 또 전북민언련도 “대한방직 부지 개발 논의에서 전북일보가 대주주 자광의 이익을 뒤로하고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나”라고 했다. 실제로 전북일보 인수 이후 자광의 대한방직 개발 관련 기사가 수십 건 쏟아졌다.
손주화 사무처장은 “그런데 당시 자광이 전북일보의 대주주가 될 때 노조나 기자협회 등에서 한마디 비판의 목소리가 없었다. 오히려 지역 언론인들이 전북일보의 복지 수준과 취재 여건이 좋아질 거라는 말을 했다.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 되더라. 각광 받는 자본 인수 사례로 남게 될 것 같다”며 “이런 상황에서 심지어 서창훈 전북일보 사장이 신문윤리위원회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시민사회단체에서 계속 문제 제기하고 있지만, 언론에서는 별 반응이 없다. 자본이 언론사를 인수할 때 외부에서 감시할 수 있는 조항을 만들어달라”고 말했다.
김명래 경인일보 기자는 “세상에 착한 자본이 있을 수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개정안을 보고) 또 드는 생각은 건설산업의 지역신문을 인수할 동력이 사라지지 않을지 고민이 들기도 했다. 여러 고민이 들더라”며 10년 넘게 건설사가 대주주였던 광주일보 사례를 언급했다. 2003년 말부터 광주일보 대주주는 대주건설사였다. 그러나 2010년 대주건설의 부도 이후 광주일보는 어려워졌고, 2015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2015년 6월1일 광주일보는 1면 하단에 '광주일보 노조는 건설업체의 광주일보 인수를 반대합니다!!' 제목의 광고에서 “대주건설은 광주일보를 건설업체의 수익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삼으면서 전통과 역사에 흠집을 남겼다. 이때부터 광주일보는 오히려 과거보다 더 부실해졌다. 건설업체의 지역 신문사 인수 및 경영 참여는 비단 광주일보에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민주화 조치가 취재하면서 광주·전남 지역에도 우후죽순 신문사들이 생겨났고, 그 대부분에 건설업체가 관여했다”고 했다.
광주일보는 이어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전문가들도 우려를 제기했으나 열악한 지역 언론의 현실에서 묵인됐고 결국 이는 지역 언론의 침체로 이어졌다. 최근 새 사주를 받아들인 한국일보의 경우 이러한 부작용을 염려해 건설업체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기도 했다”며 “광주일보 노조는 과거 대주건설의 경험, 건설업체의 지역 내 신문사 경영 참여로 빚어진 부작용, 한국일보의 건설업체 배제 사례 등을 감안해 건설업체는 언론의 공정성을 기하면서 장기간 투자를 통해 광주일보를 정상화할 수 있는 새 사주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후 광주일보는 효성그룹·행남자기 컨소시엄에 인수됐다.
김명래 기자는 “신문산업이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노리는 세력은 여전히 있다. 수익만 추구하려는 카르텔, 즉 연결고리들을 차단해야 한다. 신문법 개정을 강화하고 건강한 저널리즘을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학과 겸임교수는 “(개정안이) 위헌으로 판단되면 어차피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므로 법원이 수용 가능한 범위인지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원이 보는 편집권은 굉장히 제한이다. 편집권에 대해 사인과 사인 간의 계약관계로 볼뿐”이라며 “재승인 재허가를 심사를 받는 방송과는 달리 신문사 대주주에게 편집제작 운영계획서를 제출하게 하는 건 사전적 검열이 될 수 있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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