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웹하드에 게시판 만들어 헤비업로더들과 공동범행”···‘공장식 유통’ 양진호 공소장 입수

이유진·강연주 기자 2022. 12. 2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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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회원들 규정위반 횟수 고의적으로 하향 지시
“공무원처럼 하지 마라” 웹하드 필터링 무력화도
헤비업로더들과 공범 인정되면 유사 사건에도 영향
폭행과 엽기행각으로 물의를 빚어 구속돼 경찰 조사를 받아온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2018년 11월16일 오전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남부경찰서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3년 전 음란물 대량 유통 혐의로 재판에 넘긴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공소장에 그를 이른바 ‘헤비 업로더’들과 함께 음란물을 유포한 ‘공동정범’으로 적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플랫폼 사업자와 음란물을 유포한 사이트 회원들을 ‘한패’로 본 이례적인 케이스이다. 검찰은 양 전 회장이 웹하드 사이트에 업로더들과 소통하는 게시판까지 만들어 음란물 유통 수익을 극대화했다고 판단했다.

20일 경향신문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를 통해 입수한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은 양 전 회장이 웹하드 사이트 ‘위디스크’에 ‘자료요청 게시판’을 만들어 자신과 헤비업로더들의 수익을 극대화했다고 판단했다. 양 전 회장이 헤비 업로더들의 음란물 유포를 단순 방조한 게 아니라 이들의 범행에 적극 가담해 수익을 거뒀다고 본 것이다.

공소장에는 이 게시판의 역할이 상세히 적혀 있다. 검찰은 “(양 전 회장은) 헤비 업로더들과 관계를 유지해 오던 중 더 많은 회원들을 유인하기 위해 별도로 자료요청 게시판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회원들이 원하는 음란 동영상을 직접 요청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을 제공했다”며 “으뜸회원들이 회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30건 이상의 요청자료를 업로드하게 하는 방법으로 업로드를 독려했다”고 적었다. 실제로 헤비 업로더 2명은 2017년 5월12일부터 같은해 11월23일까지 약 6개월간 회원들이 요청한 음란물 215건을 이 게시판에 올려 불특정 다수의 회원들이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했다.

또 검찰은 “(양 전 회장이) 시스템을 갖춰 헤비 업로더들을 보호해주면서 음란물 업로드를 독려하고, 이들의 수익 극대화를 통해 위디스크의 수익도 극대화했다”며 공모 혐의를 강조했다. 공소장에는 양 전 회장이 헤비 업로더들이 올린 영상의 스크린샷을 적극 관리했으며, 이들의 규정 위반 횟수를 최소 단위인 ‘1’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제재를 피할 수 있게 했다고도 적혀 있다. 또 방송통신위원회 등으로부터 적발될 경우 아이디(ID)를 변경해 사용할 수 있게 했으며, ‘우수회원’으로 선정해 게시판 상단에 고정하는 특혜를 제공했다. 이들이 올린 음란물은 ‘90일 게시 후 삭제’ 규정도 적용받지 않았다.

양 전 회장이 자신이 소유한 웹하드 필터링 업체 ‘뮤레카’를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음란물 유포에 가담한 정황도 확인됐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양 전 회장이) 필터링 업체 뮤레카의 대표에게 ‘공무원처럼 행동하지 말라’ ‘오버하지 말라’고 여러 차례 질책하고 뮤레카의 조직개편을 통해 필터링 담당 인력을 감축하면서 필터링과 무관한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도록 했다”며 “차단 효과가 상대적으로 낮은 해시값 필터링 마저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위디스크의 이익 창출을 위해 필터링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했다”고 밝혔다.

양 전 회장과 헤비업로더들의 공모 정황은 수원지법 성남지원이 지난 7월 웹하드 업체 임직원 9명과 헤비 업로더 3명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판결문에도 적시돼 있다. 해당 판결문 증거기록에는 “업로더 A는 ‘저는 (음란물) 판매 자격 유지를 위해 다른 자료는 일체 올리지 않고 성인 요청 자료만 올렸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업로더 B는 ‘정회원을 유지하려면 1달에 10개의 요청자료를 올려야 하는데, 요청게시판에는 음란물이 절반 정도 된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는 증언이 담겨 있다.

당시 법원은 헤비 업로더들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피고인들과 같은 헤비 업로더들을 이용해 막대한 수익을 얻고자 하는 양 전 회장 등의 세력이 구조적·환경적으로 피고인들의 활동 무대를 만들어주고 권장했기에 피고인들이 더 많은 음란물을 유포할 수 있었다”고 양형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양 전 회장에 대한 1심 선고는 다음달 12일 내려질 예정이다. 법조계에서는 음란물 유포 공동정범 혐의가 인정될 경우, 앞으로 디지털 성범죄 수사와 재판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웹하드 업체들은 그간 헤비 업로더들이 자발적으로 올린 음란물을 필터링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방어 논리로 내세웠는데 이 전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 현재보다 훨씬 강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박수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장은 “법원이 양 전 회장을 음란물 유포의 공동정범으로 인정하면 결국 플랫폼 사업자가 유포범들과 ‘한패’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라며 “플랫폼 사업자가 불법 성착취물을 올리는 행위가 범죄라는 것을 알고도 그저 방조한 것을 넘어서 사업자 ‘자신의 범죄’로서 직접 유포행위를 했다는 것을 확인받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양 전 회장에 대해 음란물 유포 및 방조,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14년, 벌금 2억원, 추징금 512억원을 구형했다. 다만 음란물 유포 혐의는 현행법상 처벌이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불과해 양 전 회장의 선고 형량은 횡령 혐의 인정 여부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은 야동, 음란물 등의 표현을 성착취물 또는 성착취 영상으로 바꿔 쓰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폭력 피해를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 상업용 음란물로 여겨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법률 용어로써의 ‘음란물’을 성착취물 등으로 바꿔 표기하는 것은 혐의 사실에 대한 오인을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어 내부 논의를 거쳐 웹하드에 유통된 영상물을 음란물로 표기함을 알려드립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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